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이름에게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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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글자 한 글자에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선물 같은 책 한 권을 만났답니다. 3년의 공백, 침묵으로 쓴 편지들을 엮었다는 가랑비메이커의 편지글이면서 감성시 같은 책이었어요. 모두 잠들고 혼자 깨어있는 조용한 밤에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아니면 조용히 밝아오는 아침 햇살과 함께 고즈넉한 안개가 깔려있는 새벽 시간에 읽으면 좋을 듯한 책이었답니다. 오랜만에 저 멀리서 누군가가 저에게 쓴 손 편지를 만나는 느낌이었거든요. 보내는 이의 정성과 관심이 오롯이 나만을 향해 있는 따뜻한 그런 손 편지 말이에요.

 


 

난 매일 새로워지고 있는데 당신은 늘 어제에 머물러 있잖아요. 어제의 어제도, 어제의 어제의 어제도 당신은 늘 같은 것만 보았을 거예요. 나는 늘 내일의 당신을 보았는데 말이죠./p.67 시차


 

읽는 내내 한 가지 질문이 계속 입안을 맴돌았어요. 당신에게 3년의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기에 이런 이야기들을 편지 한 장 한 장에 가득 담아놓았던 건가요? 편지를 보내온 가랑비메이커에게 물어보고 싶더라고요. 어제의 나에게 머물러있는 상대방과 내일의 당신을 보고 있는 나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당신의 3년을 살짝 볼 수 있었거든요. 저도 알아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언제나 이런 차이로 인해 힘들게 하잖아요. 누군가는 다양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누군가 한 명쯤은 내 편이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아마 3년이라는 세월 동안 편지 안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것들이 바로 이런 것들이었던 거 같네요. 당신을 힘들게 했던 이야기들! 당신과 내가 서로 다른 곳에 있지만 함께 느낀 그 이야기들 말이에요.

 


 

더는 어디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아. 비로소 하얗게 센 머리에도 질문이 따라오지 않는 나이가 됐거든. 결국, 시간이 나를 자유하게 한 거야. /p.48 새치


 

하지만, 결국 시간인가요? 다행히 시간은 우리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꼬박꼬박 흘러가니까요. 어릴 적 새치를 보여주기 싫어서 긴 머리를 묶지도 못하고 모자 속에 감추고 있었다는 당신. 이제는 흰머리가 어색하지 않은 시간이 되었기에 자유하게 되었다는 당신의 이야기처럼 말이죠. 모든 이야기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인가 봅니다. 사랑도 용서도 아픔도.. 비로소 보내는 계절에 당도했다는 당신의 글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답니다.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는 당신의 글에서 조금 안심이 되었네요. 당신과 다른 곳에 있지만, 저 역시 보내는 계절에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나는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지금- 당신이 필요해요. 잘 음미해 주세요. /작가 메모


 

책을 읽기 위해 넘긴 표지 안쪽에서 작가의 손글씨 한 줄을 먼저 만났답니다. "당신이 필요하다"라는 메모 하나, 그리고 "잘 음미해달라"라는 또 다른 문장 하나. 만난 것은 분명 짧은 글이었지만, 뭔가 모를 막중한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천천히 문장 하나하나를 머리로 분석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면서 읽었답니다. '무심'이 아닌 '진심'으로요. 마지막에 조용히 속삭이 듯이 앞으로도 종종 편지가 늦을 예정이라고 고백 아닌 고백을 했지만, 저는 늦어질 다음 편지가 기다려집니다. 곧 새로운 계절은 시작되겠지만, 보내는 계절이 다시 돌아올 거라는 것을 아니까요. 아니 믿으니까요.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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