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철학 - 이진우 교수의 공대생을 위한 철학 강의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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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처럼 모든것을 의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철학자들을 소개한다.

역사를 의심한 마르크스부터 신을 의심한 니체, 의식을 의심한 프로이트,

존재를 의심한 하이데거, 언어를 의심한 비트겐슈타인 등으로 총 10명의

철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헤겔은 이성이 이 세상과 역사를 지배한다고 해석했다. 마르크스는 이 지점을 비판했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이성적이라는 철학적 전제를 받아들이다고

가정하고  인류의 역사가 온갖 명분으로 자행한 대학살, 착취, 잔혹한 전쟁,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으로 진행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수

있을까? 마르크스는 역사를 이렇게 설명한다.


세계를 해석하는 우리의 정신을 규정 하는 것은 오히려 현실의 물질적

조건이다.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 이 아니다. 자신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은거꾸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다.

 

니체의 신이 죽었다는 의미는? 신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을

창조한 조물주가 없다는 의미다.  인간이 왜 존재하는지,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이 사라졌다 는 것을 의미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에서 신의 죽음을 전달한 광인은 등불을

들고 나타났다가 등물을 내던진다. 이 책에서 등불은 계몽을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연스러운 이성의 빛'이 등불이다.

니체가 예고한 신의 죽음과 허무주의는 '방향상실'을의미한다.


프로이트는 "자아는 자기 자신의 집주인이 아니다"라는 말로 이제까지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고 믿었던 이성과 의식을 철학의 왕좌로부터

끌어 내렸다. 프로이트는 억압을 통해 어떤 표상이 의식의 전면에 나타나지

않을 때 '무의식'의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억압된 것이 억압된채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우리를 위협하는 고통은 대체로 세 방향에서 온다고

한다. 첫째는 우리 자신의 육체, 둘째는 외부 세계, 그리고 셋째는 관계다.


"자아에 길들여지지 안은 본능적 충동을 만족시키는 것은 길들여진 본능을

충족시키는 것과는 비교할수도 없을 만큼 강렬한 행복감을 준다."

사람들은 불행을 면했거나 고통을 이겨낸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 행복은 영원히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문명이 발전한다.


하이데거는 1919년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행한 강의에서 강단을 예로

설명했다. 저기에 '강단'이 있다. 여기서 강단은 존재자고, 있음은 강단의

존재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교실에 들어서면서 강단을 보고 약간 높게

만들어진 "직각으로 된 갈색의면"으로 인지하는 것이 일상적 체험은

아니다. 강단은 하이에거가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자리이고, 그 위에는

교재처럼 보이는 책이 놓여 있고, 교탁은 교수에 비해 조금 높이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강단을 항상 특정한 조명과 배경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본다. 그러기에 강단이 저기에 있다는 사실의 의미는 강단이란

존재자를 설명한다고 해서 해명되지 않는다.


우리가 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이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든 우리는 모두

'세계 안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세계-내-존재는 인간 실존의 근본 양식이다.


대중의 교통수단을 사용하면서, 정보매체를 이용하고 타인은 모두 같은 타인인

셈이다. 서로 함께 있음은 고유한 현존재를 완전히 '타인들의 존재 양식'소으로

해체해버리며, 그래서 타인들의 차별성과 두드러짐이 더욱더 사라져버리게 된다.


우리는 남들이 보고 판단하는 것처럼 읽고 보며 문학과 예술에 대해서

판단한다. 또한 우리는 남들이 그렇게 하듯 '군중'으로부터 물러서기도 한다.

남들이 격분하는 것에는 우리도 격분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무릇 말할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말할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순간부터 언어는 사물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표현하는 것이고, 이성도 사물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특징을 인식하여 이 특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유에 한계를 성정한다는 것은 생각한 것, 즉 '사상의 표현'에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사상은 오직 언어를 통해 표현될 수 있다면, 사유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곧 언어에 한계를 긋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세계를 마주하고 최초로 행하는 언어 행위는 두말할 나위 없이

'이름 짓기'다. 우리와 관계를 맺는 사물들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동시에

'관계 맺기'다. 우리가 명명한 이름들을 연결시킴으로써 우리는 세계와 관계

를 맺고, 세계를 서술하고 인식한다.


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는에 따르면 계몽은 예로부터 인간에게서 공포를

몰아내고 인간을 주인으로 세운다는 목표를 추구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완전히 계몽된 지구에는 재앙만이 승리를 구가하고 있다. 계몽의 프로그램은

세계의 '탈마법화'였다. 계몽은 '신화'를 해체하고 '지식'에 의해 상상력을

붕괴시키려 한다.


자연이 공포의 원천이라면, 우리는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연을 지배

해야 한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도구적 이성'의 성격을 예리하게

분석한다. 도구적 이성에 의한 계몽은 자연을 오로지 계산과 지배의 대상

으로만 파악한다.


