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토리 대상 스릴러 소설, 한국전쟁 소녀 첩보원, 래빗

래빗
고혜원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1950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아픈 역사의 순간이 아닐까 싶은데요. 아시죠? 남과 북이 총을 겨누고 죽여야만 했던 슬픈 전쟁. 이제는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는 역사 속의 순간들일 테지만,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그날의 아픔이 가슴 한 편 어딘가에 남아있는 듯합니다.

그런 역사 속에서 기억해야만 하는 소녀들이 있다고 하네요. 우리 모두가 몰랐던 소녀들.. 죽이거나 죽어야만 하는 전쟁터에서 토끼처럼 뛰어다녀야 했던 그녀들. 그녀들은 왜 그렇게 뛰어다녀야만 했던 걸까요? 살아남기 위해? 죽은 가족들의 복수를 위해? 애국심에 불타올라서? 투철한 이념을 지키기 위해서? 글쎄요. 과연 그런 것이었을까요?
 

작전명 ‘래빗’, 군번도 없고 기록도 남지 않는 비밀 첩보원들.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바로 이 소녀들이 바로 전쟁의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첩보원들이었다고 하네요. 도대체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요? 기발하다 할 수도 있지만, 어떻게 어린 소녀들을.. 그만큼 처참한 것이 바로 전쟁인가 보네요.

폭격으로 한순간에 사랑하는 가족을 읽고 래빗이 된 소녀 홍주. 그녀를 일으켜 세운 것은 옆집 동무 윤옥이었는데요. 함께 하자던 그녀는 첫 임무에서 적군에게 사살당하고 맙니다. 이젠 누구와도 가까워지기를 거부하는 홍주는 켈로부대에서 입소 동기들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독한 년이 되는데요. 살아남았기에 간첩으로 의심받는 아이러니 상황까지 오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소녀, 유경. 그녀는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였지만, 이제는 거짓 신분으로 적군들 앞에서 연기해야만 했었는데요. 그녀를 사랑하게 된 적군의 대장에게서 빼낸 정보가 이상합니다. 다른 래빗의 정보와 살짝 다르다고 하는데요. 가장 중요한 정보가 살짝 틀리다? 이건 뭔가 수상하네요. 뭔가 의심스럽네요. 정확한 정보가 필요한 순간! 그 임무는 바로 홍주에게 내려집니다.

유경과 홍주.. 그녀들은 전쟁 전에도 만났던 인연이었다는데요. 우연이 인연이 되고, 인연은 또 다른 인연이 되어버렸던 그녀들. 첩보원들에게는 가장 위험한 관계가 되어버립니다. 동무.. 함께 살아남아 꿈을 이루자는 약속까지.. 슬픈 예감은 틀리지가 않네요.

어떤 일이든 이 한마디면 이유가 되고 핑계가 되는 시절. 전쟁이었기에 모든 것이 허용되었다고 하지만, 그런 이유로 누군가의 삶이 사라지거나 꿈이 없어지는 것은 안되지 않을까요? 내가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것이 전쟁이라고 하지만.. 과연 옳은 것일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별과 만남이 잦았던 첩보 부대의 홍주, 타지에서 철저히 혼자 살아남아야만 했던 유경, 그리고 그녀들 주변에서 함께 힘이 되어주던 동료들.. 웃음이 낯선 곳에서 웃음을 만들어주던 일화, 홍주의 복귀를 누구보다 기다리던 현호, 데리러 오겠다는 유경과의 약속을 지킨 지원까지.. 이들이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있었던 거 같아요. 꿈꾼 적이 없는 꿈을 만나기 위해..

K-스토리 공모전 대상작이라고 해서 우리의 아픈 역사 속에서 이야기를 잘 풀어놓았다고 생각했는데요.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한국전쟁 당시에 소녀 첩보원이 실제로 존재했었다고 하네요. 첩보원이었기에 아무런 기록도 연구도 자료도 남아있지 않는 그녀들.. 이렇게 작가의 상상으로 풀어놓은 소설이었지만, 아픈 역사 속에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네요. 그리고 반성하고 감사하게 되네요. 그녀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행복을 조금 더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아야겠어요.

출판사 지원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