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아, 사랑해!"
"응......"
"서연이도 엄마 사랑하지?"
"응......"
딸을 백혈병으로 먼저 보낸 가슴아픈 실화를 담은 책<울지마, 죽지마, 사랑할거야>에서 작가가 딸이 숨을 거두기 전에 나눈 마지막 대화 장면이다. 자식을 둔 부모의 입장인 나 역시 이 부분에서 꾹꾹 참았던 눈물을 주룩 흘릴 수 밖에 없었고 그 순간 마지막 가는 아이에게 사랑한다는 말 외에 무슨 말이 더 절실했을까하고 생각을 했던 장면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란 걸 알면서도 정작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현실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더 사랑하지 못했던 것, 더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던 것이 엄청난 후회로 남게 된다는 사실을 또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한 때 여동생이 첫 아이를 낳은 후 심한 두통과 구토증세로 고생하다가 한 밤 중에 의식을 잃은 적이 있었다. 병원으로 바로 옮겨져 즉시 치료를 받아 다행히 위험한 순간은 잘 넘겼지만 온 가족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때 당시 곧 숨이 넘어갈 듯하는 딸을 부둥켜 안고 어머니께서 '안된다 안돼, 니가 이렇게 죽으면 안된다'라고 하며 울부짖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 난다.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없을 것이지만 정작 죽음이라는 특수한 순간과 만나면 그 사람의 소중함이 극에 달하게 됨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죽게 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죽음에 대해서는 막연히 생각하며 사는 것같다. 그래서 내 가족들이 내 곁에서 영원히 머물 존재로 여기고 대하는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서로 사랑하고 살아가기에도 짧을 인생들이 때론 상처를 주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며 심지어 등을 돌리고 남남처럼 살기도 한다. 어린시절 부모로부터 평생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아 장성한 이후에도 그 상처가 떠올라 부모와 낯뜨거운 언쟁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비록 서로 힘든 관계를 유지해오던 사람들에게도 그 중 누군가의 죽음 앞에 서면 숙연해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람이 더 없이 소중한 존재였음을 마지막 가는 순간에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보내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서로에게 아쉬움과 후회가 남을 수 밖에 없으며 마지막 헤어짐의 순간은 그 어떤 갈등 관계도 모두 해소해야하는 중요한 순간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왜 좀 더 일찍 사랑한다고 용서해달라고 감사한다고 얘기하며 살지 못했는지 후회하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죽음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삶과 관계의 소중함을 알고 어떻게 살 것인가 고뇌하며 산다고 하는가 보다.
이 책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은 30년 동안 수천 명의 죽음을 지켜본 세계적인 호스피스 전문가인 저자가 죽기 전에 전하는 마지막 말이 지닌 위력을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해서 쓴 글이다. 가족과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놓치지 않고 반드시 해야하는 '용서,사랑,감사,축복' 이 네가지 말을 통해 관계를 회복하고 가족의 의미를 다시 일깨운 사례들을 정리했다. 가족이란 사랑과 따뜻함을 나누는 관계여야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들을 보게된다. 때론 평생 씻을 수 없는 분노를 안고 살게되는 관계도 이 책의 사례에서 만난다. 하지만 마음 속에 품었던 모든 응어리와 고통 그리고 아쉬움을 털어내고 해소하기 위해 죽음 직전에 있어서는 꼭 용서하고, 사랑을 전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이 전하는 핵심이다.
용서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축복하는 말은 평소 살아가면서도 부족함이 느껴질 정도로 자주 표현을 못하고 살고 있다고 느낀다. 죽음 직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네가지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만큼 살아있는 동안 정말 열심히 나누어야 할 말들이란 것을 느끼기도 했다. 가족들에게 용서받을 일이 생기면 즉시 용서를 구하고 잘못에 대해 너그럽게 용서해 주기도하며 사랑하고 있는 만큼 사랑한다는 말을 더 자주하려고 한다. 함께 있기만 해도 행복을 주는 가족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그말을 전할 수 있도록 매순간 잊지 않고 노력하자고 다짐해 본다. 그렇게 노력한 만큼 내 마지막 순간에는 아쉬움과 후회가 덜할거라고 믿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사랑을 치료할 방법은 더 많이 사랑하는 것 뿐이다.'라고 썼다. 죽음은 우리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삶을 지탱해주는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일깨워준다.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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