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릿 - 한동원 장편소설 담쟁이 문고
한동원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책속의 배경은 1980년대 후반 내가 초등학교 시절이었지만, 모든게 낯설지 않았던 이유는 언니의 영향력이 컸던 걸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언니들과 니이차가 꽤 커 실제로 언니가 고등학교 시절의 풍경과 흡사했고, 집에서 흘러나오던 록음악이 심심치 않게 있어 놀랬다.
집에서 LP판의 락음악이 밤마다 쿵쿵거렸고, 어머니는 실제로 이 소리나는 LP판을 언니 몰래 버린 적이 있어 집안에 폭풍이 휘몰아친 적도 있었다.

이 모든 풍경들이 마치 내가 고등학교 때 겪었던 일들이 눈앞에 펼쳐진 것 같다고 하면 오버일까...
나 또한 선도부와 학생주임 선생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두발자유화를 외쳤으며 같은 장르는 아니지만, 선생님들이 죽어라 싫어하던 가수 서태지를 좋아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입가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고등학교의 남학생의 모습을 너무 생생하게 그려 진것도 있지만, 그 시절에 유행했던 의상이나, 말투 그리고 학교앞의 분식집의 풍경들... 시대는 틀리지만 모든 것이 학창시절을 생각나게 해 오랜만에 내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해준 기분 때문이었을 거다.

소설 속 주인공 동광은 문교부 슈퍼컴퓨터의 실수로 함주석과 양수은을 만나게 되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서고, 경찰서라는 음치한 곳에까지 끌려가 조사를 받게 되는 소설같은 일들이 일어났다고 하지만, 아마 동광이 실제 인물이라면 이보다 더 즐겁고 행복했으며 수순했던 학창시절은 없었다며 자녀들 앞에서 무용담처럼 들려줄 수 있는 인생 최고의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비록 소설 주인공이긴 하지만 이런 열정이 부러웠고, 학창시절의 회상할 수 너무나큰 추억이 한가득 있는 동광이 너무 부러웠다면 이상한 걸까? 소설은 읽는 내내 내 학창시절을 회상하는 순간 즐거웠던 추억보다는 오로지 대학을 위해 주구장창 공부만 해댔던 내 학창시절이 조금은 억울한 느낌마저 들었다.

“생각해봐라. 예을 들어 A하고 B 두 놈이 있는데 A는 「필수 데이트 화술」, 「데이트 유머 총정리」,「서울 시내 데이트 명소」같은 책 달달 외워서 그대로 늘어놓는 놈이고, B는 어설프게나마 자기가 평소 좋아하던 허름한 찻집에서 어눌하니 자기 말투로 자기 얘기를 하는 놈이고, 니가 여자라면 어느 쪽한테 더 끌리겠냐구.”
p 173

이 부분은 양수은이 동광과 함주석을 비교하는 문장이다. 함주석은 뛰어난 연주실력을 가졌지만 음악의 열정만큼은 동광이 훨씬 앞서고 있다는 걸 동광에게 일깨워주는 장면이다.
아마도 인생의 모든 일에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천재는 세상에 무수히 많지만, 진정 성공하는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이다’라는 글귀을 본 적이 있다. 노력의 열정은 세상이 선택한 천재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실력이 아니라, 그 사람이 풍기는 열정이라는 묘한 매력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또 즐거웠던 장면중에 하나는 바로 동광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아연에게 연애편지를 쓰는 장면과 그 연애편지의 내용이다. 아연은 동광이 일렉 기타를 들수있는 매개체 였고, 5시 17분은 인생에서 오래도록 기억 될 수 있는 멋진 장면을 머릿속에 새겨넣을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준 친구이다. 연애편지를 써준 댓가로 받은 돈으로 기타 연습을 하고 아연에게 LP판을 선물해 주는 이야기들이 있어 더욱 재미있었다.

이외에도 시대적 모습과 표절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너무 무겁지 않게 유쾌하게 그려놓았다. 그러나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절반은 이 속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아주 유쾌하면서도 절대 가볍지 않는 소설을 읽었다.
삐릿은 마이클 잭슨의 노래 '비트 잇'(Beat it)을 동광의 잘 못된 발음이다.
그러나 한동안은 나도 동광처럼 ‘삐릿’이라고 발음을 할 것 같아 웃음이 절로 새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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