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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창비x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소설 스노볼
스노볼에 사는 액터는 따스함을 여전히 지닌 돔에서 생활할 수 있는 혜택을 받고 그들의 인생을 사람들에게 콘텐츠로 엮어 인기를 끈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살인이 최고의 드라마가 되기도 한다. 주인공을 흥행 보증 수표로 만들고, 디렉터는 명예 훈장까지도 받을 정도로 그저 사람의 목숨이 콘텐츠가 되고 오락거리가 된다. 그러다 다시 스노볼을 빠져 나오면 그 당대 최고의 액터는 다시 흔한 살인자가 된다. 온갖 냉대를 받는다. 어려움에 처해도 동정의 시선은 받기 어렵고 도움을 요청해도 동정을 건네는 사람은 그 액터의 드라마를 아는 사람의 호기심으로부터 나온다.
등장인물의 등장과 자연스러운 세계관 설명으로 서서히 빠져들게 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미디어에 나오는 모든 물건을 사용해보고, 음식을 맛보고, 사치품을 구매하는 것이 당연하지는 않다. 물론 모든 사치품을 경험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해리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인걸 알기에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는 브라우니를 알아차리는 초밤은 처지가 조금 다르다. 초밤은 자신이 스노볼의 디렉터가 되기를 꿈꾸고 할머니가 치매로 자신인 줄 아는 고해리를 좋아하며 또 그녀는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을 할로윈의 유령에게 놀라 발작을 일으키는 고해리를 안타까워한다. 고해리는 그 사건 이듬해에 다시 사랑스러운 미소를 띄우는데도 불구하고. 초밤은 자신이 고해리가 별로 관심없어하는 다이아몬드 팔찌보다 터만 남아있는 구시대의 열악한 환경인 푸세식 화장실과 자신이 더 가깝다고 말하면서도.
행운이자 소설에 갇힌 주인공의 운명으로 초밤은 스노볼 안에 가게 되었지만 여전히 무지하다. 거기엔 삶의 의지로 자신과 자신 가족을 모두 방송 컨텐츠로 만든 비정한 고매령이 있다. 형형한 눈과 강인함, 고단하고 말로만 들어도 쉽지는 않았을 인생사로 자신을 쌓아올린.
한 기상캐스터가 나온다. 스노볼 밖에서 살다가 스노볼 안에 들어와 기상캐스터가 되고 스노볼 밖의 사람들이 비싼 댓가를 지불하고 그를 위해 항의하는 엽서를 보내자 보답하는 방법을 찾아낸 사람이다. 자신에게 허락된 날들을 성의껏 살아가는 방법을.
자신을 삶을 보여주고 그로 인해 나오는 혜택을 누리고 부산물인 사랑을 받고 이에 다시 감사하고 더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다진다는게 아직 스노볼 세계의 상식이 내게는 너무도 불합리하게 다가와서 그런거겠지.
후반부로 갈 수록 해리에게 감화되었던, 자신보다 나은 환경에서 자라고 누려온 해리를 안타까워 하고 사랑하던 전초밤은 결국 차설 디렉터의 생각에 물들어 간다. 연예인의 삶이 겹쳐지는 건 우연이 아닐것이다. 많은 연예인들이 사랑과 악플 속에서 그리고 그들을 도구 취급하는 회사 속에서 힘들어하다가 빛나는 삶을 마감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의무를 내던졌다고, 무책임하다고 하는가? 또는 대신할 사람을 찾나?
초밤을 접근금지구역에 데려다 놓은 거울엘리베이터는 이본회를 두번째로 마주쳤을 때 특권층의 위선을 보지만 그들을 포장하고 이해한다는 듯이 말한다. 십 년 동안 학교에서 반복해 배웠던 얘기를 주절거리며.
무지하고 순진한 초밤의 그 드넓은 이해심이 내 얼굴까지도 홧홧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게 그냥 부끄러울 일인지는 더 생각해봐야 한다. 밖에서 물러나 읽는 나는 상황을 어림짐작 할 수 있지만 초밤에게 주어진 지식안에선 당연한 것일테니까.
이본회와 해리의 비밀 편지는 - 해리 대신 스노볼 안에서 살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바로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고 나쁘지 않은, 이윽고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해 버린 초밤을 다시 현실로 일깨운다.
주인공 전초밤은 성장한다. 그저 친구가 흘러가며 했던 도플갱어의 가설이 눈 앞에서 펼쳐지소고, 자신이 고해리를 대신하게 된 현 상황에대한 이해 그리고 디렉터 차설의 순수하게 돌아있는 야망을.
1부, 2부 전개와 극적인 3부의 시작은 기승전결이 완벽하게 짜인 것만 같다. 절반으로 접히듯 복선이나 이렇다 할 것들이 맞아 떨어진다. 그냥 흘려 보낼 수 있던 대사들이결국 중요한 키였다는 걸 알게된다. 물론 작가가 드러내지 않고 상황 전개가 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지만. 쫄깃한 추리극같기도 하다
그제야 왜 죽어도 죽지를 않느냐던 고상히의 말이 생각난다. 사랑했지만 그 남자가 받아 들여주지 않아서 스노볼에서 퇴출당할 위기가 오고 다시 또 자신의 유전자와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유전자조작으로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받는 자신의 딸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고매령이 고상히를 감싸면서도 고해리를 아무렇지 않게 뺨을 때리고 다시 또 똑같이 사랑하듯 하고 익숙하게 대했던게 이해가 간다. 고해리는 그저 코드네임 같은 정확히는 프로젝트 네임이었다. 사람이 아니라. 이에서 놀라운 건 특권층의 개입이 스노볼 바깥의 사람들 그 누가 되었건 뻗어 나갈 수 있다는 게.
정말 생각도 못한 곳에서 전개가 된다. 중심이 되는 사건은 꽁꽁 베일에 쌓여 전개가 되는데 한 장을 넘길때마다 충격이다. 사건의 시작이라고 생각한 건 그저 끄트머리였을 뿐이다. 생각도 못한 곳에 단서가 있고 그것을 단서라고 생각조차 못한다. 작가의 충격적인 상상력이나 그것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 너무나 매력적이다
차향의 고백은 벅찬듯 문장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몰입감이, 감정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여태까지 느끼던 껄끄러움이 인물의 입으로 나올 때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고 결말을 기대하게 된다. 결말까지의 전개 과정이. 나는 이런것을 내심 바랐던 거다. 내 상식과는 다른 이들이 결국 그들의 비윤리적인 행태를 깨닫고 그것을 되돌려 나가려는 발걸음. 그런 변화를 보는 장면을 여태 기다렸다.
주인공 초밤은 운명의 시작이 된 날을 이름으로 가졌다. 결국 무대위로 뛰어들어가 한탕 휘젓고 나온 초밤은 결국 진실을 파헤치고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