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말
최민호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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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마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추지만 아이는 해마다 독감에 걸린다. 독감 바이러스는 워낙 변종이 많아 예방주사만으로 100% 막을 수 없으며, 대신 독감에 걸려도 비교적 순하게 지나가게 해준다고 언론과 제약사에서는 말하지만, 과연 사실일까? 이 독감 백신이 과연 효과가 있는 백신이 맞을까? 혹시 아무 효용도 없는 ‘물백신’을 비싼 돈 주고 사서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준 낮은 음모론인 것은 알지만 해마다 독감에 걸려 괴로워하는 아이를 보며 3,4만원씩 주고 맞춘 예방주사의 효과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예방주사만큼 비싼 타미플루를 또 사서 먹이고 있노라면 이게 다 약을 팔아먹으려는 제약사들의 수작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점점 커져 간다. 

  그래도 독감은 언젠가 낫고, 힘들었던 며칠이 지나가면 보건당국과 언론과 제약사에 품었던 의심은 봄눈처럼 녹아 사라진다. 어쨌거나 나으니까. 독감으로 죽지는 않았으니까. 며칠 학교에 못 나간 것 빼면 독감 환자라고 차별받았거나 생계를 잃었거나 인생을 송두리째 잃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독감이 낫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독감에 한 번 걸리면 낫지 않는다면? 죽게 된다면? 설령 낫는다 해도, 증상만 가라앉을 뿐 바이러스는 몸에 잠복해 언제든 다시 활성화될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직장을 가질 수 없다. 학교도 다닐 수 없다. 이웃과 교류할 수도 없다. 목숨은 붙어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사망선고가 내려지는 것이다. 이미 hiv 바이러스를 보유한 사람들은 에이즈로 진행되지 않아도 이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소수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그들의 이야기를 수면 위로 올리는 것을 꺼린다. 하지만 독감은 다르다. 전파 속도가 빠르고 감염자의 수도 많다. 덮을래야 덮을 수가 없다.

  최민호의 소설 '창백한 말'은 hiv 바이러스처럼 발현되기 전의 좀비 바이러스를 '보유'한 사람들과 바이러스에 '면역'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래서 '면역자'들이 '보유자'들을 '관리'하는 사회를 그린다.
  구인제약에서 ‘(바이러스 발현을 알리는 보유자용) 알림밴드’를 만드는 노동자 김수진은 ‘보유자’다. ‘보유자’는 아이에게 바이러스를 유전시켜 ‘보유자’를 낳게 된다. 그래서 김수진의 아이 미나도 ‘보유자’다. 보유자가 아이를 낳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남편은 진작에 수진을 떠났다. 수진은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아이와 자신의 바이러스 발현을 막아줄 약 ‘휴머넥스’를 사야 한다. 시간 맞춰 매일 휴머넥스를 먹지 못하면 좀비가 된다. 소설의 시작, 김수진의 바쁜 퇴근길, 사장 진석호는 김수진 외 몇 명을 호출하여 참으로 애석하게도 그들이 해고 대상이 되었음을 통보한다. 하지만 회사는 가족의 일원이었던 그대들을 잊지 않을 것이며 더 나은 직장으로 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고 나는 진정으로 가슴이 아프다는 것을 그대들이 꼭 알아주길 바라고... 한없이 늘어지는 진석호의 말들을 무시하고 김수진은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를 위해 서둘러 일어난다. 노력해도 바뀌는 건 없으니까. 

  소설에서 좀비는 ‘시체’로 호명된다. 즉 그들은 죽은 존재다. 좀비는 사람도 시체도 아닌 어딘가에 있는 제3의 존재이지만, ‘시체’는 그냥 죽은 사람일 뿐이다. 죽은 사람이므로 그 사람을 또 죽이는 것은 살인이 아니다. 시체의 머리를 부숴도 되고 파묻어도 되고 불태워도 되고 게임장에 풀어놓고 게임용 과녁으로 써도 된다. ‘그래도 된다’는 점점 확대된다. 보유자는 어차피 곧 시체가 될 존재이기 때문에, ‘시체 전단계’ 정도이기 때문에 좀 쉽게 죽여도 된다. 시체가 될 가능성이 없는 ‘면역자’의 안전을 위해서, 어차피 언젠가 시체가 될 보유자가 희생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치뤄야 할 비용이다. 보유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보유자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들을 면역자로 바꾸기 위한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박세영 연구원의 계획은 비웃음을 산다. 