장폴 사르트르에 따르면 개인은 공동체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공동체의 가치와

방침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직업적 역할을 하나의 기계처럼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사르트르는 카페의 종업원이

"이 잉크병이 잉크병"으로 있고' 컵이 컵'으로 있는것'과 같은 뜻으로"

실존한다고 묘사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한에서만 실존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자유를 실천하는 한에서만 자유롭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 자신의 삶,

실현된 자유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선택을 지속적으로

미루고 다른 삶을 꿈꾸기만 하는 사람은 자유의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고

자기 자신을 기만한다.  자유가 우리에게 원초적으로 부여된 불안에 적극적

으로 맞서는 방식이라면, '자기기만'은 불안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수동적 방식이다.


우리는 자유로도록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자유를 실천할

능력이 없어서 여러 가지 핑계를 댄다면, 이는 불안을 외면하고자 하는

자기기만일 뿐이다.


베냐민은 작품을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아우라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안개에 싸인 베네치아의 해안가를 걸으면서 독특한 아우라를 느꼈다고

하더라도, 여행 사진은 결코 이 아우라를 할께 재현하지 못한다. 복제가 아무리

완벽하더라도 예술 작품이 갖고 있는 일회성은 복제하지 못한다.



이 신발을 바라보면서 단지 하나의 생활용품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신발을 신고서 힘들고 고된 밭일을 했을 농부의 고난과 고독을 느꼈다면,

그것은 이 신발에 묘사된 아우라를 숨쉰 것이다. 그러나 오느날 이 그림을

보면서 농부의 고된 삶을 느끼는 사람은 얼마 없을것이다.



칼포퍼에 의하면 우리가 가진 모든 지식은 가설적이다. 이 가설은 경험보다

직관과 상상력에서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가설의 타당성은 오직

경험적 적용을 통해 증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화 과정과 마찬가지로

과학 이론의 발전 역시 끊임없 는 반증과 오류 제거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사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어떤 이론이 다른 이론보다 발전한 

이라면 그것은 이 이론이 다른 이론보다 더 잘 실패할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가 저술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라

할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의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재판

을 받게 되었을때 아이히만은 양심에 따라 행위하는 것은 바로 명령에 복종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칸트의 정언명령을 거의 정확하게 인용하였다.

아이히만은 나의 의지의 원칙이 항상 일반적 법의 원칙이 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칸트의 정언명령에 따라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칸트의 도덕철학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칸트의 정언명령은 인간은 실정법에 대한 단순한 복종을 넘어서 법의 배후

에 있는 보편적 원리와 자신의 의지를 일치시켜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에 복종하는 것을 양심의 요구라고 생각한다.


그런 아이히만 모습을 보면서 아렌트는 사회적 악은 타인과 사회에 대한

평범한 무관심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고결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깊은 무의식 속에는 원초적 폭력성과 금지된 행위에 대한 환상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아렌트가 주목한 것은 바로 악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악에 저항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 조직이다. 한나 아렌트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수

없는 무능력함이 사회적 악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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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
이즐라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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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허영을 위한 퇴근길 철학툰'은 철학은 왜 읽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었을 때의 짜릿함이
즐겁고, 지식이 쌓일수록 똑똑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기뻤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철학이라고 하면 멋있어 보였다고 합니다. 저도 인문학 책이나
교양과학 책 읽을 때 그런 감정을 느꼈기 때문에 이 문장에 크게 공감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철학이 멋있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철학이라고
하면 실용성 없는 쓸데없는 학문 그리고 말장난 아닌가?라고 생각했습
니다. 흔히 말하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딱 그런 느낌이
바로 철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저의 착각이었습니다.


제가 철학을 얕은 지식으로 만 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0년 전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통해 정치에 관심이 생기고
정치와 관련된 팟캐스트를 이것저것 듣다가 '지대넓얕'이라는 팟캐스트
를 알게 되면서 철학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도 철학 파트를
들어보면 굉장히 생소한 개념이라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과학백과사전이나 SF 소재를 다룬 영화 만화를 좋아해서 철학 이야기는
건너뛰고 주로 과학, 정치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존에 올라온 에피소드를 다 소비해서 더 들을 것이 없던
저는 철학을 한번 들어보자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필 처음
듣게 된 에피소드가 '프리드리히 니체'였습니다. 니체라는 글자가 '나체'로
보이던 저에게 니체의 '영원회귀'는 너무 충격적인 이론이었습니다.
정말 '망치 든 철학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저의 머리를 망치로 한대 얻어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철학을 좋아하게 되었고
팟캐스트만 듣던 저는 철학 책까지 읽게 되었고, 그 이후 심리학, 역사 등
책 읽는 습관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철학은 제 인생을 너무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책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가 누군이지 묻는 질문에 '스피노자'라고 답하지만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막상 하려고 하니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스피노자가 무얼 이야기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질문에 저도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가 누군이지 물어보면

누구라고 대답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한 명만 꼽는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 명만 말하자면
'쇼펜하우어'를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철학도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쇼펜하우어가 살아온 인생 때문입니다.


