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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개자식에게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김미정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평점 :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 비르지니 데팡트
☆비채서포터즈3기 출판사지원도서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 존재를 거부하는 이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까?” 이 문장은 이 소설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 거부당하는 자의 언어이자, 설명을 요구받는 자의 고통이며, 동시에 우리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회의 질문이기도 하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는 고통스럽고 불편한 감정을 피하지 않고 그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은 세 인물—43세 남성 작가 오스카, 50대 여배우 레베카, 20대 여성 홍보담당자 조에—의 메일 교환을 통해 전개된다. 그들의 대화는 감정의 폭발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성폭력, 외모지상주의, 나이 듦의 공포, 계급과 젠더, 세대 간 갈등, 팬데믹으로 인한 고립, 그리고 여성 혐오가 교차하는 복합적인 현실 속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단절되고, 다시 연결될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탐구하고 있다.
“나는 개자식이 아니야”라고 외치는 남자들처럼 오스카는 전형적인 가해자다. 그는 자신이 한 행동을 ‘억지로 키스한 것뿐’이라며 축소하고, ‘술기운 때문’이라고 둘러댄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조에를 진심으로 좋아했으며, 고작 3개월간의 일이라고 주장한다. 바로 이 점에서 작가는 사회가 얼마나 일상적으로 성폭력을 축소하고, 가해자의 프레임에 얼마나 쉽게 감정을 이입하는지를 고발한다.
그는 자신이 계급적으로 열세이며, 부르주아 여성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희생양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피해자 되기 경쟁’ 속에서, 성폭력 가해자조차도 자신을 ‘억울한 피해자’로 포장하는 현대적 변주를 보여준다. 오스카는 결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다. 반성하는 ‘척’은 하지만, 결국엔 ‘나는 괜찮은 남자’라는 착각 속으로 빠져든다. 이 점에서 그는 현실에 있는 수많은 ‘가해자ㅡ자기연민자’들과 닮아 있다.
레베카의 존재는 이 소설의 중심축이다. 오스카에게 격분하며 “친애하는 개자식”이라고 메일을 보낸 그 순간부터, 그녀는 단지 과거의 여배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나이 든 여성’으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조에'의 글을 읽고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나는 정말 자유로운 삶을 살았는가? 나는 내 몸과 욕망을 제대로 들여다보았는가? 나는 언제부터 가부장제의 암묵적 협력자가 되어버린 걸까?
레베카는 깨닫는다. 페미니즘은 특정 세대나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젠더가 다시 배워야 할 ‘해방의 언어’라는 것을. 그리고 그녀는 이 깨달음을 통해 오스카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건네고, 조에를 통해 새 시대의 감수성을 배우고자 한다.
조에는 이 소설의 가장 고통스러운 인물이다. 진실을 말했지만, 온라인에서의 폭력은 그녀를 짓밟는다. 미투 고발 이후 그녀가 겪는 우울과 불안, 그리고 그로 인한 병원 입원은 ‘2차 가해’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조에는 끝내 말한다. “성폭력 가해자를 법정에 세우는 것만큼 중요한 건,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구조를 드러내고, 집단적으로 책임을 묻는 일이다.”
이 말은 페미니즘의 핵심을 다시 일깨운다. 단지 개인의 사과와 반성이 아니라, 구조의 해체와 재편, 그리고 ‘침묵하고 방관하던 모두의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 조에는 혼자 외치지 않는다. 그녀는 나에게, 그리고 사회를 향해 외친다. “우리는 존재한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이 소설의 모든 서사는 ‘이메일’이라는 형식을 통해 전개된다. 팬데믹의 시대, 우리는 물리적·정서적으로 고립되었고, 그 거리감은 오히려 목소리를 더 날카롭고 극단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소설은 끝까지 ‘이메일 대화’라는 형식을 포기하지 않는다. 갈등하고, 비난하고, 오해하고, 다치면서도 결국 그들은 ‘말을 건다’. 바로 여기에 이 소설의 희망이 있다.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는 것’. 그것이 절망을 밀어내는 유일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는 중독, 혐오, 고독, 왜곡된 성적 인식, 세대의 단절, 외모 지상주의, 불신, 온라인 폭력…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문제를 세 인물의 ‘말’ 속에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도발적인 제목에 끌려 읽기 시작했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엔 우리 모두 이 ‘개자식’ 같은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동시대인으로서의 자각을 하게 된다. 페미니즘이 당신에게 낯설더라도, 이 소설은 ‘불편함’을 넘어 ‘이해’의 언어를 건넨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묻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위치에서, 누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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