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요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송현정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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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께 제안합니다. 만약 우리가 샌로렌조의 죽은 아이들 백 명에게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고자 한다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모든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사악함을 경멸하는 것이 이날을 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전쟁을 기념하려면, 아마도 우리는 옷을 벗어던지고 온몸에 파란 칠을 한 다음 하루종일 네발로 기어다니며 돼지처럼 꿀꿀대야 할 겁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분명 고상한 웅변, 깃발과 기름칠한 대포를 동원한 볼거리보다 훨씬 더 적절한 기념 방식일 겁니다.       -  p.301

  "아이들이 서서히 미쳐간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죠. 고양이 요람이라는 게 두 손 사이에 있는 X자 다발에 불과한데도, 꼬맹이들은 그 X자를 보고, 보고, 또 보고...... 그런데, 빌어먹을 고양이도 없고, 빌어먹을 요람도 없죠."       - P.200




  들어보라.

  원자폭탄의 아버지 (아버지들 중의 한 사람, 이 아니다) 필릭스 호니커 박사는 죽기 직전 아이스-나인을 만들었다.
  아이스-나인은 너무나 무서운 물질이라 온 세상에 비밀로 부쳐졌다. 
  그러나 박사의 어린 세 아이들, 앤절라와 프랭크, 뉴트는 그 존재를 알았다.
  그리고 미국과 소련도,
  그리고 샌로렌조 공화국의 미래의 대통령으로 예정되어 있는 (그리고 그 아이스-나인으로 최초로 자살한 인간으로 예정되어 있는) '파파' 몬자노도,
  아이스-나인을 알았다.

  귀여운 리트리버와 사랑하는 아버지 필릭스는 아이스-나인 때문에 죽었다.
  모든 물을 단단한 고체로 만들어 버리는, 따라서 생물체의 몸 안에 있는 수분도 순식간에 고체로 굳혀버릴 수 있는 아이스-나인 같이 위험한 물질을 부엌에서 대충 만들고 바닥에 질질 흘려놓는다면
  이런 결과를 얻게 된다.

  원자폭탄의 아버지 (아버지 중의 한사람이 아닌) 이자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과학자이며 가장 미친 과학자였고, 추하기 이를 데 없었던 필릭스 호니커 박사는 
  어쩌다 보니 아이들에게 아이스-나인이 가득 든 냄비를 남겨 놓고 죽었다.
  앤절라, 프랭크, 뉴트는 어린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그 냄비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은 처음엔 메이슨 자에, 나중엔 서모스 보온병에 그 지옥의 물질을 나누어 담았다. 그리고 세 사람만의 비밀로 삼았다.
  그리고 미국의, 소련의, 미래의 샌로렌조 대통령 '파파' 몬자노의 비밀로.

  미국은 앤젤라에게 사랑스러운 남편 해리슨 C.코너스를 보내 아이스-나인의 비밀을 캐냈다.
  소련은 뉴트에게 우크라이나 출신 난쟁이 무용수 진카를 보내 아이스-나인의 비밀을 캐냈다.
  샌로렌조 대통령은 프랭크에게 그의 후계자 지위와 미녀 모나 아몬스 몬자노와의 결혼을 제공하여 아이스-나인의 비밀을 캐냈다.
  앤젤라, 프랭크, 뉴트. 그들은 어린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십시오.

  아이스-나인은 너무나 위험한 물질이었다. 단 한 방울만 물에 닿아도 그 물을 고체로 굳혀 버릴 수 있었다.
  고체가 된 물이 또 다른 물 - 예컨대 강이나, 바다 - 에 닿으면 그 물들도 모두 아이스-나인 고체로 바뀌어 버렸다.
  '비밀 요원 엑스-나인'으로 불리워지는 것이 싫었던 소심한 소년 프랭크는 아이스-나인 조각을 '파파' 몬자노에게 주고 장군의 별을 얻었다. '파파' 몬자노는 그 지옥의 물질로 죽었다. 그리고 온 세상에 그 물질을 퍼뜨려 놓았다. 
  인류는 멸망했다. 


  뉴트와 앤절라와 프랭크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신들이 이 세상에 공급된 아이스-나인을 나누어 가진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범죄에 대한 세부사항에 이르자 이야기는 점차 불명확해졌다. 호니커의 자녀들은 아이스-나인을 사유재산으로 나누어 가지면서, 누가 어떤 식으로 그 이유를 정당화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은 아버지의 뇌 늘리기를 떠올리며 아이스-나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했지만, 윤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P. 297


