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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다시 쓰기 - 자본주의를 가로지르는 인문학 로드맵
강신주 지음 / 오월의봄 / 2024년 3월
평점 :

15년 만에 시대의 흐름에 맞춰 전면 개정판으로 출간한 인문학 베스트셀러 한 권. 제목부터 심각하네요. 상처받지 않을 권리라니 뭔가 멋져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만 하는 권리일 듯하지만, 그렇지 못하기에 필요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 듯한데요. 우리에게 삶의 자유를 빼앗고 소비의 자유만을 건네준,, 자본주의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라고 하네요. 그런데, 자본주의는 좋은 거 아니었나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행복과 자유를 보장하는 훌륭한 제도 아니었나요? 저보다 훨씬 똑똑한 저자의 생각이 틀렸을 리는 없을 테니, 제 생각이 잘못되었을 듯합니다. 하지만, 반성하기에 앞서 궁금해지네요. 오늘날 가장 번성하고 가장 확실하게 자리 잡은 사회제도가 상처를 주고 있다..!!? 뭘까요???
백화점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만 같습니다. 우리 주머니에는 돈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쇼핑을 끝내고 나온 뒤에 오는 결여감은 무엇일까요? 내가 구입한 것은 상품일까요? 아니면 그 순간의 우월감이었을까요? 그런데, 백화점에 받은 서비스는 나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돈이 주인공이었을까요?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뭔가 이상해지네요. 삶을 위해 돈을 쓰고,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하고,, 인생을 괜찮게 살고 있는 걸까 살짝 의심이 듭니다.
합리적인 의심,, 모르는 사이에 자본주의에 길들여 있고, 상처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일까요?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를 깨우쳐주기 위한 학문이 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진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에 대한 경고까지.. 인문학자 다섯 명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고 있네요. 강신주 저자의 짜임새 있는 이야기 안에서 말이죠.
짐멜의 도시 인문학에서는 인간의 지성에 대해 이야기하네요. 대도시에서의 너무 많은 자극을 처리하기 위해 머리로 반응하게 되었고, 이런 지성으로만 대하는 방식은 거리 두기로 이어지면서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다고 합니다. 서로의 삶이 거의 간섭하지 않음으로써 얻어지는 자유.. 하지만, 어찌 보면 고독이라는 단어로 말할 수도 있겠네요. 벤야민의 에로틱 마르크시즘에서는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닌 탐욕스럽고 잔인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아케이드와 백화점은 계속적으로 새로운 상품을 공급함으로써 인간의 욕망과 허영을 채우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말이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돈,, 모든 것과 교환할 수 있는 존재인 돈은 이제 새로운 신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미래를 가능성의 장으로 보게 됨으로써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받던 노인이 더 이상 존경과 공경을 받지 못하는 이유,, 소비와 생산으로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보다 소비에 더 중점을 두는 이유와 기호 가치를 바탕으로 신제품의 유혹에 대한 이야기,, 읽을수록 혼란스럽습니다. 읽을수록 빠져드네요. 읽을수록 어렵습니다. 읽을수록 알게 되네요.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까요? 이 책은 자투리 시간에 틈새 독서로 만나면 안 됩니다. 흐름을 놓치게 되면 이야기 안에서 길을 잃어버렸거든요. 앞뒤 맥락을 잘 이어가면서 읽어야만 했답니다.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를 충분히 받아들이면서 읽어야 하는 책이었거든요. 쉽게 읽는 책은 아니었는데요. 그런데, 쉽게 읽히는 책이기도 했답니다. 흐름만 타면, 맥락을 잘 따라가면 모든 것이 환하게 보였거든요. 게다가 인문학자들의 어려운 글을 쉽게 풀어놓은 저자의 놀라운 실력 덕분에 재미나기까지 했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 사회를 돌아보는 눈! 나를 알아가는 눈! 이래서 인문학 도서를 추천하나 보네요. 강신주 작가의 이야기를 추천하는가 봅니다.
결국 저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사실 인문학자들의 심오한 사유를 만나면서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그래서 결국 어떻게 하라는 걸까..? 자본주의라는 무서운 존재의 실체는 충분히 알았지만, 이미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현실은 벗어날 수가 없을 텐데 말이죠. 나 혼자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찾겠다고 삶의 형태를 바꾸는 것은 작은 몸부림일 테니까 말이죠.
책의 마지막에도 역시나 같은 이야기네요. 하지만, 구체적인 대안이나 해결책은 제안하지 못합니다. 아니, 그보다 앞서 해야 할 일이 있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겠네요. 우선 알아야 대응을 할 테니까요. 상처를 상처로 제대로 인지하는 것이 먼저일 듯하네요. 이런 정신과 의지가 모인다면 조금씩 좋은 방안들이 제시되고 실천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한순간에 바뀌지는 못하겠지만, 희망을 가져봅니다. 세상을 조금 다르게, 그리고 조금 더 깊게 보는 이들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전파하는 인문학 베스트셀러 책들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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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