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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람들은 죽어요. 젊어서 죽고, 늙어서 죽고, 쉰여덟에 죽죠. 다만 나는 애나가 그리워요. 그게 전부예요. 애나는 내가 세상에서 사랑한 단 한 사람이었고, 이제 나는 애나 없이 계속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해요.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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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폴 오스터를 아시나요? 뉴욕 3부작이란 소설이 가장 유명한 작가인데요. 그만의 감수성 풍부한 언어와 기발한 아이디어로 선보이는 <우연의 미학>을 담은 작품들로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라고 합니다. 아니,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가라고 해야겠네요. 작년 7월에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거든요. 그리고 그의 마지막 작품이 바로 이번에 만난 바움가트너라는 소설이랍니다.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걸까요? 죽음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더라고요. 우리 모두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지만, 과연 그가 들려주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은 어떤 모습일까요?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궁금하다는 소설이라 기대하면서 읽어보았답니다.

하루가 너무 길어 보이네요. 아니,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 보입니다. 바움가트너.. 그의 오늘이 말이죠. 2층 방에서 논문을 쓰다가 필요한 책을 찾으러 1층으로 내려가는데 아침 10시에 누이에게 전화하기로 했던 게 기억나는데요. 하지만, 부엌에서 타는 냄새가 나서 보니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알루미늄 냄비가 타고 있네요. 생각 없이 손을 뻗었다가 뜨거워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다 걸려온 전화는 전기 회사의 계량기 검침원인데 늦게 갈듯 해서 미안하다네요. 그리고 또 다른 전화는 매주 청소하러 방문하는 플로레스 부인의 딸인데요. 아버지가 전동톱을 쓰다가 손가락이 잘려 병원에 갔다네요. 그리곤 방문한 초보 검침원을 위해 함께 지하실로 내려가다 넘어지면서 발목을 다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있던 하루.. 그리고 시간이 흘렀는데요. 잘린 손가락, 다친 발목, 화상을 입은 손바닥은 사고의 흐름에 따라 환지통이라는 단어로 연결되는데요. 육체적인 가짜 아픔인 환지통, 이것은 단지 육체적 고통에만 해당될까요?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 애나를 잃은 슬픔으로 오랜 기간을 정신적 환지통에 아파하고 있다고 합니다. 번역 일을 하던 그녀의 작업실에서 들려오는 타자기 소리가 아직도 아침잠을 깨우고, 위층 어떤 방에는 그녀의 발소리가 들리는 듯하다네요. 그리고 그녀의 작업실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 그리고 수화기에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그에게 다시 살아가라고 이야기하네요. 깊은 연결을 통해 죽은 자의 존재를 이어가라고 말이죠.

죽음.. 한 번만 더 바다에서 수영을 하겠다는 그녀를 말리지 못했던 그날. 그 바다에서 죽음을 맞이한 애나를 떠나보내지 못한 비움가트너는 이제 그녀를 영원히 기억하는 방법으로 상실의 아픔을 영원한 연결로 이어가기로 합니다. 그녀가 남긴 시를 모아 책을 출간하고, 그녀의 작품을 연구하겠다는 학생을 도와주기로 하면서 말이죠. 그들의 성장과 만남, 그리고 삶에 대한 에피소드들에서 느껴지는 따스함과 소중한 추억을 고스란히 담아내기로 합니다. 그 순간들을..
어떤 분의 서평에 이런 문구가 있었는데요. “상실을 통과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라는.. 책을 읽기 전에 만났던 문구였지만, 너무 마음에 와닿고 잔잔함과 따스함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요. 역시나 그런 이야기였던 거 같네요.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바움가트너의 삶이 그동안 살아온 삶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풍부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너무나도 사랑했던 아내를 불의의 사고로 떠나보내고, 그녀에 대한 그리움에 갇혀 살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기억과 추억을 바탕으로 또 다른 하루를 만들어갈 것이기에 말이죠.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정말로 가슴 아픈 일일 겁니다. 오늘도 얼굴을 마주하며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웃음 지었던 누군가가 내일부터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상상만으로도 힘겨운 일일 테니까요. 하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상대방을 보낼 수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인사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폴 오스터, 그만이 남길 수 있었던 소설이 아니었을까 싶기에 추천해 봅니다. 당신의 삶에 필요한 이야기일 듯도 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