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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 바이블 2021 - 버핏이 직접 말해주는 투자와 경영의 지혜 2 : 2017~2021 워런 버핏 바이블
이건.최준철.홍영표 엮음 / 에프엔미디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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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가왕 조용필은 64세의 나이로 10년만에 정규 19집을 발표합니다. 10년만의 귀환에 대한 반가움도 잠시, 이 앨범은 기존의 조용필을 기억하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기존과 음악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앨범의 타이틀곡 Hello는 힙합가수인 버벌진트가 피쳐링을 했습니다. 게다가 본인이 싱어송라이터임에도, 작곡을 다른 작곡가에게 맡겼습니다. 작곡가는 모두 외국인. 파격적 행보가 아닐 수 없었지요.

파격적 행보의 결과는 다행히도 달콤했습니다. 당시 조용필의 컴백곡 bounce는 23년만에 조용필을 지상파 가요순위 정상에 올려놨습니다.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에서는 올해의 노래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 연말결산, 뮤직뱅크는 조용필의 bounce에 연말결산 차트 1위를 알립니다. 2013년은 단연 조용필의 해였습니다.

이걸 단순히 가왕이 컴백해서 가왕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시 조용필은 부르던 스타일의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조용필의 comeback(컴백)이 아니라 조용필의 evolution(진화)라고 해야 옳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한 가왕의 타이틀을 가지신 분께서, 진화를 위해 외국인 작곡가에 곡을 의뢰하고 힙합가수의 피쳐링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그리고 그렇게 받은 노래를 64세의 나이로 컴백 스테이지에서 부르는 모습을 떠올리면 조금 숙연해집니다.

몇만 명을 스타디움같은 한 장소에 모은다는 것은 왠만한 스타가 아니고서야 힘든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BTS나 싸이 정도가 있겠죠 (물론 조용필도요). 해외로 시야를 넓혀 보면 저스틴 비버나 레이디 가가, 그리고 죽은 마이클잭슨 정도 떠오르네요. 이들은 다 가수죠. 가수가 아닌 사람은 딱 두 분 떠오릅니다. 91세의 백인영감인 워런 버핏, 그리고 98세의 백인영감 찰리 멍거입니다. 이들은 매년 미국에서도 시골인 오마하라는 도시에서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를 개최합니다 (비록 최근에는 코로나로 스킵했지만ㅠ). 이 때는 전 세계에서 수만명의 사람들이 이들을 만나기 위해 오마하로 모입니다. 자본주의의 우드락 페스티벌이라 할 만합니다.

서점에서 워런 버핏으로 검색하면 수백권의 책이 쏟아져나오지만, 실제 버핏은 책을 쓴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버핏의 생각은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를 위한 주주 서한과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2017년 이전의 버핏의 말과 글은 에프엔미디어에서 나온 '워런 버핏 바이블'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워런 버핏 바이블'은 투자자라면 반드시X100 읽어야된다고 생각하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2017년 이후의 버핏의 말과 글이 없다는 것이죠. 문제는 버핏이 계속 진화한다는 것입니다. 2017년 이후의 버핏은 기술주라 버핏이 싫어할 줄 알았던 애플로 대규모 수익을 내기도 했고, 항공사 손절로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으며, 가상화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워런 버핏 바이블 2021'은 2017년 이후의 버핏의 말과 글들을 잘 정리해서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워런 버핏 바이블 2021'은 꾸준히 진화하는 버핏의 사고를 따라갈 수 있는 좋은 길잡이입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워런 버핏 바이블과 같이 읽으면 더 좋습니다). 초기 버핏은 소위 담배꽁초 투자(가치에 비해 가격이 현격히 낮지만, 가격과 가치가 수렴하면 다시 팔아야 되는 회사)에 투자했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경제적 해자를 가진 주식에 투자(ex: 코카콜라)로 옮겨갔습니다. 이제는 기술주인 애플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큰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진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워런 버핏 바이블'이 '모나리자', '킬리만자로의 표범', '꿈' 등이 들어있는 조용필 1~18집 베스트 모음집이라면, 이번 '워런 버핏 바이블 2021'은 'bounce'와 'hello'가 들어 있는 조용필 19집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덧붙여, 이번 '워런 버핏 바이블 2021'은 기존 '워런 버핏 바이블'보다 훨씬 진보된 부분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바로 VIP자산운용 최준철 대표의 해설입니다. 사실 버핏의 말들은 투자에 어느 정도 기본이 없으면 그 말의 의미를 해석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최준철 대표의 해설은 초보자도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조용필 'hello'로 예를 들자면, 조용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음 이노래 좋네'하고 듣는 2000년대생 옆에 와서는 '이 노래는 과거 가왕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조용필 씨가 이제까지의 곡 제작방식에서 벗어나 외국인 작곡가에게 의뢰하고 힙합가수를 피쳐링으로 써서 음악적 세계를 넓힌 곡이야. 2013년 차트 1위란다'라고 해설해주는 식이랄까요.

실제 최준철 대표의 탁월한 해석을 하나 적어보겠습니다.

Q: 버핏은 애플의 자사주 매입은 좋아하는데, 왜 버크셔해서웨이 자체는 자사주 매입에 적극적이지 않고 현금을 가득 쌓아두나요?

