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헌책 - 느리고 낡고 평범하지만, 세상 가장 아름다운 추적사
이병진 지음 / 영진미디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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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을 보면 생각나는 건 ‘느린 말투’다. 언제나 느리고, 거북이 같다고 할까? 생긴 것도 동글동글하니 참 나이에 비해 귀여운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뭔가 알 수 없는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진을 찍는 사람이었는지 이번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사진이란 참 신기한 물건이다. 내가 의도하건 안 하건 사람들의 해석과 추측을 불러올 수 있는 논란의 물건. 사람들은 그 물건을 사진기라 부른다. 이 책은 사진기로 아날로그를 담아내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진 장르 한 가지는 아날로그라 생각한다.

책의 이름처럼 책 안의 내용도 헌 것들이 많다. 추억과 관련한 물건, 공간의 사진이 많이 실려 있다. 놀이터, 시장, 세운상가(사실 이 책을 보기 전까지 이런 상가가 있는지 몰랐다) 그리고 빨간 우체통. 소위 초딩들도 손 글씨보다 타자 속도가 더 빠르고, 유행에 민감한 시대. 하지만 한 번쯤은 아날로그적 수고를 감내할 줄 알아야 현대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에서 줄타기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언젠가 티비에서 유명 인사들의 해외여행을 간 모습이 나온 게 있었다. 그 때 이효재라는 아주머니가 영국 런던 여행을 갔었다. 거기서 밤에 유람선을 탔는데 탬즈 강을 두고 옛날 건물과 모던의 건물이 마주하고 있었다. 관람차인 런던 아이가 느릿느릿 돌고 있었고 휘향찬란한 세상과 가로등 하나 제대로 있을까 말까한 중세의 건물의 어울릴 듯 안 어울리는 조화. 아슬아슬한 줄타기 중이었다. 세상은 진짜로 저렇게 변하고 있는 걸까?

나는 아직 손으로 다이어리를 작성한다. 그리고 글자를 쓰면서 아날로그적 공부도 한다. 이렇게 되고 보니 세상에 아날로그가 얼마나 남아있을까? 디지털이라는 게 정말로 좋은 건지, 바쁜 게 좋은 건지 하는 의구심에 빠져들게 된다.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더욱 왜곡되었고 클릭 한 번에 아프리카에 있는 내용까지 알게 된다. 참, 무서운 세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서는, 나 자신에 대하여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한 번쯤 잊어 먹었던, 그저 관심 없던 아날로그 세상을 다시 한 번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었다. 나이가 더 먹어서도 읽으면 재미있을 책이라 생각한다. 특히 빨간 우체통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켜주길 바란다. 아무리 세상이 메일에 익숙하다 할지라도. 상징의 의미만으로도 빨간 우체통은 냉각된 사람의 심장을 오롯이 데워주는 난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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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무의 일기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이재형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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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많은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무는 자신의 나이테에 인간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해두었다. 모든 것이 불완전한 시절에도 나무는 완전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사람들의 칭송, 사람들의 비난도 모두 들었다. 나무에게 참 몹쓸 짓이라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면 내가 나무가 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 굵은 몸 안 나이테를 새겨가며 버텨온 지난 세월에 대한 회의도 느낄 수 있었다. 나무가 지나온 시간의 기록 나이테, 인간이 지나온 시간의 기록 역사. 이 둘이 맞물려 빚어내는 게 아닌 나무의 편에서 지켜볼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작가는 프랑스 문학답게 글자의 아름다운 맛을 살려내려 애썼다. 자칫하면 동화로 치부될 수 있었던 소재에 서정성을 불어넣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덤덤하지만 서정적인 마음을 풀어놓는 것이 쏙 마음에 찬다. 또 내용이 그리 어렵지 않아 초등학교나 중학교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좋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를 배려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동안 인간이 나무를 바라보며 써 놓은 글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나무의 생각에 대해 적은 책은 한 권도 찾지 못하였다. 생각의 전환과 같은 이 책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나무는 그 누구의 탓을 하더라도 ‘그러지 않았더라면’의 한탄하는 말투가 느껴진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없이 세월의 무게를 덤덤히 짊어져 간다. 아마 옆의 나무들이 쓰러져 퇴비로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음이리라. 자신의 몸통 안이 썩어 넘어졌음에도 자신보다 오히려 남자를 걱정하는 나무. 우리는 과연 그렇게 지낼 수 있을까?

예전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이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부나 또 자신을 베어갈 때에도 한 번 싫은 소리 안하던 나무. 이 나무도 그 나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한 사람에게 얼마나 위안을 주고 슬픔을 덜어내는 친구 같은 존재. 다른 이들이 잘라내라 했을 때 나를 지켜준 인간에 대한 고마움. 아마 나무는 그래서 인간, 그를 기억해주고 그를 위로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삭막한 Give&Take가 아닌 따뜻한 Give&Take. 언제쯤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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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경영의 원칙 서울대학교 관악초청강연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안철수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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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참 직업을 여러 번 바꾸었다. 카멜레온보다 더 많은 색을 가지게 되었다. 의대에 가서 사람의 바이러스 잡는 시간보다 컴퓨터 바이러스 잡느라 바빴고, 의과대 학과장도 했단다. 대단한 사람. 백신을 개발해 밴처 사업을 진행하고 벌였다. 그러다가 벤처 사업에서 손을 놓고 덜렁 유학길에 오른다. 직원들은 좀 황당했을 것이다. 그렇게 경영학을 마치고 카이스트에서 교수로 활동하다 서울대로 오게 된다. 우와, 참 카멜레온 같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징한 사람이다.

