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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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The Friend)'로 2018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신작 '어떻게 지내요'. 원제 'What are you going through?'는 영어에서 한국어 제목 그대로 어떻게 지내느냐는 인삿말이지만 직역을 하면 '당신은 무엇을 겪어내고 있느냐'라는 질문이다. 소설의 화자는 2017년 9월에서 시작해 그 이후의 어느 날까지를 종이 위에 기록하는데, 화자가 겪어낸 시간들은 '친구의 죽음을 지켜본 시간들' 이다.


  2017년 9월 셋째 주, 한 남자 대학 교수의 강연장, 암에 걸린 친구의 문병을 갔다가 돌아온 화자가 교수의 강연장에 참석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교수는 열렬한 기후변화 운동가이면서 지독한 회의주의자,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으며 그러므로 더 이상의 재생산도 의미가 없다고 믿는 극단적 허무주의자다. "시기적절한 행동은 내면의 평화를 얻으려는 개인의 노력도 아니고 서로에게 공감하는 태도도 아닌, 임박한 파멸에 대한 광적이면서 과도한 집단적 집착입니다."(23쪽) 라고 말하는 교수의 강연은 이후 소설의 전개 방향을 암시하는 듯 하다.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친구'는 희망 없는 치료를 받으며 심한 부작용과 암의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는 대신 안락사 약을 먹고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며 화자에게 도움을 청한다. 끝까지 암과 투쟁해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믿지도 않고, 암 치료 과정을 통해 극기와 내면의 성장을 이루겠다는 생각도 전혀 믿지 않는 친구의 결정은, 역설적이게도 친구 자신이 싫어하는 인물인 '교수'의 주장과도 닿아 보인다. 미래는 이미 공포와 파멸로 정해져 있고 무엇을 해도 가능성이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저 빨리 목숨을 끊는 것-절멸해버리는 것만이 답이라는 이 시니컬함은 이 소설의 주된 화두다.


 화자는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뉴잉글랜드의 외진 별장으로 가서 친구의 자살을 돕기로 한다. 그리고 그 계획을 예전 애인이었던 '교수'에게 발설하여, '절대 경찰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할 것' 이라는 조언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예정된 자살의 시간은 점점 미뤄진다. '죽어라 애쓰고 죽어라 계획해봐야'(243쪽) 인간은 그렇게 쉽게 자신의 목숨을 끊지 못한다 - '교수'가 '그것이 유일한 현실적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던 그대로. 소설의 뒤로 갈수록 '지연되는 친구의 죽음'은 '지연되는 인류의 멸종'과 겹쳐지며 소설 전체에 우울한 그늘을 남기고 화자는 거의 매일 벤치에 앉아 울음을 터뜨리는 우울증자의 상태로 변해간다. 그러면서 화자는'늘 그렇듯이 언어란 결국 모든 것을 변조해버릴 것'임을 새삼 되뇌는 화자는, '진실하지 않은 자료, 읽는 사람들이 그것을 진실로 잘못 받아들일 수 있는 문서를 왜 만들어야 하는가?' 라며 이 소설-기록의 집필 자체에 회의한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요컨대 이 책은 오직 죽음과 편집증에 대한 책이며 이 두가지가 화자를 구덩이로 몰고 가는 - 사랑과 명예와 연민과 자부심과 공감과 희생에 애를 써온 화자를 결국 실패자로 만들어버리고 마는 이야기다. 하지만 화자는 실패했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 라고 중얼거리며 끝내 부서지기를 거부한다. 고양이의 죽음, 이웃 할머니 아들의 죽음(할머니의 죽음과도 다르지 않다), 친구의 죽음, 나아가서 세계의 죽음. 소설에 가득한 것은 시작부터 끝까지 죽음이며, 하루 하루 늙어가고 죽어가는 몸과 정신에서 비롯된 편집증적 몸부림 또한 함께 흘러넘치는 소설이다. "인류는 죽음 소망에 빠져 있다"라는 소설 속 화자의 말은 이 소설 전체를 압축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랑을 듬뿍 받았고 다들 좋아했던 , 고통이 만연한 세계에서 가능한 온갖 특권을 누리며 자란 아이(49쪽)같은 인간은, 인간 정신이 지닌 자기기만의 무한한 능력(56쪽)으로, 죽음에 대해서 그렇듯이 대부분은 나이듦도 부인하며 (65쪽) 살아간다. 그러나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고, 최후에는 예외없이 모두 죽음과 노화와 고통에 대한 두려움으로 편집증과 우울에 빠져버린다. 예견된 끝장을 끝없이 부인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인 (기후 변화와 탄소 배출 증가 앞에 우리가 그러듯이) 존재가 인간이다.


 다정해보이는 제목과는 다르게 매우 비관적이고 염세적이며, 우울의 흔적이 짙게 뭍어있는 소설이므로 예쁜 표지와 제목에 속아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전작 '친구'에서 보여주었던, 시그리드 누네즈의 죽음에 대한 깊은 천착, 죽어가는 누군가를 옆에서 지켜보며 같이 무너져내린다는 것의 처절함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는 단연 추천한다. 요사이 문학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작가의 독특한 관념 세계가 자유로운 스타일의 작법과 어울려 남다른 매력을 풍기고 있는 책이다. 만만찮은 주제 의식이 소설과 에세이의 경계 어딘가에 서 있는 듯한 서술 방식으로 피어나며, 화자의 자유로운 말하기- 그러나 최후에는 말할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이 무릎꿇음의 결말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 인디캣 책곳간과 출판사의 지원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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