최준철 대표: 애플은 재투자가 크게 필요하지 않은 사업은 운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장에 필요한 재원을 남긴 나머지 돈으로는 자사주 매입이 적절하다 봤습니다. 하지만 버크셔는 기업 인수 등 투자를 하는 회사이고, 보험회사이기 때문에 보험금 청구에 대비한 풍부한 유동성이 필요합니다. 즉 고유한 사업 모델과 기업의 생애 주기를 고려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의 해석은 독자가 스스로 생각해서 도달하기에는 쉽지 않은 경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책의 백미는 버핏 스스로의 말들입니다. 버핏은 탁월한 비유와 설명으로 듣는 이를 감복시킵니다. 중요한 문구를 빠짐없이 전달하고 싶지만, 그러려면 책을 그대로 옮겨야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감히 고르고 골라 책 전체에서 제가 제일 좋았던 문장 하나를 뽑았습니다. 투자하는 모두의 고민인 '레버리지를 사용해도 될까요'라는 질문의 대답입니다.

우리가 부채를 꺼리지 않았다면 그동안 우리 수익률이 더 상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찰리와 나는 밤잠을 설쳤을 것입니다. 우리는 없어도 되는 돈을 벌려고 피 같은 돈을 거는 행위는 미친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버핏의 진짜 멋진 점은, 투자를 배우기 위해 집어든 책에서 삶을 가르쳐 준다는 것 같습니다.

이상 '워런 버핏 바이블 2021' 서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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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골든아워 1~2 세트 - 전2권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8 골든아워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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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제목: 골든아워

저자: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 센터장)

출판사: 흐름출판


외상센터의 환자는 암환자처럼 자기가 알아서 찾아오지 않는다. 그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외상환자 생명유지의 핵심은 혈액이다. 혈액이 빠져나가기 전에 혈액을 붓든 상처를 꿰매든 응급조치로 환자를 살려놔야 하고, 이 조치가 한시간 이내에 이뤄지는 것이 생존율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환자의 생존을 결정하는 이 한 시간을 '골든 아워(hour)'라 칭한다. 닥터헬기는 그러므로 환자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외상환자를 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진이 그들에게 '최대한 신속하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엠뷸런스 기동 시,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평균적인 시간은 246분, 골든 아워를 지나고 3시간 후이다. 하지만 닥터헬기는 이 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 당연히 이는 환자의 생존률과 직결되며, 헬기가 없다면 환자는 길바닥에서 죽게 된다. 그리고 그 닥터헬기의 중심에 아주대병원 응급외상센터의 이국종 교수님이 있다.


이국종 교수님은 어떤 사람일까. 필자에게 인상적으로 남았던 몇 개의 장면이 있다.


장면 1: 어떤 강연회. 강연이 끝나고 이국종 교수님이 질문을 받자,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한다. '교수님이 힘드신게, 윗대가리들이 너무 헤쳐먹어서...아닌가요.' 동의해 주실 줄 알았으나, 이국종 교수님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학생. 자본주의라는 것은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최대한으로 헤쳐먹으면서 균형을 유지하는거에요.' 뜻밖이지만 현실적인 대답이었다.


장면 2: 모 연구소. 연구소에서는 닥터헬기를 대신할 일인용 드론의 개발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었고, 이어서 이국종 교수님의 강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아마 이 드론이 닥터헬기의 대안이라는 말에 바쁜 시간을 쪼개서 오신 것 같았다. 일인용 드론 아이디어의 핵심은 초경량화로, 조종사 없이 환자 근처로 날아가 환자를 태운 후 자동으로 병원으로 복귀하는 시스템이었다. 발표하는 연구소 직원의 표정은 들떠 있었다. 연구소의 발표가 끝나고 이어지는 교수님의 강연에서, 교수님은 앞서 발표한 일인용 드론의 현실성이 얼마나 떨어지는데에 대해 직설적으로 짚어주셨다. 지적의 핵심은 '혼자 힘으로 거동도 불편한 중증외상환자가 드론을 어떻게 혼자 타느냐'였다. 들뜬 표정으로 발표를 마쳤던 연구소 직원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점은, 교수님의 지적이 하나같이 맞는 얘기였다는 점이다.


장면 3: 책 '골든아워'에 수록된 내용. 일은 고되고 인정도 못 받는 응급외상센터 업무에 질린 이국종 교수님이 일을 그만두고 싶어 병원의 누군가를 찾아가는 장면이다. 그만둔 후의 생계가 걱정된 교수님은 '일도 고되고 인정도 못받는 것에 이젠 지쳤다. 허락해주신다면 몇개월 정도 갑상선외과와 유방외과쪽 수술에 전념하고 싶다. 그럼 병원을 그만두고도 갈 곳이 있을 것 같다.' 라고 말한다. 병원의 누군가는 대답한다. '너 그런거 하라고 우리가 데리고 있는거 아니다. 가서 하던거 해라.' 교수님은 생각한다. 그렇지. 월급을 주는 곳의 말을 들어야지. 나는 생계형 의사니까. 교수님은 말없이 업무에 복귀한다.