쇼펜하우어가 어릴 때 온 가족이 초호화 유럽 여행을 떠납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프랑스 빈민의 비참한 모습, 장교에게 채찍질 당하며 행군하는
영국 병사, 항구마다 참혹한 강제노동을 당하는 흑인 노예들을 보면서
크게 충격받았지만 정작 부모님들은 이러한 광경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에서 실망하는 쇼펜하우어는 실망합니다.


그 이후로 철학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을 보고 싯다르타와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싯다르타는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려놓고 고행의
길을 걷는 반면에 '쇼펜하우어'는 의지가 약해서 자신이 누리고 있던
부모의 보살핌은 포기하지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완벽하지 않아
인간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쇼펜하우어와 거의 비슷하게 좋아하는
또 다른 철학자는 '비트겐슈타인'입니다. 책 속에 한 문장을 발췌하면


P228.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의미가 삶의 조건에 의해 규정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한 언어를 상상하는 것은 한 생활양식을 상상하는 것'

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문장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이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인과

생활하는 문화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단 언어에 어순도

다르기 때문에 사고하는 방식 자체도 다르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리처드 니스벳 교수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심리구조가 같지 않다고 주장

합니다. 그는 수족관을 보여 주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조사하는 실험

에서 서양인은 물고기를 구체적으로 기억한 반면에 동양인은 물고기 외의 수초나 기포, 달팽이 등과 같은 배경을 더 잘 기억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닭과 소, 풀 중 관련되는 것을 묶는 실험에서 서양인들과 다르게 동양인들은 소와 풀을 엮는 결과가 많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 사례 말고도 미디어에서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영화
'컨택트'입니다. 거기서 등장하는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면 시간을 직선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원형으로 한눈에 사고합니다. 극중 등장하는 언어학자는 외계인
의 언어를 배우고 자신의 과거부터 미래에 자기가 죽는 순간까지의 모든 일을
볼수 있게 됩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가 생활양식까지 결정한다는 철학을
기본 전제로 스토리를 구축한 영화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한참 상영 중인 '해피데스데이 2'에서는 니체의 영원회귀를 굉장히

잘 표현하였습니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의 삶을

반복한다는 사상입니다. 얼핏 보면 윤회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점은

윤회는 죽어서 환생 후 다른삶을 살지만 영원회귀는 다시 태어나서

지금과 살았던 똑같은 삶을 또 반복하는 겁니다. 그래서 어차피 삶은

고통의 연속이고 반복된다면 너의 삶을 긍정하라는 뜻인데 이 사상을

정말 잘 와닿게 이해하고 싶다면 우선 책으로 사상을 접하고 철학이

담긴 미디어를 보면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느낌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철학을 좋아하는 이유와 읽어야 하는 이유를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가 말한 것과 같이 철학을 읽다 보면 질문을 하게 되고 사고력

이 증진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단순히 어느 철학자가 이렇게 말했다를

외우기보다 그 철학자가 말한 사상을 여기저기 대입해보면서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철학이나 심리학을 대입해서 생각해보고 미디어를

볼 때도 철학을 대입하여 생각 하기 때문에 책이나 영화, 드라마를 볼 때도

더욱 재미있게 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그림과 함께

쉽게 설명되어 있어서 입문자가 읽기에 상당히 매력 있는 책입니다.

이미 철학을 여러 번 접한 사람은 복습하는 개념으로 그림과 함께

가볍게 읽기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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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의 전쟁 - 기계와의 일자리 전쟁에 직면한 우리의 선택
앤드루 양 지음, 장용원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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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앤드루 양’은 2011년 하던 일을 그만두고 12만 달러를 투자해
‘벤처포 아메리카’라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벤처포 아메리카’는 대학 졸업생들을 훈련시켜 스타트업에 파견을 보내 18개 도시에서 2500개가 넘는 일자리를 만들었고 그중 몇몇 젊은이들은 수십 곳에 창업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P42. ‘승자독식 경제’가 이런 빌미를 제공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경제적 가치가 인간의 시간과 노동에서 점점 멀어져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보다는 짐짓
모른 체하고 1970년대의 방식을 계속 유지해왔다.

이 문장에서 ‘승자독식 경제’는 신자유주의를 의미합니다.
P145에서 더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습니다.

