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골든아워 1~2 세트 - 전2권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8 골든아워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 골든아워

저자: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 센터장)

출판사: 흐름출판


외상센터의 환자는 암환자처럼 자기가 알아서 찾아오지 않는다. 그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외상환자 생명유지의 핵심은 혈액이다. 혈액이 빠져나가기 전에 혈액을 붓든 상처를 꿰매든 응급조치로 환자를 살려놔야 하고, 이 조치가 한시간 이내에 이뤄지는 것이 생존율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환자의 생존을 결정하는 이 한 시간을 '골든 아워(hour)'라 칭한다. 닥터헬기는 그러므로 환자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외상환자를 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진이 그들에게 '최대한 신속하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다. 엠뷸런스 기동 시,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평균적인 시간은 246분, 골든 아워를 지나고 3시간 후이다. 하지만 닥터헬기는 이 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 당연히 이는 환자의 생존률과 직결되며, 헬기가 없다면 환자는 길바닥에서 죽게 된다. 그리고 그 닥터헬기의 중심에 아주대병원 응급외상센터의 이국종 교수님이 있다.


이국종 교수님은 어떤 사람일까. 필자에게 인상적으로 남았던 몇 개의 장면이 있다.


장면 1: 어떤 강연회. 강연이 끝나고 이국종 교수님이 질문을 받자,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을 한다. '교수님이 힘드신게, 윗대가리들이 너무 헤쳐먹어서...아닌가요.' 동의해 주실 줄 알았으나, 이국종 교수님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학생. 자본주의라는 것은요. 모든 개인이 자신의 최대한으로 헤쳐먹으면서 균형을 유지하는거에요.' 뜻밖이지만 현실적인 대답이었다.


장면 2: 모 연구소. 연구소에서는 닥터헬기를 대신할 일인용 드론의 개발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었고, 이어서 이국종 교수님의 강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교수님께서는 아마 이 드론이 닥터헬기의 대안이라는 말에 바쁜 시간을 쪼개서 오신 것 같았다. 일인용 드론 아이디어의 핵심은 초경량화로, 조종사 없이 환자 근처로 날아가 환자를 태운 후 자동으로 병원으로 복귀하는 시스템이었다. 발표하는 연구소 직원의 표정은 들떠 있었다. 연구소의 발표가 끝나고 이어지는 교수님의 강연에서, 교수님은 앞서 발표한 일인용 드론의 현실성이 얼마나 떨어지는데에 대해 직설적으로 짚어주셨다. 지적의 핵심은 '혼자 힘으로 거동도 불편한 중증외상환자가 드론을 어떻게 혼자 타느냐'였다. 들뜬 표정으로 발표를 마쳤던 연구소 직원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점은, 교수님의 지적이 하나같이 맞는 얘기였다는 점이다.


장면 3: 책 '골든아워'에 수록된 내용. 일은 고되고 인정도 못 받는 응급외상센터 업무에 질린 이국종 교수님이 일을 그만두고 싶어 병원의 누군가를 찾아가는 장면이다. 그만둔 후의 생계가 걱정된 교수님은 '일도 고되고 인정도 못받는 것에 이젠 지쳤다. 허락해주신다면 몇개월 정도 갑상선외과와 유방외과쪽 수술에 전념하고 싶다. 그럼 병원을 그만두고도 갈 곳이 있을 것 같다.' 라고 말한다. 병원의 누군가는 대답한다. '너 그런거 하라고 우리가 데리고 있는거 아니다. 가서 하던거 해라.' 교수님은 생각한다. 그렇지. 월급을 주는 곳의 말을 들어야지. 나는 생계형 의사니까. 교수님은 말없이 업무에 복귀한다.