위 장면들을 모아보면 인간 이국종 교수님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다. 적어도 이 분은 이상만 쫓으며 '야! 돈이 중하냐? 환자의 생명이 최우선이지!' 같은, 듣기만 좋고 알맹이는 없는 드라마 대사같은 말을 떠드는 분은 아니었다 (장면 1). 하지만 알맹이 없는 말을 하는 '요령'이 없는 탓에 주변에 쓴 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건 처음 보는 연구소 직원이래도 마찬가지다 (장면 2). 그런 그도 인간인지라, 자신의 손끝으로 억지로 환자의 생명을 이승에 붙잡아놓는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생명은 축나는 답답한 현실에서 몇 번이고 무너져내린다 (장면 3). 그리고 장면 4에, 장면 3을 스스로 책에 써넣는 이국종 교수님의 모습이 있다. 그는 스스로를 꾸미지 않는다. 위대해보이고 싶어하지도, 사명감에 불타는것처럼 보이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교수님에 따르면, 외상센터의 문제는 결국 돈의 문제와 연결된다. 사실 외상으로 인한 사망은 전체 사망의 약 10%에 이르며, 특히 40대 이하에서는 사망원인 1위이다. 상당히 높은 수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소 외상의 높은 사망률에 대해 잘 접하지 못한다. 외상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들은 주로 자신의 몸을 써서 돈을 버는 건설일용직, 오토바이배달원 등의 저소득층이다. 이들은 병원비를 지불할 여력이 없고, 이들의 병원비는 고스란히 병원의 적자로 연결된다. 더군다나 이들 저소득층들은 정책같은 것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자연스럽게 정책자원은 치료비를 부담할 수 있는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정책으로 몰린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돈에서도 정책에서도 소외되어, 적절한 대처를 받으면 살아날 수 있었음에도 길바닥에서 죽어간다. 사회의 중추를 담당해야 될 40대 이하 노동자들이 한창 일할 나이에 죽어가는 것이다.


사실 외상센터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게 꼬여 있다. 외상센터의 환자는 사고부위가 정해져있지 않은 탓에, 외상센터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인체의 전 기관에 걸쳐 매우 강도높은 훈련을 감당해내야 한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다른 과보다 고되다. 환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들이닥치는 탓에, 의사는 불규칙적으로 이어지는 높은 강도의 수술을 견뎌내야 한다. 당연히 업무강도는 높고 불규직적이며, 개인의 삶의 질은 상당히 열악하다. 게다가 환자 발생시 응급치료가 적시에 이뤄지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사고 현장에는 의사 및 간호사가 동행해야 하고, 때문에 이들은 헬기 강하 훈련 등 다른 의사는 할 필요 없는 고된 훈련도 병행해야 한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이들 외상센터에 근무하는 의사나 간호사들은 고된 노동강도에 걸맞게 다른 의사들보다 좋은 대우를 받는게 맞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외상환자들은 치료비를 감당할 여력이 안 된다. 심지어 이들의 생존률에는 혈액 공급이 핵심이기 때문에, 수술중에 다른 환자들보다 갑절이 넘는 혈액을 수혈받아야 한다 (많은 경우 자신의 혈액보다 많은 양을 수혈받기도 한다). 하지만 보건부에서는 형평성의 원칙을 들어 이들이 남들보다 과한 혈액을 사용하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적정기준 이상 들어간 혈액은 병원에 비용을 청구하는 것이다. 환자에게도 정부에게도 돈나올 구석이 없는지라, 응급의료센터는 적자에 허덕이게 된다. 그러니 병원에서 응급의료센터 근무자들에게 보내는 시선이 고울리가 없다.


응급외상센터의 적자는 센터 근무자들의 실적이 된다. 낮은 실적을 이유로 근무자들의 봉급은 삭감당한다 (그 중 일부는 적자를 메꾸는 데 쓰일 것이다). 그러니 응급외상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돈도 못벌고 병원에서 인정도 받지 못한다. 그 와중에 어쩌다 사명감에 불타 지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들도 얼마 못 버티고 떠나간다. 밀려드는 환자를 외면하지 못해 그들과 함께 남은 의료인들의 처지는 처참하다. 센터의 정경원교수는 1년간 집에 4일을 갔다. 간호사들은 임신한 몸으로도 대체인력이 없어 헬기를 타고, 결국 아이를 낳지 못하고 유산하는 일이 반복된다. 어떤 간호사는 헬기를 탑승하다 손가락이 부러지기도 했다 (이 간호사는 산재처리를 받지 못하고 자비로 수술을 진행했다). 환자의 혈액검사 키트가 없는 탓에 (그것도 다 비용인지라) 수술중에 모르고 에이즈 환자의 피를 뒤집어쓰기도 한다 (다행히 모두 감염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센터는, 구멍난 시스템에 자신을 톱니바퀴삼아 끼워넣고 억지로 시스템을 굴리는 개인의 희생들을 연료 삼아 억지로 꾸역꾸역 굴러간다. 이국종 교수님은 그 한가운데에서 센터의 수장으로서 자책한다. 자신의 희생이야 자신의 선택이지만, 자신이 이 센터를 놓지 못하는 탓에 동료들이 갈려나가고 있다.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굴러가는 시스템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손님에게 내줄 녹차 티백을 아껴야 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이 일을 언제까지 내가 고집스럽게 해 나가야 하는가. 그렇게 다 포기할 결심을 했다가도 환자는 밀려오고, 눈앞의 환자의 수술에 집중하는 동안 결심은 다시 어딘가로 밀려난다.


