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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록웰 켄트 그림,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8월
평점 :

허먼 멜빌(1819.8.1~1891.9.28)은 뉴욕 출신으로 부유한 무역상 집안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나 13세에 아버지의 파산과 죽음으로 가세가 기울게 된다. 20세부터 상선과 포경선의 선원으로 일을 하게 되고, 이때의 살아있는 경험들은 <모비 딕>에서 생생히 표현되고 있다. <리어 왕>, <폭풍의 언덕>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꼽히고 있다.
"Call me Ishmmael"
너무나 유명한 첫 문장! 나를 이슈마엘이라고 불러 달라고 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진짜 이름은 따로 있다는 뜻인가? 성경에서 이슈마엘은 추방 당한 사람을 뜻한다. 에이해브 선장의 이름도 이스라엘의 타락한 아합왕의 미국식 이름이다. 전통적인 기독교에 대한 풍자로 시작하는 것이다.
피쿼드 호의 선장인 에이해브는 포악하기로 소문난 모비 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고, 어리석게도 짐승인 모비 딕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찾아다닌다. 모비 딕을 발견한 후 복수에 미쳐버린 에이해브 선장의 분노와 광기로 피쿼드 호는 침몰하고 이슈마엘이라고 불러달라던 그 남자만이 살아 돌아와 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양장에 928쪽의 모비 딕에서 허먼 멜빌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했을까? 대서양을 운행하고 있는 포경선에는 온몸에 문신을 한 식인종부터 인디언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타고 있다. 인생이라는 바다를 헤쳐나가는 인간 군상들이 한배에 타고 있지만 서로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많은 고래를 잡아 값비싼 머릿기름을 획득해서 포경선에 투자한 선주들에게 가져다주고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포경선을 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만하고 독단적인 에이해브 선장은 복수라는 광기에 사로잡혀, 30여 명의 선원들까지 모두 수장시켜 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된다. 자신의 다리를 이렇게 만든 모비 딕을 죽이는 것만이 항해의 목적이라며, 갑판 위 기둥에 금화를 박아 놓고 선원들에게 모비 딕을 맨 먼저 발견한 자에게 주겠다면서 선원들을 선동하게 된다.
피쿼드 호에 탄 선원들은 모두 에이해브 선장의 복수에 이용될 재물이란 것을 모른다. 에이해브 선장의 광기에 모두 전염되어 술을 나눠 마시고, 맹세하고, 동맹을 맺는다. 나침반까지 망가진 상태에서도 모비 딕을 찾아 달려가는 에이해브 선장의 명령을 왜 아무도 꺾지 못했을까? 상명하복의 질서 체계가 존재하는 피쿼드 호에서 위계질서를 파괴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스타벅스 때문에 더 유명한 일등항해사 스타벅만이 포경선에서 유일하게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포경선의 원래 목적인 고래기름에 집중해야 한다고 에이해브 선장을 설득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정해진 것 하나 없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피쿼드 호 같은 인생 위에서 어떤 리더가 될 것인지 생각해 볼 지점이다.
이슈마엘이 퀴퀘그를 만나서 벌어지는 브로맨스가 기대되는 에피소드들은 너무 재미있었다. <모비 딕>을 예전엔 <백경>이라고 번역을 했었다. 그래서 하얀 고래로 생각했었는데 긍정적인 이미지의 흰색이 아닌 '송장 같은 흰색'을 얘기할 때 섬뜩했다. 인디언 원주민들을 학살하던 백인들! 인디언 부족의 이름이었던 피쿼드를 포경선의 이름으로 설정했을지도 모르겠다. 고래를 학살하는 백정들. 아직도 포경업을 자행하고 있는 일본을 보여주던 다큐멘터리의 장면이 오버랩되고 있다.
TMI.
고래를 잡아 기름을 얹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들은 너무 자세해서 마치 포경선에 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과거에는 소설이 아닌 고래학으로 분류되었다고 하던데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