위 장면들을 모아보면 인간 이국종 교수님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다. 적어도 이 분은 이상만 쫓으며 '야! 돈이 중하냐? 환자의 생명이 최우선이지!' 같은, 듣기만 좋고 알맹이는 없는 드라마 대사같은 말을 떠드는 분은 아니었다 (장면 1). 하지만 알맹이 없는 말을 하는 '요령'이 없는 탓에 주변에 쓴 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그건 처음 보는 연구소 직원이래도 마찬가지다 (장면 2). 그런 그도 인간인지라, 자신의 손끝으로 억지로 환자의 생명을 이승에 붙잡아놓는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생명은 축나는 답답한 현실에서 몇 번이고 무너져내린다 (장면 3). 그리고 장면 4에, 장면 3을 스스로 책에 써넣는 이국종 교수님의 모습이 있다. 그는 스스로를 꾸미지 않는다. 위대해보이고 싶어하지도, 사명감에 불타는것처럼 보이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교수님에 따르면, 외상센터의 문제는 결국 돈의 문제와 연결된다. 사실 외상으로 인한 사망은 전체 사망의 약 10%에 이르며, 특히 40대 이하에서는 사망원인 1위이다. 상당히 높은 수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소 외상의 높은 사망률에 대해 잘 접하지 못한다. 외상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들은 주로 자신의 몸을 써서 돈을 버는 건설일용직, 오토바이배달원 등의 저소득층이다. 이들은 병원비를 지불할 여력이 없고, 이들의 병원비는 고스란히 병원의 적자로 연결된다. 더군다나 이들 저소득층들은 정책같은 것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자연스럽게 정책자원은 치료비를 부담할 수 있는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정책으로 몰린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돈에서도 정책에서도 소외되어, 적절한 대처를 받으면 살아날 수 있었음에도 길바닥에서 죽어간다. 사회의 중추를 담당해야 될 40대 이하 노동자들이 한창 일할 나이에 죽어가는 것이다.


사실 외상센터의 문제는 매우 복잡하게 꼬여 있다. 외상센터의 환자는 사고부위가 정해져있지 않은 탓에, 외상센터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인체의 전 기관에 걸쳐 매우 강도높은 훈련을 감당해내야 한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다른 과보다 고되다. 환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시로 들이닥치는 탓에, 의사는 불규칙적으로 이어지는 높은 강도의 수술을 견뎌내야 한다. 당연히 업무강도는 높고 불규직적이며, 개인의 삶의 질은 상당히 열악하다. 게다가 환자 발생시 응급치료가 적시에 이뤄지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사고 현장에는 의사 및 간호사가 동행해야 하고, 때문에 이들은 헬기 강하 훈련 등 다른 의사는 할 필요 없는 고된 훈련도 병행해야 한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이들 외상센터에 근무하는 의사나 간호사들은 고된 노동강도에 걸맞게 다른 의사들보다 좋은 대우를 받는게 맞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외상환자들은 치료비를 감당할 여력이 안 된다. 심지어 이들의 생존률에는 혈액 공급이 핵심이기 때문에, 수술중에 다른 환자들보다 갑절이 넘는 혈액을 수혈받아야 한다 (많은 경우 자신의 혈액보다 많은 양을 수혈받기도 한다). 하지만 보건부에서는 형평성의 원칙을 들어 이들이 남들보다 과한 혈액을 사용하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적정기준 이상 들어간 혈액은 병원에 비용을 청구하는 것이다. 환자에게도 정부에게도 돈나올 구석이 없는지라, 응급의료센터는 적자에 허덕이게 된다. 그러니 병원에서 응급의료센터 근무자들에게 보내는 시선이 고울리가 없다.


응급외상센터의 적자는 센터 근무자들의 실적이 된다. 낮은 실적을 이유로 근무자들의 봉급은 삭감당한다 (그 중 일부는 적자를 메꾸는 데 쓰일 것이다). 그러니 응급외상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돈도 못벌고 병원에서 인정도 받지 못한다. 그 와중에 어쩌다 사명감에 불타 지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들도 얼마 못 버티고 떠나간다. 밀려드는 환자를 외면하지 못해 그들과 함께 남은 의료인들의 처지는 처참하다. 센터의 정경원교수는 1년간 집에 4일을 갔다. 간호사들은 임신한 몸으로도 대체인력이 없어 헬기를 타고, 결국 아이를 낳지 못하고 유산하는 일이 반복된다. 어떤 간호사는 헬기를 탑승하다 손가락이 부러지기도 했다 (이 간호사는 산재처리를 받지 못하고 자비로 수술을 진행했다). 환자의 혈액검사 키트가 없는 탓에 (그것도 다 비용인지라) 수술중에 모르고 에이즈 환자의 피를 뒤집어쓰기도 한다 (다행히 모두 감염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센터는, 구멍난 시스템에 자신을 톱니바퀴삼아 끼워넣고 억지로 시스템을 굴리는 개인의 희생들을 연료 삼아 억지로 꾸역꾸역 굴러간다. 이국종 교수님은 그 한가운데에서 센터의 수장으로서 자책한다. 자신의 희생이야 자신의 선택이지만, 자신이 이 센터를 놓지 못하는 탓에 동료들이 갈려나가고 있다.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굴러가는 시스템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손님에게 내줄 녹차 티백을 아껴야 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이 일을 언제까지 내가 고집스럽게 해 나가야 하는가. 그렇게 다 포기할 결심을 했다가도 환자는 밀려오고, 눈앞의 환자의 수술에 집중하는 동안 결심은 다시 어딘가로 밀려난다.