P145. 우리는 가족과 사회적 역할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는다.
그러면서 잠시만 쉬면 경쟁에서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린다. 여자는
육아와 일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는다. 남자는 직장에 충실한 삶과 낙오자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는다.

신자유주의가 휩쓸고 지나간 전형적인 사회모습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이 책말고도 다른책에 수없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책중에 예를 들겠습니다. 

우선 '콜24'라는 책입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노동자들이
어떻게 고통을 받는지 표현하였습니다.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는 신자유주의로 정치가 어떻게
제 기능을 못하게 되었는지 묘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신자유주의가 우리의 사고를
어떻게 지배했는지 정신분석학으로 서술하였습니다.

이책 '보통사람들의 전쟁'에서는  신자유주의와 급속도로 성장한 과학기술의 융합으로 앞으로다가올 미래에 무슨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고 어떻게 대비 해야하는지 설명하는 책입니다.

저자는 2016년 문득 불편한 감정이 자신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온종일 손님 몇 사람 받지 못한 것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도 있었고, 판자를 둘러치고 ‘매물’이라는 표지판을 붙인 상가를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패배와 뭐가 억눌린듯한 느낌이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라’라든가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기업가 정신의 메시지는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과 그곳이 같은 나라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치 세상은 불길에 휩싸였는데 홀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사람이 나오는 연속극의 인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서랍 속 깊숙이 숨겨져 있던 기억을 끄집어 내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다녀온 홍콩 여행에서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중 힘겹게 리어카를 끌며 높은 경사면을 오르는 한 노인을 보았던 기억입니다. 그때 저도 책의 저자와 같이 각 나라의 하층민들은 불길에 휩싸였는데 홀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여행을 다니는 철없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P31. 건물이나 주위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였다. 그들은 삶의
기대치가 낮아져서 그냥 하루하루 목숨을 이어가는 사람들처럼 실의에 빠져
의기소침한 모습이었다.

이 문장에서 업무 때문에 지방으로 출장 갔을 때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얼굴이 교차하였습니다. 1970년대만 해도 기업은 직원에게 연금을 넉넉하게 주었고 직원들은 자기 회사에서 오랫 동안 일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득불평등 정도는 낮았고 기업은 직원에게 복지혜택을 보장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공황을 겪던 많은 나라들이 지향하던 ‘케인스식 경제학’은 1970년을 기점으로 영국의 '마거릿 대처'의 신자유주의 모델로 밀려나고 미국 또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부터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게 되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의 정책중 가장 유명한 정책은 국내에 많은 사람들도
거의 알고 있을 정도 입니다. 이른바 낙수효과입니다. 큰 기업이 잘되면
산에서 흐르는 물처럼 경제도 위에서 아래로 흘러 모든 사람들이 잘살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그러나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이상 믿지 않습니다.

4차 산업 혁명 이후 수많은 자동화와 기계가 일자리를 감소시키고 점점 사람이 설 곳을 잃어갈 것이다. 제일 먼저 일자리의 타격을 받는 직업은 택시운전사와 화물운전사이고 점점 단순한 패턴이 있는 업무를 가진 직업부터 없어질 것이다. 이는 블루칼라 직업에만 한정되지 않으며, 화이트칼라 직업 중에서도 패턴을 가진 업무는 얼마든지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하다. 예를 들면 판사, 변호사, 검사, 의사 등이 있다. 그런데 판사를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면 공감능력이 없기 때문에 무자비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런 내용은 너무 많은 언론, 책, 교양 프로그램 등 많이 다룬 내용이라 이제는 이미 외우고 있을 정도로 뻔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선 구체적으로 서술합니다. 예를 들면 대표적인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이 성장하면서 7개월의 기간 동안 백화점에서 일하던 근로자 10만 명이 실직했다고 합니다. 쇼핑몰 하나가 문을 닫으면 약 1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단순히 쇼핑몰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쇼핑몰에 납품하는 업체, 쇼핑몰 직원을 상대로 장사하는 업체 그리고 무엇보다 지방 정부의 세수가 줄어들어 이것은 지방 정부 예산 및 학교 예산의 감축으로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해결방안 중 한가지 수많은 대중 미디어에 노출되었던 ‘기본소득 제도'를 말합니다. 이 책에서 재미있던 제안은 사회 신용 포인트를 만들어 운영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사회 신용 포인트를 운영하는 어플을 만들어서 잠깐 아이를 맡겨야 하는 사람이 어플에 아이를 봐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등록하면 시간이 비는 사람이 그 아이를 돌보고 신용 포인트를 적립 받는 것입니다.

