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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채널 × 젠더 스펙트럼 ㅣ EBS 지식채널e 시리즈
지식채널ⓔ 제작팀 지음 / EBS BOOKS / 2021년 4월
평점 :

지식채널 e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에 꼭 틀어주시던 기억이 있다.
ebs의 지식채널 e는 이해가 쉽고 내용이 기억에 남게 지식을 전달해 준다.
그뿐만이 아니라 생각할 거리, 화두를 던진다.
오늘은 더 이상 눈 가리고 못 본 척할 수 없는 이슈,
젠더 이슈를 다룬 다양한 방송 편들을 시리즈로 엮은 책을 읽어봤다.

목차를 보면 젠더 이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주제들이고
아니더라도 일부는 들어봤을 이야기들이다.

표지에도 첫 장에도 어깨동무를 한 여성들의 뒷모습을 벽처럼 그렸다.

우리나라의 형량은 자주 그리고 오래된 문제점이다.
보호받아야 마땅할 아동들을 성폭행 한 범죄자는 고작 6~9년형이다.
심신미약을 이유로 들면 5~7년이고 가중영역에 있어도 7~11년이다.
피해자의 강탈당한 삶보다는 가해자의 미래를 더 안타까워한다.
여태 그래왔는데 왜 더 무겁게 해야 하느냐는 말은 구구절절 틀린 소리이다.
과거의 사례는 더 나은 사회로의 발전 가능성을 막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
범죄를 줄이고, 경각심을 심어줄 방법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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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우리나라의 미성년자 의제 강간 기준 연령이 13세였다.
의제 강간이란, 강간과 본질은 달라도 법률적으로는 동일한 것으로 처리되는 성행위를 가리킨다.
폭행이나 협박이 없더라도 무조건 처벌이 가능했던 나이가 고작 13세 미만까지였다.
법으로 보호해 줄 수 있는 나이가 고작 13세였다.
13세 이상이면 동의 여부를 비롯한 조건을 판단해 처벌했다.
1953년에 형법을 만든 뒤로 60년간 의제 강간 연령 기준이 유지되었다.
학교를 가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었음에도
보호받아야 마땅한 아이들은 보호받지 못했다.
2020년 5월 12일 'n 번 방 방지법'으로 불리는
여러 법률 개정안이 의결된 후에 16세가 되었다.
여전히 16세는 적게 느껴진다.
대학에서 느끼는 건 대학생 1학년이 정말 어리다는 것이다.
학교 울타리에서만 있다가 졸업을 하면
모든 것에 통달했다는 듯 의무를 쥐여준다.
당연히 알 지 못하는 게 많아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 와중에 가장 추하게 느껴졌던 건 고학생, 복학생들의 추근거림이었다.
26살 동아리 선배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을
대상으로 소개팅 주선을 부탁했던 일,
술 먹이려고 수작 부리던 일,
어리숙 한 후배를 대상으로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당연히 알게 되었을 일로 앞에서 대단한 사람인 양 말하며
처음 본 날 새내기에게 치근덕 거리던 일들.
수많은 게 생각난다.

사회는 더 노력해야 한다.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대상을 지켜야 하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교육해야 한다.
적어도 피해자보다 가해자의 미래를 안타까워해서는 안 된다.
가해자에게 너그러운 법은 피해자의 방패가 아닌
가해자가 휘두르는 칼이 되기 때문이다.

전과 달리 '2차 가해'라는 말을 더 많이 들을 수 있다.
사회가 전보다 더 젠더 이슈를 받아들인다고 느껴졌다.
친절한 사람이 성범죄를 당하면 흘리고 다닌 죄고, 여지를 준 죄다.
성인은 술을 마실 수 있다.
남녀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기호가 문제일 뿐이다.
남성이 5시간 술을 마셨다고 성범죄를 일으켜도 되는 권한이 부여되지 않는다.
여성이 5시간 술을 마셨다고 성범죄를 당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게 귀책사유가 된다.
피해자가 사회로 나오면 멀쩡하게 잘 사는 것 아니냐,
성폭력 피해자가 맞냐고, 피해자 코스프레 아니냐며 말한다.
그 누구도 피해자에게 그런 말은 감히 할 수 없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적어도 분명한 것 친절할 것, 상냥할 것, 아름다울 것을 강요하고 교육한 사회에
해서 안될 말, 주제 파악 못하는 소리를 암묵적으로 동의한 사회에 귀책사유가 있다는 점이다.


며칠 전 인도의 결혼과 이혼에 관한 글을 읽었는데,
집 안에 화장실을 만들어 주기로 약속하고 결혼한 뒤
시간이 흘러도 만들어 주지 않아 이혼을 요구한 사례에 대한 글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있다.)
동이 트기 전 새벽에 들판에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뱀에게 물리고 벌레에게 쏘이는 일은 일상이고
소변을 참느라 방광염을 달고 살고 심한 경우엔 방광파열에 이르기까지 한다.
학교에도 화장실이 없어 생리 중인 여학생들은 학교를 쉬어야 해서 교육에서조차 배제된다.
밤에 야외에서 보다가 성폭력에 노출되거나, 불법 촬영 당한다.
사회를 바꿀 법안을 제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투표권조차 없다는 건
법으로 보호받을 동등한 생명체로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종교적 이유로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여성이 아주 많다.
적어도 그 종교의 신이 자신의 피조물을 사랑한다면
칼이 아니더라도 방패 정도는 쥐여줬을 것이다.

