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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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그리스인 조르바의 교훈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생각해보면, 우리는 대게 그 순간에 살기보다는 우리가 추구하는 무언가로 살아간다. SNS에서 유명한 맛집을 찾아갈때의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 (사진까지 찍으면 금상첨화다). 본래 맛집 방문의 목적은 그 식당을 즐기기 위해서이지만, 때때로 우리는 그 집을 즐기는 것은 뒷전으로 치우고, 어떤 의무감 해소를 위해 그 식당을 찾아간다. 숙제를 푸는 학생의 기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기분 속에서 온전히 그 집을 즐길 수 있을까? 그 기분은 기쁨이라기보다는 마치 혼나지 않기 위해 숙제를 끝마친 학생의 해소감에 가깝지 않을까? 우리는 뒤쳐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주어지는 숙제 속에서 어딘가를 가고, 먹고, 소비한다.

조르바의 가르침은 이것이다. 그냥 그 순간을 살아라.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않은 미래 속에서 살지 말아라. 불금? 왜 그런 말에 휘둘리는가? 일할땐 일을 해라. 금요일에 뭘 할지일랑 그때가 되기 전엔 생각하지 마라. 대비하든 안 하든 금요일은 금요일에 온다. 그러면 그때 하고싶은 것을 해라. 불태우고 싶으면 불태워라. 혼자 있고 싶으면 혼자 있어라. 못 끝낸 프로젝트가 아쉽다면 야근을 해도 좋다. 머리의 소리가 아닌 심장의 소리를 들어라.


내가 아닌 나에 대한 기대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날 위해 살기 위한 첫걸음은 내 내면의 소망과 주변의 기대를 가려내는 일이다. 그 첫걸음은 지금 이 순간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어딘가 숨이 막혀오는 기분이 타인의 기대를 위해 날 버려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눈치챘다면, 조르바의 가르침에 한번 귀를 기울여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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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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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왕과 귀족이 백성을 지배하던 규율사회이다. 이때는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인간사회가 갈리고 모든 인간들은 규율을 따라야 했다. 이때는 ~는 해서는 안 된다가 사회를 지배하는 테마였고,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착취했다.

현대는 ~는 해서는 안 된다 대신에 뭐든 할수 있다 가 테마이다. 하지만 뭐든 할수 있는 사람은 사실 없다. 결국 현대에서는 뭐든 할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 스스로가 스스로를 착취한다. 가해자가 피해자인 셈이다. 자기가 자기를 착취하는 것은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에 의한 착취보다 더 강한 착취가 가능하다. 결국 에너지를 다 소진하게 되면 탈진하게 되는데 이때 찾아오는 병이 우울증이다. 즉 우울증은 뭐든 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과 할 수 없는게 존재하는 실제의 내 모습 사이의 괴리감 때문에 억지로 스스로를 밀어붙이다 생기는 현대병이다. 불과 100년 전만해도 우울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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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 2017 개정신판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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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유시민의 답


국가에 대해 의미있는 질문을 했던 사상가와 그 사상들에 대해 정리해주고, 이를 바탕으로 현대 국가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분석했다.


1장: 합법적 폭력


먼저 국가의 특징을 살펴보자. 국가란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폭력을 동원할 수 있는 단체이다. 국가의 방향은 이 힘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장에서는 국가주의 국가관에 대해 설명한다. 국가의 존재목적은 내부의 혼란과 외부의 위협을 막는 것이며, 그러므로 국가의 힘은 이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에게 강제로 물리력을 사용하는 일도 허용된다. 통치권자의 힘은 시민 모두의 힘의 합보다 강하다. 나치 독일을 비롯한 독재국가, 우리나라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등이 추구했던 국가 이념이며, 실제 현재 우리나라 보수정당의 사상의 기반이다. 우리나라는 외부의 위협을 북한으로, 내부의 혼란은 이를 추종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이를 위한 법으로 국가보안법이 있다.


2장: 공공재 공급자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최대화하는데 기여해야 한다. 인간사회에서는 누구든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 뿐이다. 이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법으로 각 개인이나 집단의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한다. 예를 들어 도둑질이나 살인은 개인의 자유로운 행동으로 보장받지 못하는데, 이들은 타인의 자유 (재산권과 생명권)를 침해하기 때문이다. 법치주의는 흔히 법을 우선하는 주의로 잘못 알고 있지만, 사실 권력자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사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사상의 기반이다.