  커트 보니것의 1963년작 '고양이 요람'은 그의 또다른 대표작 '제5도살장'과 함께, 차가운 블랙 유머로 무장한 뜨거운 반전소설이다. '제5도살장'의 부제와 같이, 전쟁은 결국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이며, 인류의 멸망은 이 어리석은 십자군 전쟁의 종착점,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이다. 전쟁과 멸망은 어른의 몸을 하고 어른의 말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 생각도 윤리도 없는 자들, 헛된 '그랜팔룬'1)을 자신의 질서로 삼고, 헛된 '포마'2)를 자신의 신조로 믿고 복종하며 사는 이들이 벌인 '아이들의 장난질'이다.
  필릭스 호니커는 위대한 과학자였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자신의 과학적 업적이 인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는 자였다. 그는 길거리에 차를 세워놓고 혼자 내려버림으로써 거대한 교통 마비와 아내의 죽음을 유발했다. 그는 세상을 날려버릴 폭탄을 만들어 노벨상을 탔고, 매우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만나면 그걸 꼭 현실화 시켜야 하는 과학자였으므로 별 생각 없이 '저렴하게' 인류를 절멸시킬 물질을 만들었다. 그는 무엇이든 궁금해 하고 무엇이든 재미있어 하며 무엇에든 배우는 사람,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고 매우 행복한 사람이었다. 인류는 행복하고 순수한 사람의 손에 의해 절멸될 수 있다. 아이히만은 수천 명의 유대인의 목숨을 빼앗은 날 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슈베르트를 연주해주었고 사랑스러운 아내가 차려준 저녁 밥상을 먹으며 화목한 아리안 족의 저녁 시간을 보냈다. 그는 행복하고 순수한 자였으며 머리가 좋고 성실했다. 그리고 주어진 일과 따뜻한 저녁 식탁 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였다. 모사드 또한 주어진 일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는 1962년 6월 1일 교수형당했다. 그렇게 가는 거지. 
   호니커 박사의 세 자녀들도 행복하고 순수한 아이들이었다. 
  앤절라는 아버지 호니커 박사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히로시마에서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 전쟁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에 그녀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그녀에게 있어 아버지는 의심할 여지 없는 위대한 과학자였다. 
  프랭크는 호니커 박사처럼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이룰 수는 없었다. 대신 그는 신이 되는 길을 택했다. 거대한 모형 세상을 만들고, 어제까지 산이 있던 자리를 뒤엎고 호수와 교량을 대신 세웠다. 개미들을 병과 유리판 속에 가둬두고 실험했다. 아버지에게 얻은 위대한 물질로 한 나라를 얻었다. 그는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개미굴 한 개 뿐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뉴트는 아이스-나인을 자기가 핀셋으로 집어 병에 넣은 자랑스러운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 
  아버지를 끝까지 추앙했던 큰딸은 아버지의 업적에 의해 죽었다. 아버지를 계승하지 못한, 혹은 계승하기를 거부한 두 아들은 그래도 살아남았다.
  인류는 이 행복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앙큼한 거짓말, 우스꽝스러운 장난질로 멸망했다. 그렇게 가는 거지.

  샌로렌조를 만든 것은 매케이브라는 이름의 탈영병과 라이어널 보이드 존슨이라는 모험가였다. 그들은 우연히 이 척박한 섬에 표류해온다. 그들은 대통령이, 신이 되기를 원했고 각각 그 위치를 차지했다. 그리고 샌로렌조를 '하나의 나라'로 단합시키기 위해서 적을 만들었다. 매케이브 상병은 존슨-보코논을 샌로렌조의 적으로 규정하고, 보코논교를 믿는 자들은 모두 갈고리에 매달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몇몇 사람들이 갈고리에 매달려 죽었다. 매케이브와 보코논은  인간은 적이 있어야 단합하고, 종교는 박해를 받아야 더욱 신실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괴로운 현실을 벗어나는 데는 거짓만한 게 없었다.
  샌로렌조의 헐벗은 국민들은 신이 필요했다. 그들은 프랭크를 신으로 믿는 개미와 다르지 않았다. 보코논은 최후의 순간에, 그들 모두 신의 뜻에 따라 죽어야 한다고 선언했고 수만 명의 사람들은 간단히 죽었다. 되묻지 않은 자들, 의심하지 않은 자들, '정해진 뜻'에 따른 자들의 죽음이었다. 죽음은 신의 뜻이고 예정된 것이니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이 세상의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들 - 국가, 민족, 종교와 무슨무슨 주의들,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만드는 심심풀이 끈놀이, 끈 속의 어여쁜 고양이와 요람. 
  모두 그랜팔룬이며 모두 포마다.
  깊고 어리석은 안도감에 젖어, 그 살지고 축축하고 천박한 바보에게 몸을 기대자.3) 그것은 때때로 조금 추하지만, 조국을 승리로 이끌며, 따뜻하고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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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코논교에 따르면 아무 가치도 없는 허울뿐인 조직을 뜻한다. 예로는 공산당, 미국 혁명 자매회, 제너럴 일렉트릭사, 오드펠로스 국제 비밀 결사, U.S.A. 등이 있다.
2) 보코논교에 말하는 '거짓'.
3) P.325~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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