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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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하게 내 취향인 책이었다. ‘현기증, 감정들’을 그닥 재미있게 읽지 못해 제발트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는데, 첫 페이지의 풍경 묘사에서부터 내 마음을 완전히 앗아갔다. 카메라로 찍어놓은 듯, 정밀하면서도 감정에 젖어 축축해지지 않는 제발트의 시선은 압권이었다.


디아스포라. 고국을 떠나 흩어진 사람들을 가리키는 그리스어다.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관습과 규율을 지키며 살아가는 유대인을 지칭하던 이 말의 의미는 오늘날 확장되어,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흩어져 살아가는 이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널리 쓰인다. 제발트의 ‘이민자들’은 제목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듯 디아스포라 문학이다.


네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헨리 쎌윈 박사 - 기억은 최후의 것마저 파괴하지 않는가’, ‘파울 베라이터 - 어떤 눈으로도 헤칠 수 없는 안개무리가 있다’,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 내 밀밭은 눈물의 수확이었을 뿐’, ‘막스 페르버 - 날이 어둑해지면 그들이 와서 삶을 찾는다’. 처음부터 엄청나게 마음을 사로잡았고 ‘암브로스 아델바르트’의 절정에 이르면 이게 이 책에서 최고의 소설일 거라고, 이 이상은 나올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막스 페르버’는 그걸 뛰어 넘었다. 헨리 쎌윈 박사는 영국으로 떠나왔고, 암브로스는 스위스와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이었고 그의 친우 코즈모는 미국으로 옮겨간 부유한 유대인이었다. 막스 페르버는 영국으로 도망쳐온 유대인이다. 파울 베라이터는 프랑스로 피신했다가 돌아왔으나 결코 온전한 독일인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헨리 쎌윈 박사는 영국으로 이민온 후 이름과 성을 바꾸고 케임브리지 의과 대학을 최상위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는 혈통 세탁에 성공한 것 같았다.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 직전 스위스 베른에서 보낸 한 때, 그가 ‘푹 빠졌던’ 등산안내인 요한네스 네겔리와의 만남과 이별은 그에게 깊은 슬픔을 안긴다. 이후 네겔리가 크레바스에 빠져 추락사 하자 헨리는 깊은 우울증에 빠진다. 이후에 만난 아내와 보낸 사치스러운 시절은 우울증의 다른 표현이다. 그는 ‘무엇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는지, 돈 대문인지, 결국 발각되고 만 혈통의 비밀 때문인지, 그저 사랑이 식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나는 그가 네겔리를 잃은 순간 모든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고 생각한다. 헨리 쎌윈은 베르테르처럼 총으로 머리를 쏘아 자살한다.


연인에 가까운 것으로 짐작되는 또 하나의 관계는 암브로스 아델바르트와 그의 주인 코즈모 쏠로몬의 관계다. 아슬아슬한 곡예 비행과 거침없는 도박으로 명성을 날렸던 코즈모 쏠로몬은 심한 우울증과 정신분열로 고통 받았다. ‘전쟁이 점점 확산되고 파괴의 규모가 미국인들에게도 알려질수록 코즈모는 별로 변한 것도 없는 미국생활에 다시 적응하지 못했다. (중략) 코즈모는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화재와 죽음과 들판에 뻗어 있는 시체 들이 햇살 아래에서 썩어가는 광경을 자기 머릿속에서 본다고 주장했다.’(p.120) 미국에 뿌리내리는 데 실패하고 유럽에서의 참화를 남의 일로 생각하지 못했던 코즈모는 결국 정신병원에서 죽었다. 암브로스는 쏠로몬 집안이 몰락한 후 코즈모의 뒤를 따르듯 심한 우울증에 빠졌고 역시 코즈모가 숨진 정신병원에서 죽음을 맞았다.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상실된 기억을 자기가 만들어낸 환상으로 보충하는 것’(p.129)처럼 보였던 암브로스. 그 비현실적인 기억들은 그에게 무거운 오버코트와 같은 것이었고 그에 짓눌려 암브로스는 허약하고 불안하게 점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내면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 사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목격한 아름다운 것들과 파괴된 것들, 코즈모의 죽음, 몰락의 뚜렷한 징후들, 그 모든 것이 결코 잊히지 않고 머리 속에 새겨졌다는 것 그 자체가 암브로스를 파괴시켰다. ‘기억이란 때로 일종의 어리석음처럼 느껴진다. 기억은 머리를 무겁고 어지럽게 한다.’(p.185) 반복해서 전기충격치료를 받았던 암브로스의 선택 역시 자살이나 다름 없다.


