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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용도 ㅣ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마크 마리 지음 / 1984Books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장의 사진을 보여주고 그것을 설명하는 글이 쓰여 있다.
그리고 아니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을 찍었던 그때.
아니 에르노는 유방암을 앓았다.
치료를 받으면서 몸에 일어나는 일들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기록할 수 있다니.
아프면서, 그것도 죽을지도 모르는 병 앞에서 사진으로, 글로 기록하려는 생각을 하다니.
인간은 죽는다는 명제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정말 대단하다.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옷가지들, 뒤집혀 있는 양말, 쓰러져 있는 하이힐과 부츠, 정리되지 않은 침대.
사랑의 행위가 아닌 육체가 빠져나간 자리에 남겨진 것들에 대한 생각들.
내 삶에서는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는 병.
전신에 체모가 없는 매끈한 몸 때문에 그는 나를 '나의 인어 아내'라고 불렀다. p.19
항암 치료 중 화학 요법의 후유증으로 머리카락이 빠져서 모자를 쓰는 주인공들을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봤지, 주변에서 직접 본 적이 없었다. 머리카락만 빠질 거라 생각한 단순한 나. 아니 에르노의 글이 아니었다면 영영 모르고 살았을 일이었다.
나는 사진을 왜 찍을까?
그때, 그 장소, 그 즐거움을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한 번도 아니처럼 즐거운 추억이 아닌 것들을 찍을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이제는 아니처럼 즐거운 삶만이 아닌 나머지 삶도 추억으로 남겨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