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잊어도 좋겠다 - 나태주 인생 이야기
나태주 지음 / &(앤드)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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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위에 쓴다

사랑한다 너를

그래서 나 쉽게

지구라는 아름다운 별

떠나지 못한다.


2021년 초겨울 / 나태주


이 책의 첫 장은 나태주 시인의 사인으로 시작된다. 당연히 <이제는 잊어도 좋겠다>라는 제목만 보고 '아~ 시집이 또 나왔구나!, 정말 부지런히 쓰시는구나!'라고 생각하며 펼쳐든 책은 시집이 아닌 시인의 유년 시절을 들려주고 있었다. <마음이 살짝 기운다>라는 시집을 너무나 좋아하고 2년 전 동네서점에서 있었던 북토크에서 직접 사인도 받았던 추억이 있는 시인의 얼굴엔 칠십을 훌쩍 넘기신 나이에도 불구하고 장난기가 많아 보였는데 과연 시인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돌연변이>로 시작하는 첫 꼭지는 너무나 기가 막혔다. 선무당 비슷한 일을 하시는 할머니가 계시는 본가가 싫어서 혼자서 접방살이를 하시는 외갓집으로 도망쳐서 외할머니의 외동아들처럼 성장하면서 시인이 되고 시인으로 살아온 자신을 돌연변이라고 생각하신단다. 기독교 신자이지만 전생에 평생 글을 쓰다 실패했던 영혼이었던 윤회설이나 환생설을 따르고 싶어지기도 하신다고. ㅋㅋㅋ


지금은 부모와 서른 살 정도의 나이차는 아무렇지 않지만 1940년대 그 시절, 네 살 영주와 서른여덟 살의 외할머니의 모습은 얼굴도 닮았기에 남들이 보기엔 늦둥이 아들로 보였으리라. 시인의 어린 시절은 외할머니로 시작해서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으로 가득했다. 영주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던 중 나도 엄마도 생각지도 못한 추억 여행을 하고 있었다. 너무 일찍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몇 장 안 남은 사진을 꺼내보며 엄마와 오랜만에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영주는 어린 시절부터 천상 글 쓰는 사람으로 클 사람이었나 보다. 태주의 어린 시절을 채우고 있는 단어들. 오빠꿀, 가장물, 궉뜸, 울울창창, 짹째글 짹째글, 풋감, 자발, 소왕굴, 막꿀, 떡나무, 꿀강아지 등등등 내겐 너무나 예쁘고 낯선 단어들이었다. 특히 꿀똥을 누는 강아지는 너무나 달달해서 배꼽을 잡고 웃었다. 똥이란 단어와 결합해서 예쁜 단어는 없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너무나 웃긴다. 꿀과 똥의 조합이라니. ㅋㅋㅋ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 서문에서 이야기한 '어린아이 시절이 없었던 어른은 없다. 그러나 어린아이 시절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많지 않다.'란 문장에서 말하고 있는 '별로'에 해당하는 어른이 나태주 시인이 아닐까 싶다. 영주에서 김수웅으로 간이학교를 다니고 나태주라는 시인이자 선생님이자 어른이 되었지만 어린아이 시절을 어떻게 이렇게 기억을 하고 계시는 걸까? 나는 어린아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는데.


영주의 어린 시절에 양념을 더해서 나의 잃어버린 어린 시절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지는 시간이었다. 망각의 시간이 더 깊어지기 전에 앨범을 뒤적여 보며 떠오르는 추억을 기록해 놓아야겠다. 이 또한 시간이 흐른 후에 들여다보면 귀한 추억이 되리라고. 나태주 선생님께 이렇게 귀한 어린 시절을 문장으로 남겨 주심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지구라는 아름다운 별을 오래오래 떠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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