나아가서, 국가는 공공재 제공의 의무를 갖는다. 공공재란 개인의 자유에만 맡기면 만들어지지 않지만 사회에 필수적인 재화, 예를 들어 가로등, 등대, 고속도로 등이다.


3장: 계급지배의 도구


마르크스 이론의 설명. 마르크스는 국가가 지배계급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보고, 마지막에는 피지배계급인 노동자 (플로레타리아)가 단결하여 지배계급을 몰아내고 권력을 차지할 것으로 보았다. 역사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갈등의 역사인데,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이 되니 여기에서 역사는 끝난다. 하지만 이념체계일 뿐 구체적인 실천방안등이 나와있지 않아 현실감이 없다.


4장: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지배자의 덕목에 대한 논쟁. 플라톤은 민주주의때문에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잃었고, 이때문에 민주주의는 중우정치 (우매한 군중들의 정치)로 흐르게 되므로 철학적으로 완성된 철인이 국가를 지배해야된다고 보았다. 맹자는 덕을 갖춘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보았다.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는 결국 강자의 이익이라고 보았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중우정치로 흐를 확률을 늘 내포하고 있지만, 우매한 결정을 우리가 다시 뒤집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는 최대 선을 추구하는 정치체제가 아니라 최대 악을 막는 정치체제이다.


5장: 애국심은 고귀한 감정인가


애국심에 대한 3가지 관점. 피히테는 각 개인은 죽지만 민족은 영원하고, 그러므로 애국심은 필수적이며, 국가가 이를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애국신민을 길러내야한다고 보았다. 이는 독일 나치정권, 우리나라 박정희 정권 등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톨스토이는 애국심은 결국 자기 나라만을 사랑하고 다른 나라를 배척하는 감정이므로 사악하며, 인간은 모두가 형제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종교에 귀의해야 한다고 보았다. 르낭은 집단에 귀속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 감정이므로, 이를 배척하지 말고 다만 집단이 공공의 선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거칠게 요약하면, 만약 피히테와 톨스토이와 르낭이 우리나라에 태어났다면, 피히테는 한국인으로, 톨스토이는 지구인으로, 르낭은 아시아인 (혹은 어떤 사상을 추구하는 평화적 집단. 예를 들면 환경운동가) 등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6장: 혁명이냐 개량이냐


국가는 이상적일 수만은 없으므로,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고 싶어한다. 그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혁명, 하나는 점진적 개량이다.


사상가들이 이 두가지를 나누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혁명은 점진적 개량이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에서만 발생하므로 이를 칼로 자르듯 나누는 것은 온당치 않다. 또한 혁명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도 않았다. 인간은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7장: 진보정치란 무엇인가


베블런은 인간은 모두 보수적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진보라는 것은 현재 나를 지배하고 있는 생각이나 사상을 떨쳐내는 것인데, 이는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며, 이는 상당히 피로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나 보수는 최상류층과 최하층, 진보는 중산층이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최상류층은 지금 나라가 당연히 맘에 들기 때문에 보수가 된다. 반면 최하층은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가 된다. 진보라는건 뭔가 바뀐다는 건데, 바뀐 나라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산층은 살만하고, 그래서 정신적 여유도 있기 때문에 진보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진보는 매우 좁게 보면 자본주의의 극복이다. 하지만 진보라는 용어 자체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유시민은 현재 가장 진보한 국가체제로 복지국가를 든다. 국가를 4단계로 나누면, 내부의 혼란과 외부의 위협에 대항하는 안보국가, 경제적 빈곤을 해결해주는 발전국가,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국가, 예측할 수 있거나 없는 각종 위협으로부터 개인을 지켜주는 복지국가로 나눌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지금 민주국가와 복지국가의 사이에 있다고 본다.


8장: 국가의 도덕적 이상은 무엇인가


개인은 도덕적 이상을 추구할 수 있지만, 국가는 그러기 쉽지 않다. 국가가 추구해야 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확실한 정의를 내릴 수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사회와 시민의 발전을 국가가 수용하기 위해, 국가는 전체주의를 막고 각 개인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다.