아이 말고도 반련 동물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돌볼 수도 있고, 여성 혼자 집에서 하기 어려운 일을 대신해주고 신용 포인트를 적립 받아서 나라에서 등록해준 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사용하여 돈처럼 사용 가능할 수 있게 만들자는 제안이었습니다.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해서 더 다듬어 도입해야겠지만 괜찮은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생각은 기본소득 제도가 대한민국의 물가를 반영해서 사회적 합의에 따라 어느 정도 지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자동화가 빠른 나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언론에서 다루지 않을 뿐입니다.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매장에 가면 자동으로 주문하는 ‘키오스크’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 기계가 한 개 들어왔다는 의미는 사람을 1명~3명 정도 더 채용해야 하는데 채용하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키오스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공장들을 가보면 이전에는 기계 앞에 사람 1명이서서 하던 일이었는데 이제는 기계 앞에 사람이 서있지 않는 곳도 많습니다. 사무실에 있던 사람 1명~3명이 나와서 잠깐 기계를 손보고 다시 사무실에 들어가 있는 광경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공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이는 공장에서 노동해야 할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기술의 발달로 노년층이 소외되는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페스트푸드점 키오스크에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한 노인이 아르바이트생에게 따지고 있는 광경을 봤습니다. 나는 저걸로 주문을 못하겠는데 그냥 여기서 주문하면 안 되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그러나 회사 규정상 무조건 키오스크에서 주문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거절하였고 그 노인은 겨우겨우 줄 서있던 한 손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음식을 먹게 되었습니다.

얼마전 내가 겪은일이 인터넷 기사가 되어 올라온 것을 봤습니다. 그 기사에 댓글을 읽었는데 어떤 젊은이들은 “늙으면 죽어야지 라든가 늙어서 무슨 햄버거를 먹겠다고”라는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이 노인이 되었을 때에는 지금의 기술과는 또 다를 것이고 그때도 젊은이들은 쉽게 이용 가능하겠지만 정작 자신이 흉봤던 노인처럼 자신도 기계의 발달로 소외되는 현상을 반복해서 겪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의 제안대로 모두가 타인의 비극은 곧 나의 비극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서로 협력하고 공감하며 적극적으로 정치와 사회 부조리함에 맞서야만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 생각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어 최고 권력 대통령까지 탄핵시켰던 것처럼 진정한 권력은 대중들에서 나온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권리는 누군가 만들어 주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만들어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서평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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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파울 페르하에허 지음, 장혜경 옮김 / 반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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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캐슬 13회에서 이수임이 읽고 있었던 책으로 유명합니다.

이 책을 읽고 스카이캐슬을 보면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더욱더 잘 와 닿습니다.

이 책은 과거의 정체성은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현대의 서사는 '신자유주의'이데올로기라고 말합니다.

책속 구절중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현실이 일치하는 동안에는 다수가 그것이 현실이라고 믿는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요즘 유행하는 이 말은 곧 새로운 서사의

새로운 규범에 복종하라는 뜻이다.


책의 저자 '파울 페라하에허'는 문화와 정체성은 네 가지

주요 측면의 상호작용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합니다.

정치, 종교, 경제, 예술입니다. 과거에는 정치와 종교가

권력을 두고 다툼을 벌였지만 이제는 경제가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합니다. 신자유주의는 교육, 의료, 언론

모든 영역을 장악했다고 말합니다. 정체성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규범과 가치를 포함하고

이를 통해 타인과 맺는 관계도 결정합니다.


신자유주의는 자유시장의 자체 규제가 실패로 돌아갈 경우

국가 기능을 은행과 다국적기업의 보호자로 전환시키려 합니다.

개인 영역과 관련된 모든 것, 학교, 의료, 보안은 개인의 문제일뿐

그런일에는 국가가 단 한푼도 지출해서는 안된다는 서사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큰 주제는 정체성입니다.

이책의 저자 '파울 페르하에허'는 말합니다.

정체성은 외부세계가 우리의 몸에 새겨넣은 관념의 집합이다.



예를들면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를 뉴욕이나 파리에 입양시키면

뉴욕사람이나 파리사람의 정체성이 생깁니다.

이는 외부에서 정체성을 새겨 넣었다고 표현합니다.


즉, 환경적인 요소가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정체성은 존재보다 성장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고,

성장은 탄생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책의 저자는 우리는 타인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줄거라는 관념을 키워나갑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 이런 관념과

작별을 고한다는 뜻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인간의 공포중 가장 오래된 공포가

분리의 공포, 타인이 궁지에 빠진 우리를

모른 척하고 내버려둘지도 모른다는 공포라고 말합니다.



가장 오래된 형벌이 추방, 집단에서 배척당하고

외면 당하고 구석에 처박히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합니다.

정체성은 항상 일치와 분리 상호작용이 낳은 일시적인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헤겔에 따르면

자의식 기초가 타인에 있다고 말합니다.


통제의 시선이건 사랑의 시선인건 타인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고 합니다.

