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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모 -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
이승욱.신희경.김은산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최근 읽고 있는 법구경에 '자식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길손과 같다'는 이야기가 있다.
인도의 한 바라문이 늦은 나이에 용모가 단정하고 사랑스러운 사내아이를 얻었다. 아이는 7살이 되어서 글쓰기를 배워 총명하고 재주가 남달랐는데
갑자기 중병에 걸려 하룻밤 사이에 죽어버린다. 바라문은 자식을 잃은 슬픔을 이겨내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다 염라대왕을 찾아가 아이 목숨을
되돌려 받으려 한다. 여정 중에 누군가 왜 염라대왕을 만나려 하는지 이유를 묻자 그 바라문은 '아들의 목숨을 돌려 줄 것을 빌고 그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잘 길러서 노후에 의지하고 살려고 합니다.' 라고 대답한다. 물론 모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이런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대다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관심과 사랑은 어찌보면 바라문의 이런 집착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부모의 욕심대로
아이를 키우려 하기 때문이다. 아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 믿고 행하는 것들이 정작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부모 자신을 위한 것인지를 지혜로운 부모라면 늘 고민을 해야한다.
이 책《대한민국 부모》는 이 땅에 사는 우리 아이들과 부모들이 얼마나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책은 처음부터 얼마 전 고3 학생이 자신의 엄마를 죽인 사건으로 문을 열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의 한 단면을
담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부모와 아이들이 놓인 상황을 설명하기엔 너무 극단적인 사례일지 모른다 생각했지만 책장을 한장
한장 넘겨가면서 그 생각은 심각한 우려로 바뀌어갔다. 공부라는 무한경쟁의 희생양으로 내몰려 고통받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담 넘어 남의 집
이야기라 여겼지만, 이젠 내 아이 혹은 내 아이 친구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요즘은 수능시험을 앞둔 고 3 수험생의
시험불안 증상을 초등학교 3학년생이 겪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 책은 이렇게 병들어 가는 아이들의 실제 상담사례들을 통해 그 문제의 심각성을
노골적이고도 적나라하게 느끼도록 해주는데 가장 무서운 일은 아이들과 부모의 관계에 심각하게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더 이상 의지하고 보호받는 존재가 아닌 적대적인 존재로 여겨지고 이에 따라 드러난 아이들의 부모에 대한 섬짓한 태도들을 보면서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떠나고 버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아예 없애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없애야 이 거대한 학력생산공장이 멈추게 될지 몰라 화염병을 들고 그냥 그 자리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다. 아이들을 계속
채찍질해서 강하고 독한 승자로 살아남도록 키우고 싶은가. 그렇다면 아이들은 정말 부모들이 원하는 강하고 독한 아이가 되어 결국 망설이던 화염병을
부모에게 던질지도 모를 일이다._(P.67)
"당신의 아들로 산 것은 지옥이었습니다." 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아이가 있다.
성공하면 부모와 연을 끊겠다고 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엄마를 죽이지 않으면 엄마는 날 죽일 거야'라며 엄마의 목을 조른 아이의
테러와 똑같이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이다. 어쩌다 부모와 자식 관계가 이토록 허물어졌는지 망연자실할 일이다. 아이가 병들어 힘들어 하는
동안에 부모라는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아이들에게 잔인한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전혀 모르며 산 꼴이다. 결국 부모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내팽개친 부모들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아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어야 하는 부모가 따뜻하게 감싸안아주기는 커녕 누구를 위한 경쟁인지도 모르는
생존 경쟁의 전쟁터에 어린 아이들을 내몰았으니 말이다. 이대로라면 아이들의 미래도 부모의 미래도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이 땅의 부모들에게 더
늦기 전에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마라는 빨간 경고등을 켜보인 책이다. 아이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존에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한국의 교육문제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선택은 부모가 해야하는 중차대한 문제다. 부모가 우선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늘 안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우리사회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가야 할 꿈과 희망이어야 한다. 부모 자신의 욕심보다 아이의 미래를 우선
생각한다면 정작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교육현실에서 남들을 따라 아이를
키우면 우리 아이의 미래가 어떨지는 이 책이 증명해주고 있다. 혹시라도 부모 스스로를 돌아보기 보다는 우리 아이들은 다를 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을
갖고있는 부모가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실상과 부모란 존재가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그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직 내 아이들이 어릴 때 이 책을 만나게 되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이런 교육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내야할지 고민이 앞선다.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부모인 나 역시도 제대로 된 어른 노릇을 하기 위해 학습하고 성장해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