9장: 정치인은 어떤 도덕법을 따라야 하는가


개인의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정치인을 빼면, 정치인은 두 가지 길을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정치인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만드는 결과에 책임을 지는 정치인이다. 이는 정치에 대한 두 가지 태도로 나뉜다.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정치는 정치로서 최대 선을 행하려고 한다. 반면 결과에 책임을 지는 정치는 최대 악을 막는 방향으로 움직이려 한다.


노태우 정부는 두 진보세력, 김대중과 김영삼이 분열하여 만들어졌다. 이는 신념에 따라 행동하여 최악의 결과를 불러온 사례이다. 직업 정치인이 아니라면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아가도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무릇 직업 정치인은 신념을 고집했을 때 불러오는 최악의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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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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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유시민의 답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3가지가 있다. 일, 놀이, 사랑 이다. 어떤 철학자가 한 말이 아니고, 실제 임상심리학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담한 사례를 모아 내려진 결론이다.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답을 내려볼 수 있다. 훌륭한 인생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일하지 않을 땐 잘 '놀고', '사랑'할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인생이다.


일, 놀이, 사랑에 유시민은 '연대'를 추가한다. 연대는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추구하는 '공공의 가치'를 이루는 집단이다. 정당일수도 있고, 환경단체일 수도 있고, 박사모일 수도 있다.


진보의 정의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이 있다. 이중 유시민은 생물학적 접근법을 가장 지지한다. 생물학적으로 진보는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타인의 복지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의 많은 부분을 내놓는 자발성'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다. 본성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사람에게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자원을 쓰게 되어 있다. 그래서 보수는 본능을 '따르고', 진보는 본능을 '거부한다'.


인간만이 이성을 바탕으로 본능을 거부한다. 이런 진보적인 시각이 본능을 거부하면서까지 생겼다는 것은 놀랍다. 왜 생성되었는지에 대한 가설이 있다. 환경은 변화한다. 그래서 본능만 따라가면 환경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 이런 환경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지능이 생겼다. 그래서 지능으로 판단하면 진보, 본능으로 판단하면 보수가 된다. 실제 미국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라서 진보성향이 된 그룹과 보수성향이 된 그룹의 지능지수(IQ)를 비교하니 진보성향이 평균 11 높게 나왔다고 한다. 


문제는 같은 사람도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가 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판단력도 점점 떨어진다. 그래서 유시민은 자기는 항상 청년층이 지지하는 집단을 지지하겠다고 한다. 설령 자기 생각에 반하더라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빼고는 논할 수 없다. 죽음을 생각하면 영생의 욕구가 따라온다. 하지만 영생은 불가능하니, 많은 이들이 이름을 남기고 싶어한다. 하지만 죽은 뒤 이름을 남기는 것은 인생의 목표로 좋지 않다. 막상 생각해보면,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이름을 남기기 위해 살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삶에 충실했고, 그런 사람들 중 운과 재능이 겹쳐진 사람이 이름을 남겼을 뿐이다. 이름을 남기기 위한 삶은 내 삶을 이름을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 삼게 된다. 하지만 삶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삶이 수단이 되어선 좋은 삶이라 할 수 없다.


요약하면, 유시민이 생각하는 좋은 삶이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여가 시간에는 잘 즐길만한 놀이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나보다 어린 세대의 생각을 지지하며, 삶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는 것


이다.


*유시민은 정치에 자기가 안 맞았다고 고백한다. 자기는 책 읽고 글 쓰는게 더 재밌고 적성에 맞는단다. 그래서 정치를 그만두고 여생을 직업 작가로 보내기로 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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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부르는 뇌 - 뇌가소성 혁명이 일구어낸 인간 승리의 기록들
노먼 도이지 지음, 김미선 옮김 / 지호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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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변한다. 이를 뇌가소성이라 부른다. 


뇌가소성이 인정받은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뇌과학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뇌의 각 부분이 특정한 영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들은 섞이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이를 뇌의 국재성 이라고 한다. 


