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과 한의 화가 천경자 - 희곡으로 만나는 슬픈 전설의 91페이지
정중헌 지음 / 스타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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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도>의 위작 논란으로 뉴스에서 본 기억만 있었던 화가였다. 하지만 <정과 한의 화가 천경자>를 통해서 만나본 천경자 화가의 삶은 불꽃처럼 살다간 예술가였다.


천경자(1924.11.11~2015.8.6) 화백은 한국화의 독자적인 화풍을 이룬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린다. 미술기자 출신의 저널리스트인 정중헌 작가는 희곡이란 형식으로 천경자 화백을 기리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전라도 고흥 출생으로 본명은 천옥자이다. '박 의관'으로 불리던 외할아버지에게 천자문을 배웠고 어려서부터 그림을 즐겨 그렸다. 유학을 준비하던 중 돌연 아버지의 변심으로 혼사를 진행하자 화가는 울다가 웃고 또 울다가 웃는 요상한 광기를 보이게 되자 4년간의 동경 유학 생활을 허락하게 된다.


1952년 부산 개인전에서 서른다섯 마리를 그려 넣은 <생태>라는 작품을 선보이며 충격적인 소재와 뛰어난 묘사와 영롱한 색채 구사로 화단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스타 화가로 부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자로서의 개인의 삶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신기루 같은 사랑을 믿고 썩은 줄타기 인생을 살고 있던 화가는 파리에서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북극을 내려다보고 이혼을 결심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 온 아프리카로 스케치 기행을 떠나게 된다. 해외여행도 힘들었던 시대에 단신으로 검은 대륙에 뛰어들 수 있었던 그녀의 열정은 사실 주기적으로 닥쳐오는 환상의 죽음 속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일까?


아프리카 여행 이후로도 세계 각국으로 스케치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여행하면서도 미친 듯이 파고드는 고독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고 여자는 나이 관계없이 어디에 가 있거나 마음과 몸을 기댈 수 있는 사랑하는 이성이 존재해야 고독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화가의 삶 중에서 가장 놀랐던 사실은 월남전 종군 화가였다는 사실이었다. 월남전도 놀랍지만 종군 화가가 있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영화나 다큐멘터리로 봤던 전쟁이었기 때문인지 종군기자는 많이 봤지만 종군 화가는 처음 들어봤다. 1972년 6월 말에 20일간의 일정으로 사이공에 도착해 맹호부대 종군을 마치고 나트랑에서 백마부대조와 합류해 사이공을 거쳐 귀국하게 된다. 전쟁의 참상보다는 전장의 시정을 여성 특유의 감수성으로 그려낸 많은 스케치들은 기록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한다.


1991년에 화가에게 절필을 선언하게 만든 <미인도>위작 사건은 아직도 이상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최종적으로 진품 판정을 내린 상태이고, 천경자 화가는 1998년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고 떠난 뒤, 뉴욕에서 긴 투병생활을 하다 2015년 8월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자신의 작품을 구별 못 할 작가가 있을까?


먹빛의 한국화를 원색의 채색화를 바탕으로 독특한 천경자 화풍을 만들고 많은 작품을 남겼다. 여자의 몸으로 종군 화가로 참여하고 아프리카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생태와 풍속을 남긴 천경자 화가는 예술혼을 불태워 고독에 빠져있는 자신을 해방시킨 뜨거운 인간을 만나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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