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이 질문과 의문과 아이러니 속에서 시작된다. 누구나 살면서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각자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어떤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삶도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삶은 왜 이 모양이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 걸까?' 회의에 빠지고 실의에 빠질 때가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소설 속 주인공 재니스는 무능한 남편 대신 청소 도우미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지만, 끊임없이 남편으로부터 무시와 경멸을 받는다. 맘 같아선 박차고 나가고 싶지만, 억울함과 답답함을 속으로 삼킨다. 청소도우미로서 능력을 인정받고는 있지만 재니스가 진짜 원하는 것은 청소 도우미로서의 전문성이 아닌 한 사람의 인격으로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재니스는 타인의 인생을 수집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는 선택할 수 없고 하나의 이야기로 정해져 있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차츰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믿음이 잘못되었고 인생에는 무수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 인생에 새로운 가능성이 있을까? 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반문하던 재니스는 마침내 용기 내서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삶을 원하는 형태와 모양으로 그려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한다.
재니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경험을 교훈 삼아 삶을 바꿔가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재니스는 바깥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었지, 절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만난 괴팍한 B부인, 쌍욕을 날릴 줄 아는 그래그래 부인, 지리 선생을 닮은 버스 운전기사 애덤과의 인연이 재니스를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그러나 결국, 진짜 변화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숨기고 싶었던 과거와 벗어나고 싶었던 현실과 당당히 마주하게 되는 순간, 그리고 내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을 때 말이다. 재니스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정에서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친구들과의 관계,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서도 주로 듣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나 역시 어느 순간, '내가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인가?'라는 혼란과 자괴감에 빠졌던 경험이 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모두 쏟아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표현하는데 서툴러 내 안에 생각과 감정을 가두는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야기를 지키는 여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꽁꽁 숨겨 두었던 아픔과 고통에 대해 담담히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이다. 단, 내 이야기에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고 대변해 주고 함께 소리쳐 주는 진짜 어른이 곁에 있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