어쩌면 난 안주하지 않고 여러 가지에 도전하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감명을 받은 것이 아닐까. 정치는 정치판에 안주해서 노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도 그렇고, 나또한 그렇게 생활해 왔다. 나도 인간이니까. 행동하는 사람이 하나 없는 이 나라에서 그는 한 줄기 구원의 빛으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책자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태풍의 눈, 안 철수. 그가 움직일 때마다 대한민국은 들썩댄다. 이러한 그의 힘을 반증하듯 그가 어느 날 강연한 내용이 책으로 발간되었다. 책은 잔잔하다. 고요한 듯 핵심을 콕 찌르는 특유의 말투로 책은 이어져 간다. 또한 모든 문장은 이야기체로 기록되어 있다. 내가 그 강연장에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를 앞에서 듣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중략이라는 단어도 없이 그의 강연에 대한 이야기를 실어준 책이 고맙다.

나는 안 철수 원장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알고 있는 거라곤 안철수 연구소 백신 만든 사람뿐이다. 그의 신념, 그가 낸 칼럼, 그의 책 등을 한 번 접하지 않은 사람이다. 티비에 나오니 ‘아, 저런 사람도 있구나.’하고 말았다. 안 철수의 열품도 그저 언론 플레이, 정치 비판에 대한 충족제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박 경철과 안 철수의 강의 투어가 티비에 나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덤으로 김 제동까지. 그들은 어째서 그런 강의를 하며, 힘들게 여정을 하는 것일까? 20대에게 그리 할 말이 너무나 많았던 것일까? 공부로는 어디에 안 빠지는 그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잔소리일까, 아니면 진심의 이야기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프로그램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20대에게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한다. 먼저 간 선배로써, 어른으로써 20대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들. 그들을 미워할 사람 누가 있을까?

방송과 이 책을 통해 그에 대하여 언론 플레이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는 일관된 주장과, 일관된 내면을 여실히 드러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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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364일 블랙 로맨스 클럽
제시카 워먼 지음, 신혜연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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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다른 사람의 손에 살해당하며 이유를 알고 죽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신이 무엇 때문에 죽는지도 모른 채 다른 이의 의해 사살되면서 망자는 얼마나 분할까. 그래서 경찰이 그 범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애쓰는 것임을 알까. 이제 곧 설날이 다가온다. 한국은 떡국을 먹으면 한 살을 더 먹지 않는가. 하지만 여기 평생 열일곱 소녀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을 파헤쳐 간다는 것이 이 책의 기본 골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로 살을 붙여놓은 책이다. 이 책은 여느 책처럼 귀신이 나온다고 해서 징그러운 모습을 갖추진 않았다. 아마 상상하기 나름이겠지만. 그녀가 알고 싶은 건 딱 하나 자신이 죽은 이유이다.

나라도 남의 손에 살해당하였다면 죽어서도 이유가 알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듣고 어이없다면 아마 쫓아다니면서, 집요하게 괴롭혀 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면 나는 조용히 사라지는 게 맞는 거라 생각한다. 그 사람이 그렇게 느꼈다고 나타나 이야기하다가 그 사람이 심장마비로 죽을까봐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건데 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자”는 건 아닐까? 귀신이라는 존재라면 사람들은 무서워서 피한다. 이야기는 들어볼 생각도 하지 못하며 개 거품을 물어버린다. 귀신도 사람이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하늘로 올라갈 수 있게 돕는다면 좋을 것 같다 생각해 본다. 그런데 나도 과연 제정신에 들어줄 수 있을까?

귀신 이야기나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것이 뭐 추리소설처럼 귀신이 나올 듯 음침한 글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밝게 귀신의 여정을 다룬 책으로 공포이야기의 각도를 틀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신선한 맛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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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데이
김병인 지음 / 열림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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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과연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말이다. 사람은 어느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낸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 눈에는 한량 같고 한심하게 살아왔을지라도 자신이 느끼는 삶에서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예의는 어느 누구나 갖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전쟁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이루어지고 있고 아마 예전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도 인간의 치열함을 담아내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잊고 싶은 기억의 일제강점기. 그 때를 살아가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실린 책이 나왔다. 잔혹했던 시기, 잔혹한 생각이 뒤 덮혀 있던 그 때에 한 조선인의 사진이 독일에서 발견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대식. 암울한 시대를 전쟁의 암울함과 함께 짊어지고 나가던 조선의 사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시대에 안 태어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조선으로 돌아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마음이 쓰리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만큼 암울한 전쟁터에서 그는 살아 돌아가기 위한 잡초 같은 신념으로 버텨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초능력이 있는가?’라는 생각을 새삼 해보았다.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기 위한 처절한 사투, 그 사투의 끝은 축복일까? 아니면 지옥일까? 자신만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걸 대식은 알 것이다. 서로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일제에 의한, 일제를 위한 전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는지 일본은 자각해야 하지 않을까? 모른다며, 내용을 빼버리고 한다고 해서 있던 게 없어지는 건 아니니 말이다. 지금에 와서 일본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도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시대를 역행하는 일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쿨하게 인정하고 국가의 죗값을 치르는 게 마땅한 도리라 생각한다.

이 책이 실제의 이야기인지 알 수는 없다. 단지 한 장의 사진으로 이 책이 쓰여 졌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 웨이’라는 영화가 개봉을 하면서 주목을 받는 ‘디데이.’ 책의 영화화가 추세라는 요즘 시대에 얼마나 이 책을 잘 표현해낼 수 있을지 의아하긴 하다. 책을 통해 상상했던 만큼이 되지 않는다면 비싼 영화 값 9.000원을 받아낼 수 없으리라. 과연 이값을 해내는가, 이것을 판단하는 건 스크린을 통해 영화를 본 관객과 이 책을 읽은 독자의 판단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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