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박노해 사진에세이 2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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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빨간색 표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면 갈수록>이라는 서시로 문을 열고 있다. 희망과 믿음과 사랑이 나를 살아있게 만들고, 가난과 고난과 고독이 나를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더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만들고, 살아있게 만들었다는 박노해 시인의 시.


한국도 전쟁이 끝나고 대부분이 가난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물건이 넘쳐나는 시절이 되어버렸다. 책상 서랍을 한번 열어보자. 예전에는 모든 물건이 귀했던 만큼 한 자루의 연필도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쓰고도 볼펜 자루에 끼어서 사용했었는데 이젠 몽당연필을 보기도 힘들다. 레트로라는 이름을 달고 아예 몽당연필로 만들어져서 팔리는 연필이 있을 뿐.


박노해 시인의 눈으로 포착한 흑백 사진이 보여주고 있는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만든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국경 분쟁이 끊임없는 파키스탄 히말라야 고원의 풍경들, 불타는 태양과 사막의 나라 수단의 풍경들, 인레 호수와 함께 보여주는 버마인들의 단아한 미소들, 수마트라섬의 고산지대에서 피어나는 향기로운 커피 향이 나는 인도네시아 가족들, 올리브 나무가 끝없이 펼쳐진 광야 마을에 살고 있는 가족들이 길손을 환대하는 수단, 안데스 고원 5천 미터에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있는 잉카의 후예 께로족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페루, 말을 타는 유목민이 보여주는 호감의 미소로 반겨주는 티베트, 불필요한 동작 없이 나일강에서 전통 배를 타는 소년이 살고 있는 에티오피아, 동쪽은 인도 서쪽은 파키스탄인 분쟁의 땅 카슈미르, 폐허의 유적지 옆에 서 있는 한 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들려주는 적막한 고대 도시 페르가몬, 마지막으로 마추픽추 산정 돌벽 틈에 처연히 홀로 피어있는 민들레가 반복되는 역사를 되돌아 보라는 듯 은밀하게 손짓하고 있는 페루.


내가 가장 자주 가는 서울 종묘에서 가끔 인생무상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날이 있다. 날이 너무 좋은 날에 특히 그런 느낌을 자주 받는다. 다음에 가면 나도 흑백 사진으로 찍어봐야겠다. 종묘가 주는 적막감과 인생무상을 생각하며 좀 더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삶을 가꿔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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