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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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맨부커상 수상작은 꼼꼼히 챙겨본다. 요새 맨부커상은 세계사와 세계지리를 독자에게 일깨워 (가르쳐 아님) 주는 것을 주목적 중 하나로 두고 있는 것 같다. 1860년대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한, 2013년 수상작 '루미너리스'가 그랬고, 1970년대 자메이카를 배경으로 한, 2015년 수상작 '일곱 건의 살인에 대한 간략한 역사' 가 그러했다. 1940년대 오스트레일리아와 타이를 배경으로 하는, 2014년 수상작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또한 맨부커상의 요즘 의도에 충실한 선정작이다. 아주 많은 공부가 되었어요. 여러분, 오세아니아 대륙이 정확히 어딘지 알고 계셨나요? 오세아니아가 오스트랄라시아, 미크로네시아, 폴리네시아, 멜라네시아 를 통칭하는 이름인 거 아셨나요? 인도네시아는 지형학적으로 봤을 때 동남아시아가 아니라 오세아니아에 속한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제가 이래서 맨부커상 좋아합니다. 작품의 수준과 상관없이 일단 독자를 공부시키는 거, 더 지적으로 만들어주는 거, 독자에게 더 넓은 세계, 더 깊은 시간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좋아합니다. 작품의 내적 수준과 관계없이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외과의사이자 전쟁영웅 도리고 에번스의 태평양전쟁 참전기(라기 보다는 포로수용기)를 중심으로 그 전후의 삶, 그의 주변인들의 삶을 밀도 높게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제를 한줄 요약하면 '정신승리 따윈 개나 줘버려' 인데, 더 숭고한 것, 더 고귀한 것, 더 정신적인 것, 더 아름다운 것만을 생각하면서 현실을 시궁창, 아니 시궁창도 아니고 그냥 헬지옥으로 만들어버리는 인물 군상들을 다채롭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병사들이 식량과 약품이 없어 죽어가고 있는데도 '영국인의 품격'을 지켜 콰이강이 보이는 아름다운 위치에 묘지를 팔 것을 지시하는 렉스로스 대령 (그는 이질에 걸려 죽은 후 정글에 파묻혔다), 사람을 구타해 죽이면서 바쇼의 하이쿠- 고통 속에 벚꽃이 핀다는 고결한 하이쿠를 읊는 나카무라 소령 (그는 전범 재판을 피해 잘 살아남았다), 포로들의 목을 베면서 일본의 무사도 정신을 생각하는 고타 대령 (그 역시 전범 재판을 피해 오래 오래 살았다), 그리고 테니슨의 시를 외우며 인간 실존의 바닥을 어떻게든 지나가보려고 악쓰는 도리고 에번스 또한 그런 인물이다. 소설을 읽고 나면 이 책의 제언인 파울 첼란의 '어머니, 그들은 시를 써요' 가 결코 아름다운 시적 세계에 대한 예찬이 아니라는 것, 매우 역설적인 제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들과 가장 반대편에 서 있는 빛나는 인물은, 역시 다키 가디너-조직꾼, 도둑놈, 진정한 전우, 하나뿐인 오리알을 짝패와 나눠먹을 수 있는 검은 왕자인데, 다키 역시 '그냥 누워서 똥 지릴 줄 모르는 놈', '고귀한 품격'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는 놈이었기 때문에 죽었다. 품위 같은 건 개나 줘버려야 된다니까. 다키 가디너는 누워서 똥을 지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변소로 기어가 똥을 누려 하다가 똥구덩이에 빠져 죽었다. 

  다키 가디너는 소설의 말미에 도리고 에번스의 숨은 조카인 것으로 밝혀진다. 도리고의 형인 톰과 맥과이어 부인의 불륜은, 도리고와 그의 고모부의 후처 에이미와의 불륜으로 겹쳐지고, 톰-맥과이어 부인 사이의 자식인 다키는 도리고-에이미 커플의 자식으로 상이 겹쳐진다. 즉 다키는 이 소설에서 도리고의 아들 역할이다. 잭 레인보우를 수술로 살리기 위해 다키의 구타 현장에 너무 늦게 달려갔던 도리고는 결국 다키의 죽음을 무력하게 지켜보며 '세상이 진동'- 즉 인간성이 붕괴하는 것을 느껴야 했다. 이로 인해 도리고는 소설 내내 괴로워하지만, 소설의 마지막에 거대한 산불 속에서 사랑하지 않았던 아내와 아이들을 구해내며 자신의 '외과의사 손'을 희생하는 것으로 다키의 죽음에 값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죽음을 몇 사람의 목숨 구하기로 갚으면, 그게 수학 공식처럼 그렇게 인생의 값을 딱딱 올려주는가? 빼기 1에 더하기 4면 인생은 더하기 3의 것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도리고 에번스가 77세까지 살면서 느꼈던 허무는 더하기 300으로도 채워질 수 없었다.

