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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예술가들 - 창작은 삶의 격랑에 맞서는 가장 우아한 방법이다
마이클 페피엇 지음, 정미나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지원도서
예술가의 삶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나의 감정도 물들어간다
미술 전시회를 자주 찾지만 전문가도 예술가도 아닌 나 같은 이에게,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은 낯설지만 깊이 있는 세계로의 초대장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반 고흐나 베이컨, 자코메티 같은 이름에 이끌려 책장을 펼쳤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이 책이 ‘예술가 소개서’가 아님을 알게 됐다. 그것은 작가 마이클 페피엇이 '삶의 모순과 고통', 그리고 예술가의 갈망을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조용히, 그러나 날카롭게 들려주는 인물 다큐멘터리이자, 고백록이다.
예술가의 작품을 미학적으로 분석하거나 스타일을 분류하는 식의 이론서가 아니라, ‘예술가가 왜 그렇게 그렸는가’를 알고 싶었던 나 같은 대중에게 딱 맞는 시선으로 다가온다. 삶의 불안, 시대의 아픔, 개인적인 결핍과 갈망이 어떻게 작품으로 남게 되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그들의 고뇌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마이클 페피엇이 단순히 외부에서 바라보는 관찰자가 아니라, 화실을 드나들고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며 예술가들과 실제로 교류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책 곳곳에는 일반적인 미술책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예술가들의 사적인 면모가 녹아 있다. 예를 들어 피카소가 어린 시절 먹던 수프의 맛을 평생 그리워했다는 일화는, 위대한 거장이자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의 피카소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해주었다.
마이클 페피엇은 예술가들을 무작정 신격화하지 않는다. 그들의 작품을 때론 냉정하게 비평하고, 삶의 어두운 면도 솔직하게 그려낸다. 그 균형 잡힌 시선 덕분에 우리는 더 진실한 예술가의 초상을 마주하게 된다. 아름다움만이 아닌, 왜곡되고 파괴적인 이미지마저도 그들의 삶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이 책은 감성적으로 그리고 지적으로 설득해낸다.
예술이란 결국 인간의 내면에서 피어나는 무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컨의 폭력적인 이미지, 달리의 기괴한 상상력, 미쇼의 시적인 붓놀림 등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예술작품을 마주할 때 느끼는 짧은 ‘감정의 전율’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은 부드럽지만 강하게 일깨워 준다.
비전공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내가 사랑한 예술가들》은 전시회를 보고 나서 느끼는 막연한 감정의 여운을 한층 더 깊고 넓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예술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사람의 이야기와 감정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마음속 어딘가를 건드릴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전시회장에서 다시 그들의 그림을 마주하게 된다면, 나는 분명히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천천히 그 앞에 서 있을 것 같다.
예술가들의 고통과 치열함, 그리고 그로부터 피어난 찬란한 이미지들. 이 책은 그것을 말없이 건네준다. 그 말 없는 위로가 참 따뜻했다.
혹시 당신도, 그림 앞에서 멈칫했던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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