여름비 이야기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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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 유스케의 《여름비 이야기》는 장마철의 눅진한 공기 같은 공포의 이야기로, 읽다 보면 비 냄새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의 어둠이 느껴진다.

기시는 언제나 초자연보다 인간을 택한다. 이번 책에서도 공포의 근원은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다. <5월의 어둠>의 하이쿠에 숨은 죄의식과 후회, <보쿠토 기담>의 향락 속에 스며든 자기 파괴로 타락해가는 젊은이가 등장하고, <버섯>에서는 버섯이 자라며 고립된 집을 덮어버리고 그 속에서 주인공은 악의를 느낀다. 세 이야기 모두 마음속의 어둠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시의 문장은 냉정하면서도 이상하게도 아름답다. 비가 내릴 때마다 기억이 사라지고, 버섯이 퍼지듯 죄책감이 확산된다. 현실적인 서스펜스와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그 순간, 나는 서늘함보다 슬픔을 느꼈다. 인간의 악의는 결국 외로움과 공허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보여준다.

책을 덮은 뒤에도 장마 소리가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가을비 이야기》가 죽음의 냄새를 품은 스산한 비였다면, 《여름비 이야기》의 비는 살아 있는 인간이 저지른 죄를 씻어내지 못한 채 흘러내리는 비다. 창밖의 빗줄기가 현실의 균열처럼 느껴지는 경험은 기시 유스케가 만들어내는 진짜 공포다.

악의를 통해 인간을 해부하는 냉혹한 실험 같은 책! 읽는 동안 나는 ‘공포’가 아니라 ‘자각’에 몸서리쳤다. 나도 일상 속에서 저런 어둠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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