본디 권역외상센터 사업은 이국종 교수님이 억지로 따온 것이 아니다. 이국종 교수님이 석해균 선장님을 살려내면서 갑자기 권역외상센터를 대상으로 한 정책들이 정부의 눈먼 돈과 함께 수립되기 시작했다. 이에 아주대병원을 위시한 전국의 병원들이 이 돈을 따내기 위해 권역외상센터 설립을 추진한다. 하지만 막상 센터가 수립되고 나자, 병원에서는 이 센터를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일반환자 진료에 이용하고 싶어한다. 이국종교수님은 '외상센터가 적자면 병원에서 센터를 접는다고 말하면 될 일이다'라고 말한다. 실제 교수님은 동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센터가 굴러가는 것에 큰 회의를 느껴왔고, 책에서도 센터 운영을 더 못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국가 보조비를 받기 위해 외상센터의 허울은 필요하다. 그래서 사업은 접지 않는다.


최근 인기있는 의학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를 보면, 정의로운 의사와 이를 방해하는 권력에 눈먼 의사와의 대립구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선명하게 드러나는 나쁜 상대를 두고 그와 싸우는 이런 구도는 좀 한가해보인다. 이런 드라마는 그 나쁜놈만 빠지면 마치 세상이 잘 굴러갈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중증외상환자 치료의 문제는 어떤 한 나쁜놈때문에 발생한 일이 아니다. 핵심은 결국 이들 환자가 적자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들이 적자를 일으키는 이유 중 하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환자에게 공급되는 혈액을 형평성에 맞추기 때문이다. 심평원이 혈액관리를 신경쓰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낸 보험료'를 잘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이런 구조를 볼 때마다, 악의 평범성을 얘기한 한나 아렌트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생각난다. 아이히만은 나치 독일의 명령에 따라 유대인을 매우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학살한, 매우 우수한 행정원이다. 그는 나치 정부에서 내린 명령을 너무나도 효율적으로 잘 수행한 탓에 악마가 되었다.


직관적인 생각에서, 아마도 중증외상센터를 잘 굴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지금처럼 찔끔찔끔하지 않는 대규모의 효과적인 재정 투입이다 (예를 들자면 국립 권역외상센터 수립). 그러려면 다른 예산을 줄이거나 (암환자라던지 등)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보험료 인상은 안그래도 경제가 어렵다 난리치는 유권자들에게 그야말로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헬기소리에 민원을 넣었다는 아무개 시민에게 달리는 악플에서 섬뜩함이 느껴진다. 우리는 이국종에게 욕설을 퍼부은 아주대 병원장을, 민원을 넣었다는 아무개 시민을 욕하며 우리와 그들을 타자화한다. 하지만 이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병원이 원하는 병원장의 모습이 병원의 수익 극대화에 맞춰져있는 한, 그리고 중증외상환자에게 적절한 정책과 예산이 추가로 공급되지 않는 한, 이국종 교수님의 처지는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핵심은, 국민건강보험에 직접 보험료를 납입하고 있는 우리가, 과연 아무런 희생을 치르지 않고도 중증외상센터를 굴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일지도 모른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은 안 나지만, 소위 '시골의사'라고 불리는 박경철이 그의 책에서 '오로지 나의 존재로 인해 살아난 생명이 열명만 넘어도 성공한 의사라고 한다. 나는 다섯명이나 될지 의심스러우나 나 때문에 떠나간 생명은 한참 많다'라는 식으로 쓴 글을 본 기억이 있다. 이국종 교수님께는 모 인터뷰에서 '이번 생은 망했어요'라고 한탄하셨지만, 오로지 이국종 교수님의 존재로 인해 살아난 생명이 몇명일까. 수백 수천명은 되지 않을까. 헬기를 타고 환자의 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의사는 대한민국에 이분 아니면 이분을 거쳐간 의사뿐이다 (그 숫자라야 보잘것없으나). 이미 그는 성공한 의사다.


최근 언론 기사를 보면, 교수님 본인은 더 이상 외상센터를 이끌지 않겠다는 뜻을 공고히 하신 것 같다. 애초에 어그러진 시스템이 개인을 쥐어짜 톱니바퀴를 기름칠해가며 여지껏 굴러왔다. 이제 더 이상 그분을 위시한 개인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순 없다. 그러니 힘내시라는 말도 예의에 어긋난다고 느껴진다. 그러니, 혹시라도 이국종 교수님께서 이 글을 보시게 된다면


이국종 교수님, 그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라고 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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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 위험 가득한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 최신 개정증보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차익종.김현구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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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블랙 스완

