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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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無渡河 사랑아, 강을 건너지 마라> 책제목만 보고는 내용을 예상하지 못할 책이었다책장을 넘기면 공무도하가가 소개된다.

 

님아 강을 건너지 말랬어도

기어이 건너려다 빠져죽으니

어찌하랴 님을 어찌하랴

            _ 여옥의 노래(P.5)

 

책의 내용이 어떠할지 미리 검색해보지 않은 독자라면 어떤 상상을 했을까? 워낙 인기리에 소개되던 책이라 내용을 미리 검색하면 책소개에서 만나게 되는 글이 "인간은 비루하고,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라는 작가의 말이다. '백수광부의 사체는 하류로 떠내려갔고, 그의 혼백은 기어이 강을 건너갔을 테지만, 나의 글은 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라는 작가의 말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처음시작하는 장마전선으로 인한 집중호우 홍수피해로 쓸려간 마을에서 홍수로 생사를 달리한 사람들이 아닌 살아남아 비참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임을 추정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한국매일신문 문정수라는 기자가 나온다그가 취재하고 만나는 사건들은 짓물러 찝찝한 느낌으로 불편하기만한 그의 무좀같은 사건들, TV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마음이 불편해지는 사건 사고들이다홍수로 불어난 하천에 폐수를 방류하는 업체 이야기, 홍수현장에서의 주민들의 패싸움 사건, 후처의 딸을 상습 강간한 오십대 가장을 아들이 쇠절구로 쳐 죽인 사건빈민지역에서 버려진 아이가 기르던 잡종견에게 목을 물려 비참하게 죽은 사건에서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 주변이야기는 아니지만 흔히 접하는 언론 뉴스거리들임을 알 수 있다.

 

도처에 널린 죽음에 관한 기사들도 나온다. 시외버스터미널 옆 공중변소에서 똥을 누다가 폭발사고로 죽은 칠십대 노인, 연탄가스에 중독돼 실신해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고압산소통에 있다가 라이터를 켜는 바람에 산소통이 폭발하여 뼛조각과 살점이 응급실 안에 흩어진 어떤 남자, 논에 농약을 치다가 벼락맞아 죽은 농부,공사장 크레인 무한궤도에 무참히 깔려죽은 여고생.

 

세상은 해맑은 꿈을 가진 어린아이들이 생각하는 그런 깨끗하고 사랑이 넘치는 곳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한다분명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들은 모두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만나게되는 인간의 삶 그대로다. 잔인한 죽음이 있고, 비열하고 더러운 인간들이 있으며, 약자를 무참히 짓밟는 맹수와 같은 인간들도 함께 사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이다. 작가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의 계속되는 열거를 통해 인간세상이란 바로 이런 곳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의도한 것일까?

 

'공무도하가'는 강 건너 피안의 세계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더러운 세상에서 함께 살자는 노래이다.

인간 삶의 먹이와 슬픔, 더러움, 비열함, 희망을 쓸 것이다. (뒷표지)

  

눈동자가 검은 이유가 세상에 그늘진 어두운 면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글을 본 적 있다. 매일매일 사건사고를 다룬 기사를 읽다보면 마음 한구석이 무척 불편해지고 때론 분노하거나 말세의 징조같은 충격적인 사건도 만나게 된다. 엄마를 폭행한데 격분하여 부친을 때려 숨지게한 20대의 이야기가 최근 신문에 기사화 되었었다. 최근엔 어린여자아이를 잔인하게 성폭행한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 끊이지않고 오르내렸다. 오늘은 20대 장애인을 상습 성폭행한 70대 노인들 기사도 있었다.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런 현실들이 바로 살아있는 인간들의 세상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일들이다. 부정할 수도 없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도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길은 어떤 것일까? 작가가 말한 희망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해보게 한다.

 

여기에 이야기의 주 무대가 되는 해망이라는 해안마을은 이런 불편한 현실을 일상사로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란 느낌이든다. 누군가에게는 피신처이고 은신처이기도 하지만 떠날 수 있는 자들에겐 탈출해 나가야할 곳이기도 하다. 위험을 무릅쓰고 바닷속 폭탄잔해를 건져서 생계를 유지하려는 인물들의 모습이 불안한 이곳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주고 수족관을 탈출하기 위해 지느러미가 찢어지도록 몸부림 치는 바다사자의 모습이 이 곳 사람들의 탈출욕구를 대신해 주는 것 같다

 

- 당신의 이름이, 짐승들을 먹이고 거두는 목희牧姬라서 평화로움을 느꼈습니다.(p.91)

 

노목희는 문정수의 연인이면서 문정수 헤집고 다니는 세계의 반대편에 있는 것 같은 인물이다. 사건사고와 취재에 지친 문정수가 유일하게 찾아 휴식을 취하는 곳이 노목희의 집이다. 중국에서 온 노교수가 한 말처럼 독자 역시 노목희의 이야기에서 편안함과 휴식같은 순간을 맞는다. 그녀의 일과 주변이야기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지만 사건 사고로 얼룩진 세상의 다른 편에 사는 것같은 그녀가 주는 평화로움이 휴식같은 순간을 제공한다. 잠시의 휴식 후 다시 시작되는 불편한 현실의 대한 이야기들...

 

- 그건 추잡한 게 아니라 병이잖아, 질병. 살에 들러붙어서 살을 파먹는 병.

- 그런가봐. 자꾸만 파고드니까 병 같지가 않아. 증세가 아니라 본래 그랬던 것 같아. 그냥 데리고 살아야 하나봐. (p.221-222)

 

더럽고 냄새나는 무좀을 안고사는 정수에게 무좀은 병이 아니라 원래부터 있는 몸의 증상같은 것이 되버렸다. 우리 삶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든 병든 세상의 조짐들이 눈만 뜨면 우리 주변을 맴돌다보니 이젠 날로 비열하고 잔인해지는 사건 사고들이 원래 이 세상의 증상이었던 것처럼 여겨지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김훈 작가가 말하는 '약육강식의 더러운 세상에서 함께 살자는 노래'라는 말이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러운 인간세계를 사는 것이 강 이편에서 살아있는 자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니 이를 받아들이고 살자는 것이라면 작가가 독자들에게 주고자하는 희망의 메세지는 어디에서 유추해봐야하는지 조심스레 의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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