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셜리 클럽 오늘의 젊은 작가 29
박서련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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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한 청춘러브로망. 툭하면 울고, 쉽게 사랑에 빠지고, 대책없이 용감하고,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가 나를 정의한다고 믿는 소녀 감성을 읽기에 나는 이제 나이가 너무 많다.

주인공 설희가 만나 시종일관 도움을 받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더 셜리 클럽의 존재 또한 감동을 주지 못했다. 화자의 주위를 둘러싸고 언제나 원할 때 원하는 만큼의 사랑과 지지와 도움을 주는 '나'의 분신들-모두 셜리이면서 동시에 화자의 복제, 화자의 욕망의 구현체인 '유일한' 셜리들이 만들어내는 이 완전무결한 천국의 그림은 거대한 클론들의 유토피아를 보는 것처럼 섬뜩했다. 이것은 '연대'가 아니라 '복제' 아닌가. 이것이 연대가 되기 위해서는 설희는 피터, 린다, 도라 같은 '이름 가진 타자' 에게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정확히 그 반대이며, 심지어 설희의 연인인 'S'조차도 셜리와 같은 이니셜을 가졌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셜리'가 되고 만다.

모든 타자에게서 자기를 발견하려는 이 나르시즘적 욕망, 나의 복제로서의 그 타자들이 오직 내가 나에게 그러듯, 또 내가 자신에게 필요로 하듯 나를 도와주고 지지해주고 사랑해주고 언제나 위로의 모르핀을 놔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 수동적인 자기함몰의 이야기였다. 성숙한 자아는 나르시즘을 깨고 나가야 얻을 수 있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알을 깨고 타자들의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걸 피하기 위해선 그저 한없이 리틀, 리틀, 작고 연약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리틀 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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