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 하나를 고백하자면, 저는 요즘 에세이 천국에서 살고 있답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정말 많이 읽고 있거든요. 나와는 다른, 하지만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 제가 좋아하는 도서 장르 중에 하나이긴 합니다만, 에세이도 이렇게 다양한 줄은 몰랐네요. 어쩜 하나같이 다른 내용이고 다른 느낌이고 다른 감성인지..
특히 이번에 만난 에세이는 편하게 ‘사물’에 대해 쓴 이야기라고 하는데요. 영국 학교를 다니는 딸들이 중학교 영어 시간에 연습하던 ‘묘사적 글쓰기’가 재미나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그렇게 만만한 글쓰기는 절대 아닌 듯합니다. 세심한 관찰과 예민한 감각, 그리고 언어적 표현까지.. 그런데 그녀의 에세이는 단순한 묘사만으로 끝나지 않더라고요. 사물은 기억을 담고 있기에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는데요. 그래서인가요. 오랜만에 만난 너무 좋았던 책.

남편이 차고 있는 ‘저는 파킨슨병 환자입니다. 저에게 시간을 주세요’라는 팔찌에서 아픔을 마주한 이야기를.. 남편과 함께 달렸던 자전거 라이딩에서 혼자와 같이라는 인생 균형에 대한 이야기를.. 암에 걸린 친한 언니와 함께 구입했던 등산화를 신고 숲을 좋아하는 남편의 함께 걸었던 이야기를.. 팬데믹 시간에 만들었던 동네 단체 채팅방에서 이웃이라는 단어의 소중함을.. 깨끗한 먼지 냄새를 품은 마당에 널어놓은 빨래에서 돌아가신 엄마를.. 프롤로그에 적힌 그녀의 고백처럼, 사물에 대해 쓰려 했지만 사람에 대해 이야기가 하나 가득이었답니다.

저는 어떤 물건의 가치에는 분명히 그 물건에 담긴 사연도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누군가에게는 그냥 팔찌이고 자전거이며 등산화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추억과 기억과 사연이 담긴 소중한 물건일 테니까요. 저는 바로 그런 스토리가 항상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중고 물품을 구경하거나 거래를 할 때면 이것저것 물어보곤 하는데요. 어떤 사연이 담겨있고,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말이죠. 아마 저자도 비슷했던 거 같아요. 사물을 묘사하려 했지만,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고.. 그래서 더 재미나고, 더 흥미롭고, 더 공감하면서 읽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눈물도..

어떤 분은 이 글에서 위로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랬다면 그 위로는 그분의 과거 어딘가로부터 왔을 겁니다. 읽다가 자신의 어떤 기억과 만났겠지요./p.6
제가 만난 제 자신의 기억은 무엇이었을까요? 어찌 보면 그녀만의 사소한 추억 이야기일 수도 있고, 그녀의 삶이 담긴 일기장의 한 페이지들이라고 해도 되는 이야기들인데요. 저는 왜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였던 걸까요? 따스한 삶에 대한 이야기에 감동일 수도, 그녀의 생각에 공감을 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요. 그녀는 제 자신의 어떤 기억과 만났기 때문이라네요. 살짝 당황스러운 눈물이라 아직은 저도 모르겠네요. 강제 소환당한 저만의 기억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곰곰이 찾아봐야겠어요.

출판사 지원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