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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너머로 달리는 말 (리커버 에디션)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평점 :

한 10여년 전에 국문과를 나온 언니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이랑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정말 좋아해.
책을 좋아한다면, 일단 이 두 작가 책은 꼭 읽어봐. 장난아니야. "
평상시 좋아하고 존경하는 언니의 추천이였기에 두 작가의 책은 꼭 다 읽으려 했는데,
태백산맥은 너무나 넘기 어려운 산이였고, 김훈 작가님의 책은 그 당시의 내가 읽기에는 어려웠다.
(작가님의 책은 독서에 대한 어느정도 내공이 있는 사람들이 소화할 수 있고,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그 뒤,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을 통해 김훈 작가님의 책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오랜만에 작가님의 소설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시간이 만들어 준 노력의 결과일까, 이전보다 더 잘 읽히는 작가님의 책. 내공이 조금 쌓인걸까.
날카롭고 예민한, 날 것 그대로의 문장들, 문장들이 근사하다. 예술같은 문장들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내용보다 문장이 좋아서 계속 읽을 수 밖에 없다.
무슨말인가 하면.. 그냥 문장이 참 좋다.
책의 시작에 " 문장은 전투와 같고 표현은 양보할 수 없다." 라는 작가님의 글이 있다.
읽으면 알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인지.
문장은 전투와 같고 표현은 양보할 수 없다. - 김훈



"사람의 마음속에는 뚜렷한 것도 있고 희뿌연 것도 있는데, 희뿌연 것들을 문자로 잘 가꾸면 뚜렷해질 수 있다고 글 하는 자들은 말했다.
단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오락가락하는 것들, 간절히 옥죄는 것들, 흐리게 떠오르는 것들을 글자로 적어서 아이들에게 가르쳤는데,
글자가 글자를 낳아서 글자는 점점 많아졌다.
단은 그 글자들이 세상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실체를 드러내게 될 것으로 믿었다.
글자의 뜻을 이룩하려는 오랜 세월 동안 글자들끼리 부딪치면서 많은 피가 흘렀고 피 안에서 또 글자들이 생겨났다. "

읽고 또 읽어본다.
"산맥 위로 초승달이 오르면, 말 무리는 달 쪽으로 달려갔다.
밤은 파랬고, 신생하는 달의 풋내가 초원에 가득 찼다.
말들은 젖은 콧구멍을 벌름거려서 달 냄새를 빨아들였고, 초승달은 말의 힘과 넋을 달 쪽으로 끌어당겼다. "
"초승달은 가늘었고 빛에 날이 서 있었다.
초승달이 희미해지면 말들은 사라지는 달을 향해
소리를 모아 울면서 더욱 빠르게 달렸다. "
"눈이 쌓여서 오직 하얀 날에, 야백은 마구간 난간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서
흰 세상의 끝 쪽을 바라보았다.
눈 냄새는 시리고 신선해서 새로운 시간이 하얗게 내려앉는 것 같았다. "
김훈 작가님의 특유의 시니컬한 문장들, 삶과 죽음에 대한 초연한 태도와 문장들.
말의 시선으로 보는 사람의 모습.
낯설고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문장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그것만으로 난 충분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김훈장편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