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역자: 차익종
출판사: 동녘 사이언스

세상은 가우스 정규분포를 따릅니다. 가우스 정규분포는 소위 '아름다운 종'모양을 한 곡선을 말합니다. 이 곡선에따르면 기대되는 사건은 평균을 중심으로 모여있으며 평균에서 멀어질수록 그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극히 미미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평균 남성의 키가 170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의 키는 160~180에 주로 모여있을 것입니다. 평균에서 10 이상 벌어진 값, 즉 160이하나 180이상은 드물지만 간혹 관찰됩니다. 20이상 벌어진 140이하나 200이상은 더 드물죠. 그리고 130이하나 210 이상은 너무 드물어서 손가락으로 꼽게 됩니다. 가우스 정규분포때문에, 세상의 모든 값은 평균을 중심으로 모여들게 됩니다.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 1991년에 세워진 투자전문 회사입니다. 하지만 여느 회사와 달랐던 차별점이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 두 명을 파트너로 뒀다는 것이죠. 이 두명은 소위 '옵션'에 투자하는 공식을 개발해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공식은 브라운 운동이라는 액체 내에서의 고체분자의 운동에 착안해 개발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시장에서 소위 '무위험 차익거래'를 이용해 돈을 법니다. 무위험이라 수익률이 적었지만, 이들은 이를 레버리지로 극복합니다. 그 결과 수십%대의 연수익을 올리며 승승장구합니다. 이들은 주로 채권에 투자했으며, 그 중에는 러시아 채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6년 뒤인 1997년, 영원할것 같았던 이들의 성공은 러시아가 모라토리움(채무불이행)을 선언하면서 무너집니다. 이 때 이들의 손실액은 47억 달러, 한화로 약 5조에 달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자기들의 자본금을 훌쩍 넘는 비용을 차입해 레버리지로 돈을 굴렸다는 겁니다. 미국은 이들이 일으킨 문제로 인해 심지어 금리를 인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되짚어봐야 될 한가지. 노벨상을 수상한 옵션 투자 공식의 바탕이 되는 운동, 즉 브라운 운동은 '가우스 정규분포'를 따릅니다. 사실 러시아의 채무불이행은 너무 예외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가우스 정규분포에서 저~~ 끝단에 위치한 '매우 미약한 확률'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매우 억울할 만도 했습니다. 운이 없게도 예외적인 사건이 일어난 탓에 정상적으로 운영되던 회사가 문을 닫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롱텀캐피털은 참 운영을 잘했는데 재수가 없었어. 하필 가우스 정규분포 저 끝에서나 발생하는 채무불이행 사건이 터질게 뭐람'라는 생각을 가질 법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얼마 후, 가우스 정규분포 끝단의 사건, 즉 채무불이행이 동시에 터져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때는 2008년입니다. 서브프라임, 즉 사회적 신용등급이 낮은 그룹이 집값을 도저히 갚을 수 없다고 동시에 드러누워버린 사건. 소위 서브프라임 모기지, 즉 2008년 금융위기입니다. 정규분포 끝단에 위치해서 발생할 확률이 매우 낮은 '채무불이행 사건'을 수만 수십만의 사람이 동시에 일으킨 겁니다. 

책 '블랙 스완'은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과연 세상은 정규분포를 따를까요? 이 책 '블랙 스완'의 저자 나심 탈렙에 따르면, 세상은 정규분포를 따르지 않습니다. 불행한 것은, 현대 금융공학은 가우스 정규분포를 기반으로 해서 세워졌다는 사실입니다.

블랙 스완은 말 그대로 검은 백조입니다. 원래 백조는 흰 백 자, 새 조 자를 써서 '흰 새'라는 뜻입니다. 수천 수만의 백조를 봤지만 모두 흰 색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흰 새'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지구 어딘가에서 검은 백조가 발견되었습니다. 수천 수만의 관찰끝에 세워진 '백조는 흰 새다'라는 관념은 그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관념이 무너지는 데에는 단 한번의 사건이면 족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검은 백조는 '극단적으로 예외적이어서 발생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 한번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을 몰고오는 사건'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말입니다.

탈렙은 인간의 오만을 비판합니다. 세상은 세상 그대로 바라봐야 되는데, 우리는 세상을 이론에 짜맞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늘 이론을 뛰어넘습니다. 침술이 통증을 완화하는 현상이 현대 의학으로 설명이 안 된다면, 이는 침술의 효능이 없는 것이 아니라 현대 의학이 아직 침술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의사들이'침술은 사이비다'라고 속단해 버립니다. 사실 쓸모없는 것은 침술이 아니라, 설명하지 못한다고 무시해버리는 현대 의학의 오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뭔가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대신, 설명되지 않는 세상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경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가우스 정규분포'를 따라 서술되었습니다. 그 비극이 바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 사태와 2008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입니다.

사실 가우스 정규분포는 어떤 패턴의 일종입니다. 인간은 세상 모든 것을 패턴화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이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패턴화가 좋은 이유는 우리가 익혀야하는 정보의 양을 줄여주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예를 봅시다.

1. 남편이 죽었다. 그리고 그의 아내도 죽었다.
2. 남편이 죽었다. 슬픔을 못 이긴 나머지 그의 아내도 따라죽었다.

문장의 길이는 2가 더 길지만, 기억에도 2가 더 잘 남습니다. 1은 우리에게 두 가지 정보를 줍니다. 하지만 2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패턴, 즉 '남편이 죽어 슬픔에 잠긴 아내'를 제시함으로서 두 정보를 하나로 묶어줍니다. 즉 패턴화는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를 줄여주고, 그 결과 더 효율적으로 뇌를 사용하게 해 줍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의 1의 문장을 보고 멋대로 2로 바꿔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1의 문장에 멋대로 '슬픔을 못 이긴 나머지'를 집어넣어 버리는 것이죠. 그 결과 가우스 분포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채무불이행 사태'를 익숙한 가우스 분포로 패턴화해 버리고, 결코 일어날 리 없는 사태를 10년에 한번 꼴로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아는 어떤 지식에 세상을 끼워맞춰서는 안 됩니다. 

