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 - 특목고를 향한 심화학습 7
NS교육연구소 지음 / 에듀조선(단행본)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부분들이 상당하는 걸 다시금 느꼈습니다.

먼지 바이올린 활이 말 꼬리털로 만들어 진다는 걸 몰랐습니다. (150~170개)

어려서 꿈이 바이올린 연주자였다는 것이 우스워지는 순간이였습니다.

막연한 어릴적 꿈이였지만,,,뭘 좀 알고 까불껄 그랬다 싶네요. ㅠㅠ~

홍난판 선생님은 살아생전에 늘 음악과 함께 하셨던 거 같아요. 결혼을 하셨는지 이력이 나와있지

않는 걸 보니 결혼을 하지 않으셨나 봅니다.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셨네요. 본명이 영후라고 하십니다.

처음 음악을 이화 학당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심취하셨다죠~

그리고 책방을 지나는 길에 책방에 전시되어있는 바이올린을 보는 순간 바로 저거야 하는 기분이였다고

전할까요. 꼭 사야겠다는 꼭 배워야겠다는 저 길이 내길이다 싶었나봐요.

꿈속에서 조차도 바이올린을~잠꼬대를 하는 홍난파 선생을 형님이 도와주셔서 바이올린을 얻게 된

홍난파 선생님은 밥을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호만 교칙본>을 보며 열심히 연습 했다는군요.

그 후로, 난파 선생님은 중학교에서도 활약이 대단하셨고 꿈을 이루기 위해 1981년 봄 스무 살의 나이로

일본 유학길에 오릅니다. 유학을 가서도 홍난파 선생님은 일본에 공부를 하러 갔지만 조국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들과는 달리 거리마다 활기찬 일본인들이 넘쳐났기 때문이였답니다.

조국을 일본에 빼앗긴 우리 나라 사람들은 모든것에 제약을 받으니 무슨 살 맛이 났겠어요.

상식보태기~ 당시 일본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크게 발전해 있었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대단한 긍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봉선화가 우리 나라 꽃인 줄 알았네요...어려서부터 손가락에 물을 들였기에 당연히 우리 나라 꽃이려니 했나 봅니다. 인도, 말레이시아,중국에서 건너온 꽃이라네요.

옛날에는 봉선화가 나쁜 기운을 쫓아낸다고 믿었기 때문에 남자 아이들도 봉선화 물을 들였답니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이 노래 아시죠~ 듣기만해도 눈물이 끌썽여지는 곡

홍난파 선생님의 애수라는 곡에다 김형준(성악가이자 트럼펫 연주자로 정신 학교에서 음악 교사로 일하였음)님의 시에 곡을 붙였다네요. 당시 소프라노 가수였던 '김천애'가 노래를 슬프고도 가녀린 멜로디와 사람의 마음을 애잔하게 만드는 노랫말이 레코드에서 흘러나올 때면 많은 사람들이 감동 받았다고 해요.

저도 학교 다닐 때 함께 부르고 들을 때마다 눈시울이 졌어드는 노래였답니다. 연주가에서 지휘자로 발돋움을 하셨어요. 아끼고 사랑하던 제자을 잃고 실의에 빠져있을 당시 친구의 권유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지만 학비와 집세를 내기에서 벅찼답니다. 학비를 벌기위해서 우유와 빵 배당을 하고 밤이면 악기 공장에서 피아노 조율하는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였다네요.

상식보태기~지휘자는 어떤 일을 하나요?

 여러 사람이 모여 합창을 하거나 합주를 할 때는 인원도 많은 데다 같은 악보라도 다르게 해서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아요. 그래서 지휘자는 많은 사람의 목소리나 연주를 하나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한답니다.

지휘자는 음악에 대한 지식과 악기를 잘 알아야하고, 곡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을 표현할 줄도 알아야 함.

홍난파 선생님은 교향악단 창설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다녔습니다.

1939년 7월23일 밤, 경성 방송 *관현악단이 홍난파의 지휘로 모차르트 교향곡 제 41번 <주피터>를

연주하였습니다. 스스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방송 관현악단이 생긴 지 불과 4~5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완전한 교향곡을 연주하였기 때문입니다.

관현악단원들과 피나는 훈련이 가져온 결과 였습니다. 1940년 홍난파 선생님이 그렇게 바라던 우리나라

최초의 관현악단이 창설되었습니다.

평생을 두고 바라던 교향악단으 첫 공연이 있던 날 홍난파 선생님은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첫 공연의 지휘는 '박경호'가 맡게 되었답니다.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읽으면서~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연미복을 입으시고 두 손에 바이올린을 꼭 껴안은 채 조용히 돌아가셨다네요.

나라를 잃고 실의에 빠져있는 국민들에 용기와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주신 분이며 우리의 음악이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터전이 되어주신 분이네요.

일본 유학을 갔을 당시 조국에서는 3.1운동이 한창이였답니다. 조선 유학생들이 함께 운동을 하면서

홍난파 선생님도 아끼던 바이올린을 팔아 인쇄물을 만들어 뿌렸답니다. 그 이유로 일본 순사에게 쫓기는

몸이 되어 1년 정도 되었을 당시 다시 조국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네요.

바이올린 중에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최고로 알아주는 바이올린이라네요.

그의 바이올린은 현재 약 650점이 남아 있다네요.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가지고 있으며 지금도

세계 각지의 음악 무대에서 울려 퍼지고 있답니다.

정트리오 아시죠~ 그 중 한분이 정경화 바이올린 연주자 이분은 음악의 천재들만 다닌다는 줄리어드 음대의

교수로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분이에요. 동양의 악마라는 별명이 있다네요.

이 분이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연주하신데요.

첼로 연주자 장한나 아시죠~첼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매진한 결과 정말 좋은 첼로 연주자가 되었지요. 요즘은 지휘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텔레비젼에서 보았어요.

본인이 얻고자 하는 게 있으면 정말 피나는 노력만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거구나 다시 배웠구요.

꿈은 이루어 지는 거 같아요. 본인 스스로 열심히 노력한다면요.

이 책에서 알려드리지 못한 부분들이 상당히 많은데 여러분들도 함께 공유했으면 좋은 자료들이 많아요.

함께 읽었으면 좋겠구요.

작은 꿈이라도 노력하고 실천한다면 또 다른 큰 꿈을 이루는데도 큰 도움이 원천이 될 수 있겠지요.

공부하는 여러분 모두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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