"아무도 날 존중해주지 않아"라는 말은 곧 내가 존재

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저 문장을 대입해 보면

존중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존재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피라미드 상류층으로 진입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일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김주영의 대사중에서도 존중에 관한 문장이 나옵니다.


"대학동기가 필즈상을 탔다네"

"대학다닐땐 내가 과 탑이었는데..."

"내가 희주처럼 살았어도 그런 취급을 당했을까?"


무시당했다는 기분은 존중받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책의 저자 파울 파르헤어에 따르면 존중받지 못함은

자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존재하고자 싶은 마음에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파멸시키며 자신의 정체성(존재)를 확인합니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에 의하면 자신의 존재가 없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립의 첫번째 행동은 단체에 소속되려고 노력하지만

결과가 좋지 못할때에는 소속되기보다는 

그 단체를 파멸시키려는 방향으로 변하게 됩니다.



정체성 발달은 이중의 위험을 안고 있고, 항상 공격성으로 귀결됩니다.

동화가 너무 일방적으로 진행되면 똑같은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

탄생하고, 모든 것을 경쟁하는 권위자가 꼭대기에 자리를 잡고

앉아 모든 공격성이 바깥이나 다른 집단을 향하도록 조절합니다.

또다른 위험은 정쳉성 발달에서 집단 형성의 측면이 너무 약해

구분과 개인주의가 너무 강조되는 경우에 나타납니다. 경쟁심,

사회적 고립, 고독이 초래됩니다.


결과는 질투를 유발하는 끝없는 좌절로 인한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리고 공격성은 가까운

주변의 타인을 향할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는 사회는 완벽한 동화를 꿈꾸는

사회와 마찬가지로 유지되기 힘들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책에서는 오늘날 우리는 자기 자리를 주장해야 하고 자기 목소리를

높여야 하고 자기 뜻을 관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기업의 면접자리, 타인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내가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직책은 무엇인지 말합니다. 그것도 매우 가치있는 사람인

것처럼 포장해서 말해야 됩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에서 보면

3대째 의사집안 주남대 기조실장, 검사부장 등 사회적인 계급이

우선시 되고, 개인의 취향이나 성격은 뒷전이 됩니다.

물론 성격이 직업에 크게 영향을 받을때에만 우선시되는 경향은 있습니다.



뇌는 '신경 가소성 입니다. 특정 요인의 영향을 받으면 변할수 있습니다.

뇌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태어나는 순간 인간의 뇌는 신경학적인 관점에서

완벽하지 않아 차후 전반적인 발달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그래서 주변 환경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거울뉴런은 무엇이 거울에 비칠지 결정하는 세포입니다.

거울뉴런이 없으면 정체성도 없습니다. 출생이후 뇌의 물질적

반전에도 환경이 큰 영향을 미치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는

회색세포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내용은 외부세계가 채워나갑니다.


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타자다 내면이 갈기갈기 찢긴

느낌에 빠지고 자신을 모순덩어리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화가 날수도 있고 나에게 만족할수도 있으며,

나로인해 슬플수도 있습니다. 이때 나를 평가하는 나는

내가 평가하는 나와는 다른 정체성에 생긴것입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타인이 결정합니다.

자신감, 자존감 같은 특성의 반전을 되 짚어보면 원래는 그것이

'타인의 신뢰', '타인의 존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린시절 타인에게서 받았던 신뢰와 존중의 정도는 성인이 된

우리의 자신감, 자존감에 반영됩니다.


※책의 마지막 결론


첫번째 정체성은 타인과 하나가 되고 싶은 욕망입니다.

두번째 자율을 지향하는 욕망에 의해 결정됩니다.

바람직한 경우 이 두가지 욕망이 균형을 이룹니다.

반대의 경우 첫번째 방향은 집단 형성과 복종의 욕망이고 

개인주의와 독립의 욕망입니다. 사회 집단이 너무 약하게 형성되면

개인은 타인에게 다가가고 싶은 욕망을 강렬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병상이나 왕따 같은 미심쩍은 공통점이나

공동활동을 통해 무언가 집단에 소속되고자 합니다.


반대로 집단이 너무 강하게 형성되면 개인의 욕구가

들어설 자리가 없어지고, 조금이나마 자율을 얻기 위해 부과된

규칙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전체주의 국가일수록

자율의 갈망은 강하고, 학교의 교칙이 엄격할수록 조금이나마

개인의 특성을 드러내려고 저항합니다.


저자 '파울 페라하에허'는 동일성과 차이, 집단과 개인,

지시된 동일성과 자유로운 선택의 균형을 회복시킬

정치체제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회질서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마지막에

세익스피어의 말을 빌려옵니다.


인간은 때때로 운명의 주인이 된다네.