미래 예측은 원래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미래는 예상되는 사건이 아닌 예기치 못한 사건에 의해 크게 바뀌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미래를 바꾼 발명들은 다 예기치 못한 사건이었습니다. 증기기관의 발명도, 스마트폰의 발명도, 아무도 예측할 수는 없었습니다. 예측 불가능성은 이렇게 설명이 됩니다. 우리가 예를 들어 5년 뒤에 나올 어떤 발명품을 예측한다고 합니다. 만약 예측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 발명품 만들기에 착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 합니다. 왜냐하면 5년 뒤에 나올 발명품은 지금 세상에서는 상상 밖의 발명품이니까요. 어떤 원시인이 '2년 뒤에 바퀴가 나와 세상을 바꿀거야'라고 예측했다면, 그 원시인은 그냥 당장 바퀴를 만들겠죠. 즉 미래를 바꿀 물건은 현재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예측도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소위 미래를 예측한다는 사람들이 쓴다는 방법은, 지금 현재의 패턴이 미래에도 반복될 것이라 예측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경제의 미래도 예측이 불가능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예측이 가능하려면 그 예측이 결과와 독립적이어야 합니다. 만약 예측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면, 예측이 나온 시점에 결과가 예측에 반응해서 예측치가 바뀝니다. 정부가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2%라고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예측치를 본 기업은 불황에 대비해 지출을 줄이고, 소비자도 소비를 줄입니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추경을 편성합니다. 이제 경제성장률 예상치는 2%가 아닙니다. 예상치가 경제주체에 영향을 미쳐버린 탓이죠. 그러니 전문가가 나스닥이나 코스피 지수를 예측하는 것은 정말 의미없는 행위입니다. 예측하는 사람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그 사람의 발언 자체가 지수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심은 경제학자들의 미래 해석만큼이나 과거 해석도 의미없게 생각합니다. 경제학자들이 과거 사건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을 보며, 저자 나심은 '녹은 얼음'의 비유를 듭니다. 여기 어떤 얼음이 있었는데, 녹아서 물이 되었습니다. 그럼 물이 되기전에 얼음은 어떤 모양이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사각 얼음이든 백조모양 얼음이든 녹아서 비슷한 물자국을 만들겠죠. 하지만 나심에게 경제학자들은 이 물자국을 보고 '과거에 얼음은 이렇게 생겼었습니다!' 하고 외치는 사람들입니다. 마찬가지로 나심은 역사학자들도 역사적 사건의 원인과 결과로 꿰어맞추는 사람들을 경멸합니다. 역사는 원인과 결과가 아닌 그냥 사건의 집합체로 보는 것이 맞다는 것이죠. 해석하는 순간, 우리는 사건들을 패턴화하게 됩니다. 즉 우리의 밖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우리의 해석범위 안으로 억지로 집어넣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경제학자들이 많이 받는 조롱이 '백미러를 바라보며 운전한다'입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사건의 해석에만 열을 올리고, 미래를 대비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투자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패턴화의 오류는 투자대상의 수익률을 직선을 긋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야 부동산은 한번도 실패한적이 없어. 앞으로도 실패 안할거야.'가 있죠. 하지만 어떤 사람이 하루를 더 살았을 때, 그 사람은 불사신에 더 가까워진 걸까요 죽음에 더 가까워진 걸까요. 어떤 상품이 지난 10년간 올랐다는 얘기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이 상품이 앞으로도 쭉쭉 올라갈지 아님 대폭락에 꾸준히 가까워진건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1991~1997년의 6년간, 롱텀캐피털매니티먼트는 단 한해도 적자를 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6년간 올린 수익을 전부 까먹는 데에는 단 며칠이면 충분했습니다. 

10년째 계속되는 한국의 박스피에 지쳐 수많은 투자자들이 떠나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패턴은 미래의 패턴을 담보해주지 않습니다. 절대 알수 없는 것, 예를 들면 코스피의 올해 등락폭 같은것 대신, 내가 알 수 있는 것, 즉 내가 타겟팅한 기업의 본질에 최대한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에 미래를 대비하는 방법 같은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나름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는 방법은 그 미래를 예측하는 대신 지금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두서없는 독후감 죄송합니다. 변명을 해보자면, 사실 책은 더 두서없습니다. 그래도 결코 요약으로 대체할 수 없는 책이니 관심 있으시면 한번씩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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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로저스의 일본에 보내는 경고 - 돈의 흐름으로 본 일본과 한반도의 미래
짐 로저스 지음, 오시연 옮김, 고사토 하쿠에이 외 감수 / 이레미디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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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바텀업 방식(자체 기업을 들여다보는 방식)과 탑다운 방식(시황, 국제정세, 국가의 경제정책, 산업군 등 거시적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나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워렌 버핏이 바텀업 방식의 투자 대가라면, 짐 로저스는 조지 소로스와 함께 탑다운 방식의 대가로 취급됩니다. 과거 짐 로저스는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운용, 10년만에 4200%의 수익률을 달성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퀀텀펀드는 1992년 영국 파운드화의 고평가를 예측하고 파운드화를 공매도해 약 2주만에 10억달러를 벌어들인 사건으로 유명합니다. 이때 파운드화의 가치는 20%정도 폭락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게 펀드가 영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경제를 뒤흔든 것이죠.