뇌의 국재성이 상식인 상황에서, 뇌졸증 환자가 뇌에 손상을 입었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른팔을 담당하는 뇌가 기능을 잃었다? 이제 오른팔은 못쓰는거다. 그들은 왼팔로 세상에 적응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불쌍한 오른팔은 깁스나 부목으로 보조해주었다.


하지만 과학은 꼭 상식을 안 들어 쳐먹는 일련의 과학자들이 발전시키는 법이다.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혁명적인 실험이 있었다. 원숭이의 오른팔을 움직이는 신경을 차단하자 오른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른팔과 왼팔을 모두 차단하자, 이들은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양팔을 움직였다.


이 실험의 결과는 수십년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뇌의 국재성에 경도된 학자들에게 이는 잘못된 실험, 불경한 결과였다. 뇌의 가소성이란 개념도 수많은 혁명적 진실의 전철을 밟았다. 지구가 돈다는 사실도 얼마나 오랫동안 배척당했는가? 원숭이 연구의 책임자는 오랫동안 실업자였으며, 동물보호단체와 싸우느라 재산을 탕진했다. 


하지만 이젠 뇌의 가소성은 학계에서 일종의 상식이 되었다. 혁명적인 원숭이 실험을 한 학자는 이제 뇌졸증을 치료한다. 이 학자가 운영하는 단체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띄는건 장갑과 팔고정대이다. 과거의 깁스가 불쌍한 오른팔을 보조하기 위해 쓰였다면, 이번 장갑과 팔고정대는 멀쩡한 팔을 못 쓰게 하기 위해 쓰인다. 멀쩡한 왼팔을 못쓰게 하면 처음에는 환자들이 미친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놀랍게도, 오른팔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얼마간 훈련을 거친 뒤에는 오른팔을,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능숙하게 쓸 수 있게 된다.


이는 뇌의 가소성 때문이다. 뇌졸증이 오른팔을 담당하는 뇌를 죽였더라도, 살아남은 다른 뇌들은 훈련을 통해 오른팔을 움직이기 위해 재배열될 수 있다. 


뇌의 가소성은 최근 계속해서 그 한계를 넓히고 있다. 뇌졸증 환자는 훈련을 통해 마비된 영역을 다시 살린다. 뇌성마비 아이들도 훈련을 통해 IQ를 높일 수 있다. 시력을 잃은 사람은 청각 훈련을 통해 1분에 최대 300단어까지 들을 수 있다 (이들은 고전 작품을 하루에 3~4권씩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이는 시각이 살아있을 때는 상상도 못하는 속도다). 청각을 잃은 사람은 시야가 넓어져, 몸의 옆에서 귀로 접근하는 물체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뇌는 상황에 따라 적응한다. 그 한계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우리의 뇌는 썰매길이 정해지는 방향으로 발달한다. 산 정상에서 지상으로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것을 상상하자. 초행길이라면 헤매고 부딪히며 올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는 첫번째에서 익힌 길을 바탕으로 비슷하게 올 것이다. 세번째는 두번째와 더 비슷할 것이다. 계속 썰매를 타다 보면 길이 계속 학습되어, 나중에는 몇 번을 타더라도 비슷한 길로 오게 될 것이다.


뇌도 비슷하다. 처음 맞닥뜨린 상황에서는 유연하다. 하지만 계속 반복되는 상황에서는 익숙한 길만 찾게된다. 뇌는 가소적이지만, 그 가소성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익숙한 길을 두고 새로운 길을 익힐 각오가 필요하다. 이것이 나이가 들면 새로운 사고에 적응하기 힘든 이유이다.


나이가 들면 뇌세포가 죽는다. 머리도 나빠지고 적응력도 떨어진다. 하지만 수많은 사례들이, 노화는 노력하는 뇌를 피해간다는 것을 알려준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고, 세상을 만끽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치매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들의 뇌는 청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여전히 똑똑하고, 여전히 빠르며, 심지어 원숙함도 지니게 된다. 지적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우, 전성기는 40~50대라는 것이 정설이다. 뇌가 늙지 않는 것이다.


유명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 아흔한 살이 되었을 때, 한 학생이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어째서 아직도 연습을 계속하시나요?' 카잘스가 대답했다.


'아직도 발전하기 때문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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