또 한 명의 자살자는 교사 파울 베라이터다. 일흔네번째 생일 일주일 후 그는 철로에 누워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1/4만 유대인이었던 그는 고향에서 교사가 되기를 열망했지만 제3제국 치하에서 해임되었고 그의 집안은 붕괴되었다. 놀랍게도 파울은 그 폭력과 굴욕의 와중에 1939년 독일로 돌아와 독일 병사로 입대한다. 끝까지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입증받고 싶었던 파울, 그래서 1935년과 1936년 사이에 있던 일들은 거들떠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파울. 그는 생애 마지막 십년 동안에야 비로소 당시의 일들을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그는 매일 문서를 들추고 메모하며 생애 마지막 십년을 보냈고, 긴 시간 고통 받다가 결국 자살했다. 그의 실명은 그의 안에 어둠이 퍼져 나가는 것을 상징하며, 파울은 그것을 ‘지극히 평온한 마음으로 받아들렸고, 바야흐로 자신이 접어들게 될 새로운 세계는 이전보다는 좁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편안할 것이라고 말했디’.(p.77)



영국 맨체스터로 건너와 화가로 성공한 막스 페르버의 삶은 그의 어머니의 기록과 중첩되어 나타난다. 게르만의 일원으로 아름답고 화목한 가정을 꾸미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루이자(막스의 모친)는 전쟁으로 두 번의 사랑을 모두 잃고 그녀 자신도 죽다 살아난다. 그리고 그 대가처럼 독일의 훈장을 받는다. 유대인이 아닌 게르만 남자와의 사랑을 꿈꾸었던 그녀는 결국 유대인의 관습대로 중매 결혼을 하고 막스를 낳아 기른다. 1941년 막스의 부모인 프리츠와 루이자는 강제수용소로 옮겨져 거기서 죽는다. 막스는 말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지금도 그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였다고 자신할 수는 없네. 하지만 돌이켜보면, 당시의 일들이 내 삶의 구석구석까지 결정해놓았다는 느낌이 들어. (중략) 부모님이 겪은 고통과 나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보려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노력도 많이 했고, 이렇게 은둔생활을 하는 가운데 간혹 영혼의 안정이 유지되는 때도 없지 않았지만, 학창시절에 나를 덮쳤던 그 불행이 내 안에 박아놓은 뿌리는 너무나 깊었네. 그 불행은 거듭 땅을 꿇고 나와 사악한 꽃을 피우고 독기 품은 잎으로 내 머리 위에 천장을 만들었지. 그 천장은 지난 몇년 동안에도 내게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나를 어둠으로 덮었네.’(p.241~242) 막스는 자살이 아닌 폐기종으로 죽었지만, 그를 공업도시 맨체스터의 아뜰리에에 은둔하게 만든 것은 그 뿌리 깊은 불행, 학살당하고 내몰린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기억이었으며, 헨리 쎌윈처럼 사랑하는 누군가를 뒤에 남기고 홀로 떠나왔다는 것에 대한 회한이었다.


제발트의 ‘이민자들’은 화자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인생에서 만났던 타자들-고향을 잃고 마음의 안식처를 잃고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당하고 내몰렸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점이 ‘이민자들’을 다른 디아스포라 문학과 구별짓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내세우지 않고 역사의 격랑에 휘말렸던 타인들의 이야기를 관찰하고, 채록하고, 답사하고, 사진을 붙여 설명하는 기록문학적 성격. 그리고 놀랍도록 섬세하고 치밀한 풍경 묘사들. 제발트는 이런 서술 방식으로 대상과의 적절한 거리감을 만들고, 다큐멘터리적인 시선을 획득하며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담담한 태도를 유지한다. ‘이민자들’은 분명 비극적인 이야기고, 어둡고 우울한 흑백의 정조를 띄고 있음에도 결코 잔인해지거나 슬픔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제발트가 세세하게 그려내는 자연의 풍광들은 마냥 아름답기만 하다. 쇠락해가는 유럽 소도시-왕년에는 흥청거렸으나 이제는 누구도 찾지 않는 몰락의 장소들이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자연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면서, 안락함과 부유함이 있었던 유럽의 전성기가 소멸했음을 더 강하게 보여준다. 중간 중간 삽입된 사진들은 기록으로서의 문학, 개인의 삶과 역사의 증언을 동시에 해내는 ‘단편적인 기억의 영상들’(p.229)이다. 이것은 일종의 강박관념이라고 막스 페르버는 말한다. ‘시간은 믿을 만한 기준이 못될뿐더러 영혼의 소음일 뿐’(p.229)이기 때문에, 제발트는 시간에 저항하듯 계속 해서 인물들이 살고 죽은 장소를 찾고 그들이 남긴 글과 사진 들을 모아, 작가 스스로 말하듯 ‘값싼 허구화의 형태’ 바깥의 책으로 엮는다. 이러한 그의 작법 속에서 인물들의 삶은 픽션 속 개인의 우울과 절망에서 한 시대의 무챗빛 풍경이자 지금 눈앞의 고통으로 승화된다. 무엇보다 그 자신도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았기에, 이산자들의 고단한 삶과 뼛속 깊은 우울을 채록해 전수하는데는 제발트만한 인물도 없었을 것이다.





덧붙임) p.15의 사과 종 beauty of bath는 '목욕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영국 서머셋 주의 휴양도시 Bath 에서 유래한 사과 품종이다. 헨리 쎌윈은 이 사과 이름을 통해 영국의 야생적 자연이 갖는 아름다움을 예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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