책의 주요 주제는 '일본은 저출산/고령화와 이민자 유입을 막는 폐쇄적 국민성, 거기에 정부의 잘못된 재정지출의 콤보로 망할 것' 으로 요약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또한 미래에는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이 아닌 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며, 막대한 인구와 근면한 국민을 보유한 중국, 역시 근면하며 똑똑하고 일본보다 개방적인데다가 북한과의 통일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한국이 미래에 아시아 패권을 잡을 것이라 예측했습니다. 

책 내용에서 섬뜩했던 부분은 우리나라의 발전이 통일이라는 이벤트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저출산/고령화/폐쇄적 국민성 부분은 주어에 일본 대신 우리나라를 넣어도 크게 이질감이 없이 읽힙니다. 실제 한반도 평화기류가 형성되기 전에, 로저스는 한국에 대해 '한국 경제는 역동성이 없다. 소수의 재벌이 경제를 독점하고, 젊은 층은 공무원을 최고의 직업으로 친다. 한국경제는 쇠퇴한다기보다는 정체되어 있다. 투자할 매력은 없는 나라다.'라고 극딜을 넣기도 했으니, 로저스의 평가는 당장 몇년이 아닌 굉장히 먼 미래를 내다보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통일까지는 아니어도 한반도 평화기류만으로 지금보다 훨씬 역동적이 될 거라고 전망하기는 합니다.

원래 대가의 책을 볼 때는 그 책의 결론보다는 사고방식을 엿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제 나름대로 그의 책 행간에 드러났다고 생각하는 몇몇 투자철학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바닥에서 사라: 그는 현재 아프리카에서 투자할 매력이 있는 나라 중 짐바브웨를 꼽았습니다. 짐바브웨는 현재 국가경제가 무너진 나라의 대명사로 꼽히는 만큼 뜻밖이지요. 추천의 이유는 지금 바닥이라 더 떨어질 일이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당장 짐바브웨가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는 본인도 동의했습니다. 로저스는 '어차피 짐바브웨 경제는 지금 바닥이니 투자해서 손해를 보더라도 얼마 안 될 것이지만, 만약 경제가 개선된다면 대박'이라고 평했습니다. 
짐바브웨 추천이 책에서는 간단히 언급됐지만 전 굉장히 인상깊게 봤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나름 고민해왔던 주제 중 하나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현재 굉장히 전망이 안 좋아서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지만 망하지는 않을 것 같은 기업이 있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의 선택은 '해당 기업을 예의주시하다가 회복의 조짐이 보이면 투자' 입니다. 하지만 회복의 조짐은 시장에 공개된 정보의 형태로 나타날 테고, 그 조짐과 동시에 투자대상의 가격은 올라갈 것입니다. 그래서 큰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오히려 회복의 조짐이 전혀 없을 때 투자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는 회복의 조짐을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눈치채는 것이 관건인데, 전업투자자도 아닌 내가 그렇게 투자에 시간을 쏟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의문도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로저스라면 만약 어떤 회복의 조짐이 있다면 그 어떤 투자자보다도 빨리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일텐데도 불구하고 미리 투자해놓으려고 하는 태도가 어떤 답변이 된 것 같습니다.

2. 분산투자: 로저스가 책에서 딱히 분산투자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행간을 읽어보면 자산을 상당히 분산해놓았구나 하고 짐작이 되는 몇몇 문장들이 있습니다. 짐바브웨 추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저스는 당장 가망이 없어보이는 투자처를 좋아합니다. 이런 투자방식은 잘 들어맞을 경우 그 보상이 매우 크지만, 보상까지 얼마의 시일이 걸릴지는 기약이 없습니다. 
책에 재밌는 대목이 하나 나옵니다. 로저스는 한국이 북한과 통일이 될 경우 항공산업이 대박이 날 것이고, 그래서 항공 1등주인 대한항공에 투자했다고 언급합니다. 어떻게 보면 통일이라는 이벤트를 전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 테마주에 투자한 것과도 비슷합니다. 그럼 로저스와 테마주 투자자들의 차이는 어디서 나올까요. 여기부터는 제 추정인데, 로저스는 틀림없이 대한항공에 자신의 자산을 비중있는 규모로 넣어놓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이미 대주주로 떴겠죠). 다만 책의 말미에 로저스는 어떤 기업에 투자하더라도 재무제표를 주석까지 꼼꼼히 보고 투자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니 대한항공에 대한 재무분석은 여느 투자자들 이상으로 되어 있을것이라 짐작됩니다. 그러니 위 짐바브웨의 예처럼 누가 봐도 경제가 바닥이거나, 혹은 재무분석을 통해 기업의 안정성을 체크 후, 누구도 어떤 특정 이벤트(짐바브웨의 경제회복이나 한국의 통일)를 예상하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대상에 자본을 분산해놓는 것이 로저스의 방식 같습니다.