본디 권역외상센터 사업은 이국종 교수님이 억지로 따온 것이 아니다. 이국종 교수님이 석해균 선장님을 살려내면서 갑자기 권역외상센터를 대상으로 한 정책들이 정부의 눈먼 돈과 함께 수립되기 시작했다. 이에 아주대병원을 위시한 전국의 병원들이 이 돈을 따내기 위해 권역외상센터 설립을 추진한다. 하지만 막상 센터가 수립되고 나자, 병원에서는 이 센터를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일반환자 진료에 이용하고 싶어한다. 이국종교수님은 '외상센터가 적자면 병원에서 센터를 접는다고 말하면 될 일이다'라고 말한다. 실제 교수님은 동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센터가 굴러가는 것에 큰 회의를 느껴왔고, 책에서도 센터 운영을 더 못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국가 보조비를 받기 위해 외상센터의 허울은 필요하다. 그래서 사업은 접지 않는다.


최근 인기있는 의학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를 보면, 정의로운 의사와 이를 방해하는 권력에 눈먼 의사와의 대립구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선명하게 드러나는 나쁜 상대를 두고 그와 싸우는 이런 구도는 좀 한가해보인다. 이런 드라마는 그 나쁜놈만 빠지면 마치 세상이 잘 굴러갈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든다. 중증외상환자 치료의 문제는 어떤 한 나쁜놈때문에 발생한 일이 아니다. 핵심은 결국 이들 환자가 적자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들이 적자를 일으키는 이유 중 하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환자에게 공급되는 혈액을 형평성에 맞추기 때문이다. 심평원이 혈액관리를 신경쓰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낸 보험료'를 잘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이런 구조를 볼 때마다, 악의 평범성을 얘기한 한나 아렌트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생각난다. 아이히만은 나치 독일의 명령에 따라 유대인을 매우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학살한, 매우 우수한 행정원이다. 그는 나치 정부에서 내린 명령을 너무나도 효율적으로 잘 수행한 탓에 악마가 되었다.


직관적인 생각에서, 아마도 중증외상센터를 잘 굴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지금처럼 찔끔찔끔하지 않는 대규모의 효과적인 재정 투입이다 (예를 들자면 국립 권역외상센터 수립). 그러려면 다른 예산을 줄이거나 (암환자라던지 등)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보험료 인상은 안그래도 경제가 어렵다 난리치는 유권자들에게 그야말로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헬기소리에 민원을 넣었다는 아무개 시민에게 달리는 악플에서 섬뜩함이 느껴진다. 우리는 이국종에게 욕설을 퍼부은 아주대 병원장을, 민원을 넣었다는 아무개 시민을 욕하며 우리와 그들을 타자화한다. 하지만 이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병원이 원하는 병원장의 모습이 병원의 수익 극대화에 맞춰져있는 한, 그리고 중증외상환자에게 적절한 정책과 예산이 추가로 공급되지 않는 한, 이국종 교수님의 처지는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핵심은, 국민건강보험에 직접 보험료를 납입하고 있는 우리가, 과연 아무런 희생을 치르지 않고도 중증외상센터를 굴리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일지도 모른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은 안 나지만, 소위 '시골의사'라고 불리는 박경철이 그의 책에서 '오로지 나의 존재로 인해 살아난 생명이 열명만 넘어도 성공한 의사라고 한다. 나는 다섯명이나 될지 의심스러우나 나 때문에 떠나간 생명은 한참 많다'라는 식으로 쓴 글을 본 기억이 있다. 이국종 교수님께는 모 인터뷰에서 '이번 생은 망했어요'라고 한탄하셨지만, 오로지 이국종 교수님의 존재로 인해 살아난 생명이 몇명일까. 수백 수천명은 되지 않을까. 헬기를 타고 환자의 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의사는 대한민국에 이분 아니면 이분을 거쳐간 의사뿐이다 (그 숫자라야 보잘것없으나). 이미 그는 성공한 의사다.


최근 언론 기사를 보면, 교수님 본인은 더 이상 외상센터를 이끌지 않겠다는 뜻을 공고히 하신 것 같다. 애초에 어그러진 시스템이 개인을 쥐어짜 톱니바퀴를 기름칠해가며 여지껏 굴러왔다. 이제 더 이상 그분을 위시한 개인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순 없다. 그러니 힘내시라는 말도 예의에 어긋난다고 느껴진다. 그러니, 혹시라도 이국종 교수님께서 이 글을 보시게 된다면


이국종 교수님, 그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라고 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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