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789년 7월 14일과 2016년 10월 29일. 프랑스 대혁명과 대한민국의 촛불 혁명의 시작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시발점이 된 1789년의 프랑스 파리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까? 왕실과 귀족들은 왜 민중을 분노케 했을까?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기까지 프랑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그리고 7명의 수감자만 있었던 바스티유 감옥을 군중은 왜 습격했을까?



18세기 초 왕의 권력은 신이 내린 것으로 왕권이 아주 강력한 절대왕정 시대였다. 그 당시 라이벌 관계였던 영국의 콧대를 꺾기 위해 지금도 화려함의 대명사인 베르사유 궁전을 건축해서 왕권을 과시하고자 하는 왕실은 전쟁 비용을 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민중들을 보지 못했다. 아니 볼 생각도 없었으니,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한밤중에 촛불을 대낮같이 밝히고 무도회를 열었고, 민중들이 빵을 달라고 요구하자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고 말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그 당시 프랑스에는 세 개의 계급이 있었다. 성직자, 귀족 그리고 인구 98%를 차지하는 평민이 세금을 모두 부담했고 성직자와 귀족들은 호의호식하면서 그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세금을 더 걷으려는 왕실과 계속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귀족 특권층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삼부회 개최를 주장하게 된다.



178년 만에 베르사유 궁전에서 개최된 삼부회는 프랑스 대혁명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탐대실이라고 해야 할까, 세금을 내기 싫었던 귀족들이 자신들의 발등을 자신들이 찍은 결과가 될 줄은 그 당시에는 몰랐을 것이다.



루이 16세는 조세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서, 성직자와 귀족들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 제3신분은 자신들의 불만이었던 모든 사회문제를 거론하기 위해 삼부회에 모인 것이었다.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니 회의가 순조롭게 진행될 순 없었다.



본격적으로 회의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표결 방식으로 서로 다툼이 시작되었고, 조세 제도 개혁은 논의되지도 못했다. 삼부회를 나온 제3신분 대표들은 국민의회를 만들게 되고, 성직자와 귀족 대표는 루이 16세와 므뉘플레지르 대회의실을 폐쇄했고, 제3신분 대표들은 테니스 코트로 이동해서 헌법이 재정될 때까지 절대로 국민의회를 해산하지 않겠다며 왕에게 복종하길 거부하게 된다.



불안했던 왕실의 움직임에 민중은 무장을 선택하게 된다. 7월 14일 바스티유 습격 사건은 죄수 석방과 무기 탈취가 목표였지만 바스티유 습격 사건의 상징성은 매우 크다. 그 당시 많이 불렸던 '라마즈세예즈'는 지금의 프랑스 국가로 불리고 있고, 왕정 체제에서 국민의회로 권력이동이 되었고, 민중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민중은 역사를 만들었지만 이름으로 기록되지 않고, 오직 숫자로만 기록되는 민중의 외침이 있었다. 이런 빈 공간에 에리크 뷔야르는 숨을 불어 넣어 주는 작가다. 민중은 대중 속의 익명성에 묻히는 존재가 아닌 직접 역사를 쓴 살아있는 한 명 한 명이었다. 역사적 상징성과 민중들의 집단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 계속해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리투서평단 #7월14일 #에리크뷔야르 #열린책들 #프랑스대혁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