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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들의 환대 - 제2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전석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오늘은 당신의 첫 번째 기일입니다. 무심한 세월은 덧없이 흐르고 흘러 이제 영원히 이별해야 할 차례가 왔습니다.
p.7
죽음을 연습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추진된 임종체험관이란 공간에서 벌어지는 삶과 죽음.. 아니 누군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소설 한 권을 만났는데요. 죽음만큼이나 이들의 삶은 희미한 흔적과 같아 보이네요. 반대로, 어찌 보면 죽음만큼이나 그들에게는 크나큰 흔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임종체험관에서 근무하는 이들에게 찾아온 그날의 이야기.. 여러분이라면 이런 순간에 어떤 표정을 하실까요? 도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냐고요? 지금부터 아주 살짝만 알려드릴게요.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이곳은 바로 임종체험관이라고 하네요.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어 여러 차례 보수공사가 진행되었던 다리를 건너, 가로수에 반쯤 가려진 신호등의 보행자 버튼을 누르고, 우두커니 서 있는 돌덩이로만 보이는 비석을 찾아야만 올 수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요. 한 지자체에서 자살률 감소를 통한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흉물로 방치된 빈 건물을 활용해 야심 차게 준비한 임종체험관. 하지만, 생각보다 야무지게 구성되어 있는 듯싶더라고요.
체험관 안내와 예약을 담당하는 미연, 영정 사진을 찍어주는 유영, 유서 작성을 도와주는 가령, 수의 입기와 관 체험을 진행하는 승인, 그리고 이들과 체험관을 관리하는 관장까지.. 이들이 운영하는 이곳은 의외로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특별함.. 누군가의 sns에서 시작된 입소문..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재미보다는 아픔이잖아요. 누군가에게는 자살 연습? 죽음 체험? 죽음 준비? 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추가된 체크 리스트가 바로 이것.. “수상한 체험객은 없습니까?”

… 죽으려고 했어요! 죽으려고…. 여기에 갔다 온 다음 날!
p.79
태풍이 북상하면서 거센 바람과 폭우가 쏟아지는 어느 날, 모든 예약이 취소된 그날에 갑자기 방문한 체험객 한 명. 그 누구보다 수상해 보이는 그녀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모두에게 충격적이었는데요. 누군가 자살을 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이곳을 갔다 온 다음날에 말이죠. 모두가 정신없던 지난 화요일 3회차에 방문했던 누군가가 말이죠. 그날,,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정말로 수상한 체험객이 있었던 걸까요? 그런데 우연히도 각자에게 수상한 누군가가 한 명씩 있었답니다.
자신에게 성추행을 하고는 잘못이 없다며 넘어가자고 했던 학교 선배, 시설에서 나와서 무연고로 죽은 친구의 장례식에서 만나 서로를 의지했지만 틀어진 동기, 크지 않지만 작지도 않은 돈을 빌려 가서는 갚지 않아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동생, 점점 심각해지는 치매로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는 엄마.. 이들이 화요일 3회차에 참여했거든요. 바로 이들 중에 한 명이 자살을 시도했던 수상한 체험객이었을까요? 하지만, 이들보다 이들을 마주한 체험관 직원들이 더 수상한 하루가 아니었나 싶네요. 자신의 아픔을 죽음의 공간에서 마주한 이들.. 괜찮은 걸까요?

임종체험관을 찾는 이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과연 나는 그 공간에 간다면 어떤 마음으로 서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조금은 섬뜩한 공간이겠죠? 하지만, 무언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요. 그게 무엇일지 지금은 모르겠지만요. 조금은 특별한 순간, 조금은 특별한 추억, 조금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닐까 싶은데요. 아니면,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예상치 못한 만남일 수도 있겠네요. 궁금해집니다. 여러분은 어떠실지..
솔직히 조금은 힘들게 읽은 한국 소설이었답니다. 과거와 현재, 이곳과 저곳을 오고 가면서 문장들이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었거든요. 임종체험관에서 일하는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생각의 흐름대로 오고 가고 있었기에 조금은 맥락을 따라가기 힘들기도 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단지 그들의 삶을 하나의 모양으로 바라보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던 거 같다고 말이죠. 그리고 이제는 보인다고 말이죠. 오랜만에 차분한 마음으로 읽은 한국소설이었는데요. 한번 만나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