3. 안전마진: 분산투자처럼 로저스가 안전마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이도 어떤 문장을 보고 느낀 점입니다. 책에서 로저스는 '앞으론 중국의 시대가 될 것이라 딸들에게 중국어를 익히게 했다. 하지만 내 예상대로 되지 않더라도, 15억 인구가 쓰는 말을 배워서 손해볼 것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언투자의 박성진 대표님은 안전마진을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라고 했습니다. 로저스가 딸들에게 중국어를 익히게 한 것은 물론 자신의 생각대로 되면 대박(중국이 세계 1위 대국이 됨)이기 때문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불확실성으로 인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쪽박은 아니라는 점 (15억 인구가 사용) 입니다. 내 생각처럼 안됐을때의 대비책 이라는 관점에서, 이 부분에서 저는 로저스의 안전마진을 느꼈습니다.

4. 투자 대상에 대한 이해: 흔히 바텀업 투자와 탑다운 투자를 전혀 다른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로저스를 보고, 탑다운의 대가임에도 불구 철학의 많은 부분이 바텀업 중심의 가치투자와 겹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로저스는 책에서 어떤 기업에 투자할 때 재무제표를 그 누구보다도 꼼꼼히 본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결국 탑다운도 바텀업도 출발점이 다를 뿐, '투자대상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된다'라는 기본 명제는 동일하다고 느꼈습니다.

당장 한국에서 맨날 북한의 미사일 발사소식을 보는 우리의 입장에서, 통일을 전제로 한반도의 밝은 미래를 그리는 로저스의 입장이 좀 뚱딴지같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로저스는 과거 천안문 사태 때, 전세계의 자금이 중국을 떠날 때에도 '중국 경제는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고 큰 수익을 남긴 바 있습니다. 로저스의 경력을 볼때 그가 그리는 미래는 당장 다음달이나 내년이 아닌 몇년 뒤를 타겟으로 합니다. 물론 그의 예측을 맹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하지만 한반도의 평화기류에 관해서는 전 세계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보고받을 수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한반도 평화기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로저스의 의견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외국의 투자자들은 예측해야 되지만, 우리는 대응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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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는 실전 재무제표 - 재무제표 서적으로 아마존 초유의 베스트셀러가 된 책, 개정판
토마스 R. 아이텔슨 지음, 박수현 옮김 / 이레미디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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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알아보려면 그 사람과 진솔한 대화를 해 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죠. 한편 버핏이 자신의 후계자의 예로도 언급했다고 알려진 피터 컨딜은 '회계는 기업의 언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 재무제표를 읽는다는 것은 기업과의 대화라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인과 대화하려면 영어를, 일본인과 대화하려면 일본어를 알아야 되듯이, 재무제표로 기업과 대화하는 것도 그 언어를 해석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은 필요합니다. 여기까지는 대개의 투자자가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무제표 분석은 많은 투자자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미루게 되는 분야 같습니다. 재무제표 책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는 얘기도 참 듣기가 힘듭니다. 그건 아마 누군가의 말마따나, 베스트셀러는 독자들보다 '반 발짝만' 앞서가야 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한 발짝 이상 앞서나가는 책은 독자가 그 책에 담겨진 내용을 쫓아가고 이해하는 데 보통 이상의 노력이 들어가야 되고, 결국 선택을 받지 못하죠. 한편 재무제표라는 분야는 따분할 것이 뻔해 보이는 딱딱한 용어와 숫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해하려면 보통 이상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그럴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러니 그 내용의 가치와 무관하게, 재무제표 책을 읽는것은 많은 투자자들이 뒤로 미루기 좋은 요소가 다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눈에 보는 실전 재무제표'는 중요한 하나의 산을 넘은 책입니다. 책 표지에 '재무제표 서적으로 아마존 초유의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라고 적혀 있네요. 이는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 책이 독자의 따분함을 달래기 위해 따분한 내용을 상당수 빼놓았을 가능성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책이 필요한 내용을 담으면서도 나름의 방법으로 따분함을 줄여줬을 가능성입니다. 사실 전자는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다. 적어도 이런 제목의 책을 읽으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은 이 따분해보이는 분야에 대한 정복욕심이 있는 사람들이고, 그런 사람들이 따분하지 않다고 해서 내용도 없는 책을 고를리는 없으니까요. 그러니 이 책은 재무제표를 나름의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따분하지 않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겁니다. 그리고 책을 읽어보면, 그게 사실입니다 (물론 최소한의 집중력은 필요합니다).

책에서 따분함을 줄이기 위해 사용한 방식은 '가상의 회사 설립'입니다. 이 책에는 애플시드주식회사 라는, 애플시럽을 만들어 파는 회사를 창립하고, 주식의 발행부터 시작해서 각종 비용과 이득을 재무제표에 기록하는 식으로 각 항목을 우리에게 설명해줍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실제 회사 경영을 막 시작한 CEO의 입장에서 이 책을 보게 됩니다. 이는 재무제표의 항목을 우리에게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비유하자면, 고전적인 재무제표 교과서가 마치 2D 영화처럼 옆에서 회사를 지켜보는 거라면, 이 책은 VR 기계처럼 그 안에 들어가서 주인공이 되는 효과를 주려 했다고 할까요.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고나면, 재무제표 해석법을 읽었다 는 느낌보다 한번 '체화했다' 는 느낌이 드는 것도 같습니다. 재무제표의 중요도에 대해서는 많이들 알고 계실 것이니만큼, 재무제표를 보다 친숙하게 체화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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