  소설은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다' 는 네거티브의 세계관을 끝까지 유지, 발전시킨다. 보유자와 면역자가 동등한 대우를 받는 사회, 바이러스의 근본적인 치료제 개발, 이런 말들은 공허하다. 소수가 노력한다고 해서 세상은 바뀌지 않고 그 노력은 오히려 사람을 더욱 비참한 처지로 몰아갈 뿐이다. 그렇다면, 그 '비참한 처지'에 몰린 사람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 진석호가 김수진에게 요구한 것처럼 비굴하게 굴종하며 매달리게 될까? 아니면, 어차피 노력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이 사회의 체제와 질서를 완전히 거부하고 그것을 붕괴시키기 위해 뛰어들게 될까?

  좋은 소설은 언제나 독자를 도덕의 시험대 위에 올리고 그 자신의 한계와 맹점을 돌아보게 한다. 구인제약은 돈 받고 파는 사제 약의 성분과 보건소에 무료 공급하는 약의 성분을 다르게 만들고 일부러 그 사실을 대중에게 흘린다. 살고 싶은 대중은 무료 지급약을 거부하고 비싼 돈을 들여 사제 약을 사먹는다. 제약회사는 점점 더 부자가 되고 그 돈으로 정계와 사법부에 단단한 연줄을 맨다. 무료 지급약을 먹고 바이러스가 발현된 미나를, 수진은 끝까지 보호하려 든다. 나는 수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집단 면역이라는게 뭔데, 다수의 안전을 위해 치뤄야 하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 있는 건데,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라는 지나친 모성애로 다수를 위기에 빠뜨리다니. 대피소 안에서 미나를 지키며 무기를 휘두르는 수진을 보며 나는 그들을 쫓아내려고 하는 보유자들의 편을 들었고, 시체를 살처분하는 보건군의 편을 들었고,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자들을 위해 가치가 덜한 자들은 어쩔 수 없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면역자들의 편을 들었다. 나는 혐오자였다. 포비아임을 인정하지 않는 포비아였다. 끝까지 석호에게 사과하지 않는 수진, 무릎 꿇고 진심으로 빌지 않는 수진, 자신의 등급을 받아들이고 굴종하지 않는 수진을 어리석고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좋은게 좋은 것이며 받아들이고 타협하지 않으면 결국엔 너에게도 불이익인데. 나는 그렇게 쉽게 주류의 편을 들었다.

  무료로 공급하는 약의 성분을 일부러 약하게 만들어 사회적 경제적 약자인 자들이 시체가 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주류 강자들의 악랄함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더 열심히 고개를 조아려 사제 약을 손에 넣으려 하지 않은 노동자를 비난한다. 다수를 위해 너는 죽어주어야 한다고 위협하는 자들에게 분노하지 않고 순순히 장벽을 받아들이고 살처분을 감수해 다수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는 감염자를 비난한다. 바이러스를 부와 권력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자들에게 분노하지 않고 그나마 안전하게 살아가고 있는 면역자들까지 시체들로 만들어 버리려는 테러리스트 보유자들에게 분노한다. 주류도 아니고 자본가도 아니며, 강자도 아니고 면역자가 될 보장도 없는 주제에 나는 천연덕스럽게 강자와 면역자로 나 자신을 규정하고 그들의 논리를 내면화시킨다. 타인을 밟고 서서라도 나는 일단 살아남으면 된다는 믿음을 갖는다. 혐오자의 완성이다. 바이러스 없이도 인간을 물어 죽이려는 인간. 시체의 탄생이다.

  한 명을 살리기 위해 다수를 위험에 빠뜨린 수진과 세영의 결정은 일견 비이성적인 것 같지만, 진정으로 비이성적인 것은 다수자 중심으로 짜여져 소수자를 내몰고 있으면서 그것을 ‘이성적 질서’라고 포장하고 있는 이 세계이다. 그 비이성성에 맞서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그 세계의 질서를 따르는 척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그 세계에 ‘더욱 더’ 비이성적으로 맞서는 일이다. 살아 있는 자가 죽어 있는 시체만도 못한 세계, 이빨이 아닌 행정과 사법의 힘으로 남을 물어 죽이는 자들의 세계, 이 세계는 어차피 이미 좀비들의 세계가 된 것이다. 살아 있다고 살아 있는 것인가? 영화 ‘부산행’의 할머니는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소수자들을 희생시키려 하는 이들을 비웃고, 그들이 타고 있는 칸의 문을 열어버렸다. ‘창백한 말’의 세영은 자신의 불쾌감을 해소하기 위해 살아있는 인간들을 좀비에게 던져주려는 이들에게 바이러스가 담긴 구슬을 던져 주었다. 이런 세상이면 그냥 다 망하는 것이 나아. 어차피 살아있는 ‘인간’은 없는 세계니까. 살아 있는 시체들의 세상.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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