  역시 재미있는 인물은 포로수용소의 부사관 고아나-조선인 최상민이다. 그는 고타와 나카무라 같은 행운을 얻지 못하고, B급 전범으로 체포되어 싱가포르의 창이감옥에서 처형되었다. 그는 50엔을 벌기 위해 포로수용소 감시원을 자원한 인물이었다. 포로수용소 조선인 감시원들의 이야기는 우리도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검색할 수 있으며, 작가는 아마도 '전범이 된 조선청년' 이라는 책까지 낸 이학래의 증언을 많이 참조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학래의 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이 소설을 두고 이야기하자면, 최상민은 친일파이며, 범죄자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죽이도록 도왔고, 죽이게끔 방관했으며 이 모두를 끝까지 반성하지 않고 '그땐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로 스스로를 변호하며 '다른 사람들은 잘만 빠져갔는데' 억울해 하다 뉘우침 없이 죽었다. '몰랐다'는 것은 변명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타이의 아이히만이여. 육신이 행한 일을 부정하는 자기합리화, 진정한 정신승리, 비열한 자기변호의 인물. 이는 우리 주변에 가장 흔하게 존재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읽고 최상민이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감싸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윤리 의식을 다시 점검해보기 바란다. 제네바 규약을 몰랐다고 해도 남을 때려죽인 일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 일본인들이 시켜서 그랬다는 말이 친일 행위의 면죄부가 될 수도 없다. 최상민이 설령 살아서 만 명의 사람을 살리는 의사 선생이 되었다고 해도, 그가 타이의 밀림에서 포로들에게 가혹행위를 했다는 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빼기 100에 더하기 10000을 한다고 총계 9900이 되는 게 아닌 것이다.

  시간의 순서를 뒤죽박죽 섞어놓고, 앞에서 무심한 듯 툭 던져놓았던 떡밥을 뒤에 가서 거대하게 회수하는 기술이, 세련되었고 읽는 재미를 주지만(왜 이 재미를 뒤로 갈수록 포기했을까), 이 계열에서 이 수법으로 거대한 산맥을 이룬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에 비하면 수준이 낮다. 인간의 끝없는 자기합리화와 자기변명, 어리석을 정도로 거짓된 논리를 만들어 그 안에 자신을 가두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기만성에 대한 고발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긴 하지만 이 주제로 거대한 산맥을 이룬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에 비하면 역시 수준이 낮다. 커트 보네거트와 가즈오 이시구로의 냄새를 맡을 수 있지만 그만은 못하다는 점, 500여 페이지 동안 이야기의 수준이 일관되었다기 보다 들쭉날쭉하다는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작가 아버님의 전쟁 체험 때문인지 일본인을 너무 일방적으로 미워하며 오스트레일리아 만만세 외치는 국수주의의 냄새가 나서 점수 하락하였다. 어째 백인들은 이렇게 자기들 당한 거에는 부들부들하면서 자신들이 죽인 몇백만 명의 흑인&황인들의 이야기를 하는 데에는 무심할까. 홀로코스트에 분노하며 절규하지만 자신들이 죽인 제3세계(이 단어 설정부터 이미 자기들은 1,2세계)인들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는 것이 서구의 백인들이다. (이에 대해서는 장정일의 칼럼을 참고하시라. 장정일 '서구 문학의 홀로코스트 집착', 한국일보  http://www.hankookilbo.com/v/6916e732338f401a98870aea6b8cdccc자신들을 세상의 중심으로 설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어쩔 수 없는 백인 남성 작가들의 한계다. 하지만 이런 저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역으로 바로 그 점에서 '다른 책도 이럴까?' 싶고, 향후 발전의 가능성이 있다 싶고, 그래서 몇 작품 더 읽어보고 싶어지는 작가다. '굴드의 물고기 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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