남성이 경제적으로 여유로우면 '결혼'을
여성이 경제적으로 여유로우면 '비혼'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에 아빠랑 한 대화가 생각난다.
아빠가 손주를 보려면 나는 남의 집 아들을 위해 빨래를 하고,
일을 하고, 애를 낳고 집안일이란 집안일, 밥벌이를 하면서
가끔 '도와주는' 남편에게 고마워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나는 적어도 집안일하는 캐시카우가 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아직도 의문인 점은 여성이 똑똑하면 똑똑하다고 비난하고
멍청하면 멍청하다고 비난하고
집안일을 하면 돈을 벌어오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돈을 벌어와 집안일을 나눠 하면 게으르다고 비난한다는데
그런 말 하는 사람 중에 현실 파악을 잘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적어도 다른 사람 사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제 인생이나 제힘으로 살아낼까 싶다.
본인이 다른 사람의 호의와 노동에 빌붙어 사는 줄도 모르고.

잊힌 여성들은 정말 많다.
헤아리지 못할 시대에서부터 근현대는 물론이거니와
당장 이 시대에서도 이름이 지워진다.
같은 일을 해도 옥바라지쯤이나 되는 말로 노동과 뜻이 흐려진다.
배우 윤여정이 k-할머니로 된 예만 봐도 원하는 입맛에 맞춰 네이밍을 한다.
나이팅게일이 등불의 천사가 된 거랑 뭐가 다른지.

그림자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본인들이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해주는 존재로 생각해서라고 생각된다.
하루 종일 밀린 집안일을 하나씩 하다 보면 해는 금방 지고 끊임없이 계속 생긴다.
세탁기가 있으니까 빨래는 금방 끝날 것 같고
설거지도 따뜻한 물이 어느 때나 나오니 힘들 게 없다고 느껴지지만
그렇지도 않다.
세탁물은 매일 네댓 개씩은 나오고 설거지는 끼니때마다 나온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티스푼이며 컵이며 설거지 거리가 나온다.
회사원이 집에 돌아와 쉬는 게 당연하니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그러면 전업주부는 언제 퇴근을 하지?
팬데믹 이후로 학업을 봐줘야 하고 식사, 안전을 포함한
생활 전반을 담당하는 사람은 대부분 여성이 하게 된다.
전업주부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여성이기 때문이다.
돌봄 수준에서 노동 그 이상이 되었는데
전업주부가 돌봄 센터에 맡기기도 민망하게 느껴져 도움을 받길 꺼리게 된다.
왜 전업주부는 민망하게 생각했을까?
사회가 전업주부가 하는 노동을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판데믹 상황에서 대처가 분명 타국에 비해 빨랐던 것은 맞지만 그걸 상찬하고 끝내기에는 문제가 너무 많았다.
학력격차, 가정폭력으로 자유롭지 못한 대상들, 대화가 힘들어진 농인들 그 외의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있다.
드러난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충분한 얘기가 되어야 한다.
이 과정이 평등한 사회로 가는 갈림길이 되지 않을까.

외모 칭찬보다는 잘 어울린다는 말을,
아니면 날씨에 관한 말을 하면서 대화를 시작하는 게 좋겠다.
친근한 무례함보다는 딱딱한 배려가 낫다.

열정과 지성이 남성들만의 것인 시대를 지나
구시대적인 교훈을 보내고 새로운 교훈을 맞았다.
행동하는 학생들이 만들어갈 미래가 기대된다.

별나고 계집 같지 않은 여자,
주제를 모르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여자,
밥은 안 짓고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여자,
얌전하지 않고 바락바락 대드는 여자,
결혼은 안 하고 글 줄이나 읽는 여자
그 많은 수식어가 이제는 열정적인 여성이 되고,
페미니스트 여성이 되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피폐해지는 건 여성들이다.
조국에는 자국 병사들의 성욕 해소 대상으로,
침략국에는 전리품으로 유린된다.
여성이 감정적이고 눈물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통념이 있다.
아마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어려움에 더 민감한 이유는
이미 일상 속에서 거듭하며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사회는 젠더 이슈를 피해 가기 어렵다.
당연한 얘기를 해도 너 페미 뭐 그런거 하냐는 말을 하는 사람을 가끔 보고,
여자가 이걸 왜, 남자가 이걸 왜, 하는 사람을 보면
혀끝에서 말이 막힌다.
이상하게도 뭉뚱그려 말하지 않으면
저 사람이 나를 공격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드는 순간들이 잦아졌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은 있던 일들만을
담았으니 왜 당신의 말이 잘못된 것인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을 읽으며 말문이 막히고, 눈물이 나던 순간이 있다.
성별을 가르지 않고 존중받는 사회를 바란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사실을 수치와 함께 보여주고,
숨겨진 이야기들을 정확한 단어로 짚어주기 때문이다.
관련한 경험들이 끊임없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또 사회적 약자를 조명할 때에도 여성이기에 겪었을 이야기를 먼저 하기 때문이었다.
트랜스젠더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었다.
현대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어려움,
잊힌 여성들의 이름,
젠더 문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페미니즘 입문서로 보기보단 교양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