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로저스의 일본에 보내는 경고 - 돈의 흐름으로 본 일본과 한반도의 미래
짐 로저스 지음, 오시연 옮김, 고사토 하쿠에이 외 감수 / 이레미디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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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바텀업 방식(자체 기업을 들여다보는 방식)과 탑다운 방식(시황, 국제정세, 국가의 경제정책, 산업군 등 거시적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나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워렌 버핏이 바텀업 방식의 투자 대가라면, 짐 로저스는 조지 소로스와 함께 탑다운 방식의 대가로 취급됩니다. 과거 짐 로저스는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운용, 10년만에 4200%의 수익률을 달성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퀀텀펀드는 1992년 영국 파운드화의 고평가를 예측하고 파운드화를 공매도해 약 2주만에 10억달러를 벌어들인 사건으로 유명합니다. 이때 파운드화의 가치는 20%정도 폭락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게 펀드가 영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경제를 뒤흔든 것이죠.

책의 주요 주제는 '일본은 저출산/고령화와 이민자 유입을 막는 폐쇄적 국민성, 거기에 정부의 잘못된 재정지출의 콤보로 망할 것' 으로 요약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또한 미래에는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이 아닌 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며, 막대한 인구와 근면한 국민을 보유한 중국, 역시 근면하며 똑똑하고 일본보다 개방적인데다가 북한과의 통일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한국이 미래에 아시아 패권을 잡을 것이라 예측했습니다. 

책 내용에서 섬뜩했던 부분은 우리나라의 발전이 통일이라는 이벤트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저출산/고령화/폐쇄적 국민성 부분은 주어에 일본 대신 우리나라를 넣어도 크게 이질감이 없이 읽힙니다. 실제 한반도 평화기류가 형성되기 전에, 로저스는 한국에 대해 '한국 경제는 역동성이 없다. 소수의 재벌이 경제를 독점하고, 젊은 층은 공무원을 최고의 직업으로 친다. 한국경제는 쇠퇴한다기보다는 정체되어 있다. 투자할 매력은 없는 나라다.'라고 극딜을 넣기도 했으니, 로저스의 평가는 당장 몇년이 아닌 굉장히 먼 미래를 내다보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통일까지는 아니어도 한반도 평화기류만으로 지금보다 훨씬 역동적이 될 거라고 전망하기는 합니다.

원래 대가의 책을 볼 때는 그 책의 결론보다는 사고방식을 엿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제 나름대로 그의 책 행간에 드러났다고 생각하는 몇몇 투자철학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바닥에서 사라: 그는 현재 아프리카에서 투자할 매력이 있는 나라 중 짐바브웨를 꼽았습니다. 짐바브웨는 현재 국가경제가 무너진 나라의 대명사로 꼽히는 만큼 뜻밖이지요. 추천의 이유는 지금 바닥이라 더 떨어질 일이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당장 짐바브웨가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는 본인도 동의했습니다. 로저스는 '어차피 짐바브웨 경제는 지금 바닥이니 투자해서 손해를 보더라도 얼마 안 될 것이지만, 만약 경제가 개선된다면 대박'이라고 평했습니다. 
짐바브웨 추천이 책에서는 간단히 언급됐지만 전 굉장히 인상깊게 봤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나름 고민해왔던 주제 중 하나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현재 굉장히 전망이 안 좋아서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지만 망하지는 않을 것 같은 기업이 있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의 선택은 '해당 기업을 예의주시하다가 회복의 조짐이 보이면 투자' 입니다. 하지만 회복의 조짐은 시장에 공개된 정보의 형태로 나타날 테고, 그 조짐과 동시에 투자대상의 가격은 올라갈 것입니다. 그래서 큰 수익을 얻기 위해서는 오히려 회복의 조짐이 전혀 없을 때 투자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는 회복의 조짐을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눈치채는 것이 관건인데, 전업투자자도 아닌 내가 그렇게 투자에 시간을 쏟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의문도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로저스라면 만약 어떤 회복의 조짐이 있다면 그 어떤 투자자보다도 빨리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일텐데도 불구하고 미리 투자해놓으려고 하는 태도가 어떤 답변이 된 것 같습니다.

