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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정의 상자
정소연 지음 / 래빗홀 / 2025년 2월
평점 :
출판사 지원받아 읽은 도서입니다.
독자들의 뜨거운 복간 요청으로 신간 단편들을 더해서 새롭게 출간했다는 SF 단편집, 정소연 작가의 소설집을 만났는데요.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힌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텐데, 이렇게 꾸준히 기억되고 회자되는 이야기는 도대체 어떤 이야기일까요? 가볍게 그 시대를 거치면서 잊힐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더욱더 궁금했던 단편소설 한 권. SF 소설이라고 하지만, 산뜻하고 따뜻한 소설들이라는 이야기에 하나하나 천천히 읽어보았답니다.
언제일까요? 어느 미래의 한 시점인 듯합니다. 비상점 도약으로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시대인 듯합니다. 우주 곳곳에서 발견된 비상점을 통해 다양한 공간으로 영역을 확장한 인류. 하지만, 그 기술을 독점한 카두케우스가 모든 권력과 권리를 가지고 있는 듯하네요. 우주여행은 비매품이라는 독특하면서도 비상식적인 시대라고 하니까 말이죠.첫 번째 챕터, 카두케우스 이야기는 이러한 세계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9편의 단편에 담고 있는데요. 멋진 미래, 놀라운 문명, 행복한 세계와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우주선 비행사가 최고의 꿈인 시대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이들만이 도전할 수 있다 하네요. 비행은 다른 이들과 다른 시간대를 보내게 하면서 어긋남을 만든다고 합니다. 각 구역은 정해진 역할이 있고, 그 지역은 계약된 기간 동안 본사의 지원을 받는다고 하는데요. 이 세상은 행복과는 거리가 먼 느낌이네요. 외롭고 쓸쓸하고 우울하고 슬픔이 더 많이 느껴지네요.
두 번째 챕터에 담긴 다섯 편의 단편소설도 크게 다르진 않네요. 코로나 시대와 비슷한 시절이 배경이 되는 이야기들이었는데요. 특히 표제작인 <미정의 상자>, 그리고 비슷한 소재가 등장하는 <현숙, 지은, 두부>.. 이 작품들은 너무나도 차분한 분위기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읽으면서 내내 밑바닥에 자욱하게 깔린 아픔과 슬픔이 느껴지네요. 정체불명의 반짝이는 상자 하나. 정확하진 않지만 과거로 돌아가는 능력이 있는 듯한데요.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고, 돌아가서 조금 다르게 바꿔보고, 돌아가서 피해보려고 하고.. 하지만, 결코 해피 엔딩은 없네요. 사랑하는 누군가와의 인연, 아니 운명은..
SF 소설이라고 해서 놀라운 미래 모습을 그리는 이야기들이지 않을까 싶었는데요. 이런 생각은 저만의 고정 관념이었던 듯합니다. SF 소설이라고 하면 왠지 놀라운 과학 기술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하지만, 미래 시간에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깜빡했네요. 아무리 주변이 바뀌고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우리 인간의 감정은 여전히 지금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슬픔과 기쁨, 사랑과 이별.. 그 수많은 감정 속에서 서로의 관계를 만들고 또 만들면서 말이죠. 바로 그런 이야기를 담은 단편소설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그래서.. 더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들이 아니었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