우리가 아랫것 노릇 하는 잘못은, 

별들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다니까


-줄리어스 시저 1막 2장중 카시우스의 대사



이 책은 정신분석학자가 쓴 책이라서 정신분석을 

초로 두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바로 읽었던 책은

정치인 '샹탈무페'에 '좌파의 포퓰리즘을 위하여'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단단하게 세상을 장악한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해체시키고

새로운 복지국가를 건설할수 있을지 정치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가 정치학적으로 풀어냈다면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가 정신분석학으로 분석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를 먼저 읽고

신자유주의가 우리의 사고와 정체성을 어떻게 바꾸고 지배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고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를 읽으면서

신자유주의사상이 어떻게 정치판을 바꾸고 장악했는지

참고하면서 읽으면 더 재미있게 읽을수 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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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샹탈 무페 지음, 이승원 옮김 / 문학세계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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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를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는 '신자유주의' 서사로 우리가 어떻게 정체성이 형성되었는지

정신분석학적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정치인이 쓴 이 책은 

정치학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말하고 있습니다.


토니 블레어는 '선택은 좌익적 경제 정책과 우익적 경제정책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경제 정책과 나쁜 경제정책 사이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책의 저자는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구성체는 제 2차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30년동안 케인즈식 사회 민주주의 복지국가를 대체했다고 말합니다.


※헤게모니(hegemony) 란?


가장 통상적인 의미에서 한 집단·국가·문화가

다른 집단·국가·문화를 지배하는 것을 이르는 말.


신자유주의 시장의 핵심은 탈규제, 민영화, 재정긴축을 부과하고

국가의 역할을 사유재산권 자유시장과 자유무역의 보호로 한정짓는데

목표를 둔 정치경제적, 경제적 실천이라고 말합니다.


신자유주의는 2007년 미국에서 '비우량 신용대출' 시장이 몰락하면서

시작된 위기와 그 다음해에 투자은행인 '리만브라더스'의 과실로

인해 국제금융위기로 확산되었습니다. 그 이후 2008년이 되면서

신자유주의 한계는 심각하게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비우량 신용대출 [Sub-prime Mortgage ]란?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들을 대상으로 집 시세의 거의

100% 수준의 주택자금을 빌려주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상품


※리먼 브라더스 란?


2007년부터 불거진 미국 부동산가격 하락에 따른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결국 파산한 글로벌 투자은행(IB). 미국의 IB 랭킹으로는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에 이어 4위였다.


뒤따른 세계 경제하락은 유럽의 여러 국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면서
유럽 채무 위기를 촉발했습니다. 특히 남유럽 국가들은 극단적인 긴축정책을
펼쳤습니다. 경제위기 때에는 일련의 모순들이 응집되는데, 이것은
그람시가 '인터레그넘'이라고 부르는 상태로 나가게 됩니다.

인터레그넘(interregnum)이란?

로마법에서 최고 권력의 공백상태, 헌정의 중단을 가리키는 말로,
통치하던 왕이 죽어 아직 새로운 왕이 즉위하기 전의 상태를 말한다.
이 책에서는 헤게모니 기획을 중심으로 설정된
몇몇 합의들이 도전받는 기간으로 쓰였다.

콜린 크라우치가 처음 제시한 '포스트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결과라 할수 있는 의회의 역할 축소, 주권 상실의 상황에 대한 신호


포스트 민주주의란?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유지되고 법치국가의 성격이

유지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도달하려 한

목적을 선출된 정부가 배신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규정하는 말이다.


책의 저자 '샹탈 무페'는 '포스트 민주주의'로 묘사될수 있다고 말합니다.


P31. 자유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 원리들 사이의

경합적 긴장이 최근 몇 년 동안 신자유주의 헤게모니가 만든 결과에

의해 제거되어 왔기 때문이다. 평등과 대중 권력이라는 민주주의

가치들의 종말과 함께, 사회의 여러 다른 기획들이 서로 대결할 수

있는 경합적 공간들은 사라져 버렸고, 시민들은 자신들의 

민주주의 권리를 시행할 가능성을 박탈당해 버렸다.


P32. 탈정치란 좌우 세력간의 정치적 경계가 흐릿하게 되는 것이다.

탈정치 속에서 유일한 것은 중도우파와 중도좌파 정당들 사이

양당 교체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대한 대안은 없다는

신조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은 '극단주의자'로 보이거나

포퓰리스트로서 정치적으로 실격하게 된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봐도 자유한국당에서 민주당으로 교체 되어도

기대만큼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민주당 내에도 신자유주의

헤게모니가 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저자 샹탈 무페는 탈정치가 대중주권 시행을 위한 핵심조건인

사회의 여러 다른 기획들간 경합적 투쟁의 가능성을 제거하여

민주주의의 상징인 대중권력의 기반이 약해졌다고 말합니다.