2. 분산투자: 로저스가 책에서 딱히 분산투자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행간을 읽어보면 자산을 상당히 분산해놓았구나 하고 짐작이 되는 몇몇 문장들이 있습니다. 짐바브웨 추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로저스는 당장 가망이 없어보이는 투자처를 좋아합니다. 이런 투자방식은 잘 들어맞을 경우 그 보상이 매우 크지만, 보상까지 얼마의 시일이 걸릴지는 기약이 없습니다. 
책에 재밌는 대목이 하나 나옵니다. 로저스는 한국이 북한과 통일이 될 경우 항공산업이 대박이 날 것이고, 그래서 항공 1등주인 대한항공에 투자했다고 언급합니다. 어떻게 보면 통일이라는 이벤트를 전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 테마주에 투자한 것과도 비슷합니다. 그럼 로저스와 테마주 투자자들의 차이는 어디서 나올까요. 여기부터는 제 추정인데, 로저스는 틀림없이 대한항공에 자신의 자산을 비중있는 규모로 넣어놓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이미 대주주로 떴겠죠). 다만 책의 말미에 로저스는 어떤 기업에 투자하더라도 재무제표를 주석까지 꼼꼼히 보고 투자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니 대한항공에 대한 재무분석은 여느 투자자들 이상으로 되어 있을것이라 짐작됩니다. 그러니 위 짐바브웨의 예처럼 누가 봐도 경제가 바닥이거나, 혹은 재무분석을 통해 기업의 안정성을 체크 후, 누구도 어떤 특정 이벤트(짐바브웨의 경제회복이나 한국의 통일)를 예상하지 않는 상황에서 투자대상에 자본을 분산해놓는 것이 로저스의 방식 같습니다.

3. 안전마진: 분산투자처럼 로저스가 안전마진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습니다. 이도 어떤 문장을 보고 느낀 점입니다. 책에서 로저스는 '앞으론 중국의 시대가 될 것이라 딸들에게 중국어를 익히게 했다. 하지만 내 예상대로 되지 않더라도, 15억 인구가 쓰는 말을 배워서 손해볼 것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언투자의 박성진 대표님은 안전마진을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라고 했습니다. 로저스가 딸들에게 중국어를 익히게 한 것은 물론 자신의 생각대로 되면 대박(중국이 세계 1위 대국이 됨)이기 때문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불확실성으로 인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쪽박은 아니라는 점 (15억 인구가 사용) 입니다. 내 생각처럼 안됐을때의 대비책 이라는 관점에서, 이 부분에서 저는 로저스의 안전마진을 느꼈습니다.

4. 투자 대상에 대한 이해: 흔히 바텀업 투자와 탑다운 투자를 전혀 다른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로저스를 보고, 탑다운의 대가임에도 불구 철학의 많은 부분이 바텀업 중심의 가치투자와 겹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로저스는 책에서 어떤 기업에 투자할 때 재무제표를 그 누구보다도 꼼꼼히 본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결국 탑다운도 바텀업도 출발점이 다를 뿐, '투자대상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된다'라는 기본 명제는 동일하다고 느꼈습니다.

당장 한국에서 맨날 북한의 미사일 발사소식을 보는 우리의 입장에서, 통일을 전제로 한반도의 밝은 미래를 그리는 로저스의 입장이 좀 뚱딴지같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로저스는 과거 천안문 사태 때, 전세계의 자금이 중국을 떠날 때에도 '중국 경제는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고 큰 수익을 남긴 바 있습니다. 로저스의 경력을 볼때 그가 그리는 미래는 당장 다음달이나 내년이 아닌 몇년 뒤를 타겟으로 합니다. 물론 그의 예측을 맹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하지만 한반도의 평화기류에 관해서는 전 세계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보고받을 수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한반도 평화기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로저스의 의견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외국의 투자자들은 예측해야 되지만, 우리는 대응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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