포스트 민주주의 조건을 파악하려고 할 때 탈정치 다음으로

고려해야할 또 다른 것은 '과두제화'라고 합니다.


과두제화(oligarchy)란?


소수의 사람이나 집단이 사회의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독점하고 행사하는

정치 체제로서, 한 명의 군주나 독재자에 권력이 집중된 독재정치(autocracy)나

다수의 사회 구성원에게 권력이 분산된 민주정치(democracy)와 구분된다. 


저자는 정치 수준에서의 변화는 금융 자본이 장악하고 있는

새로운 자본주의 조절 양식에서 발생했다고 말합니다. 최근 몇 년간

목격해 온 불평등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를 불러왔다고 말합니다.


P34 '포퓰리즘 계기'가 파악되어야 하는 지점은 대중주권과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이상이 침식되고 있는 포스트 민주주의 상태이다.

특권적 엘리트들이 통제하는 정치 경제 시스템에 맞선

수많은 저항의 출현으로 특정지어 진다.


스페인에서는 '인디그나도스'시작으로

그리스에서는 '아카낙티스메노이' 그리고

분노한 자들의 운동은 유럽전역으로 확대 되었습니다.


인디그나도스(los indignados)란?


2007~2008년 금융위기로 인한 초긴축 재정으로 실업과

사회복지 축소 등에 분노한 스페인 시민들이 2011년 5월15일

전국 58개 도시에서 동시다발 시위가 유발되었다.


아카낙티스메노이(Aganktismenoi)란?


2010 년 5 월 5 일에 시작된이 운동은 그리스 정부 부채 위기 해결을 목표로

 110 억 유로의 구제 금융에 대한 대가 로 공공 지출을 삭감하고

세금을 긴축조치 로 인상하려는 계획에 의해 유발되었다.

'분노한 자들의 운동;은 스페인을 시작으로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2016년에는 프랑스에서 펼쳐진 뉘 드부 운동은 '광장운동'이라

불리는 위와 같은 저항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최근 프랑스의 노란조끼 운동도 위와 같이

신자유주의서사에 저항하는 운동중 하나인것 같습니다.

노란조끼 시위 운동은 기업들에게 세금을

삭감하면서 서민들에게 세금을 걷기 위해

유류세를 인상한다고 반발에 시작되었습니다.

도시에 부동산이 비싸서 수도권 외곽에 살고있는

서민층은 대부분 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유류세를 올리기 전에 고속도로를 지나는

통행료를 올렸었는데 유류세까지 올린다고 하여

이에 시민들이 반발하여 일어난 운동입니다.


우파 포퓰리즘 정당 지지 유권자들을 충동적인 욕정으로 움직이고,

그 욕정에 영원히 사로잡힌 자들로 몰아 세우면서 이들을 미리

배제하는 대신, 수만은 요구들 한 가운데 있는 민주적 핵심을

찾애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샹탈 무페'는 말합니다.


우파 포퓰리즘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제에

신경 써주는 유일한 자들이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뿐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이 정당들에 마음이 끌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샹탈무페는 좌파와 우파를 모두 흡수 있는 다른 언어가

만들어질수 있다면, 많은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상황을

경험하면서 진보적 투쟁에 함께 하게 될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샹탈무페는 비트게슈타인의 언어게임을 언급하면서 좌파라는 단어를 빼고

'민주적'포퓰리즘이라고 부를 것을 제안합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언어가 사고를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좌파'포퓰리즘은 많은 사람들이 거부합니다. 그 이유는

'좌파와 동일시되곤 하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신자유주의로

전환되면서, 좌파라는 기표는 완전히 신뢰를 잃었고 모든

진보적 의미가 소실되었기 때문입니다.


샹탈무페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은 그 자체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대중의 욕망을 지속적으로 동원하고 그들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야 하는 점을

이용하기 때문에 어느 다른 헤게모니를 세우려는 '대중'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공통의 정동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민주주의 급진화를 위한 조건을 생성하는 다양한

담론적/정동적 실천들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동(affect)이란?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에 코나투스는 인간이 행하도록

하는 욕망이라 믿으며, 인간이 다른 쪽이 아닌 어느 한방향으로

행하도록 만드는 것은 정동이라고 언급한다.


인간은 사적이며 공적인 상호관계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상태이다.

사람들은 친구의 고민을 들으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짓거나 위로하는

제스쳐를 통해 힘내라고 말한다. 정동은 이렇게 객관적으로 표현되고

행동에 들어나는 감정 상태를 의미한다.


스피노자는 라틴어로 정동(affectus), 변용(affection)을 구분한다.


'변용'은 한 신체가 다른 신체의 행위에 종속되는 상태이다.

외적인 것에 의해 변용될 때, 코나투스는 뭔가를 욕망하고

그에 따라 행하도록 하는 정동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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