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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 ㅣ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글을 쓰는 일이라는 건 참 힘든 거라 생각한다. 감정의 노동과 뇌의 노동이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분량이라는 것도 한 가지 작용이 될 것이다. 하얗게 타버리는 작가들과 달리 독자는 즐거운 책을 만나면 좋다, 잘근잘근 씹을 수도 있고 쪽쪽 빨아먹으며 희노애락을 함께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편을 쓰는 건 꽤나 어렵고 끈기가 따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편을 쓰는 일도 만만치 않고 더욱이 녹록치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장편은 돌아서 다시 올 수 있다. 하지만 단편은 돌아가버리면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기 쉽지 않다. 어딘가 엉성해져 이해를 못하게 되면 서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싸우게 된다. 그리고 단편이라는 두 글자에 추가된 게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담백하게 써야 하는 의무감 아닌 의무감. 그것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도 추리소설, 단편의 묶음이기에 담백한 맛이 좋았다. 추리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군더더기를 많이 제거하려는 노력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빠른 상상도 가능하고 이해도 빨랐다. 일본의 책의 공통점이랄까? 어딘가 심심한 듯 하지만 정곡을 콕콕 찌르는 작가의 펜놀림에 독자는 ‘오오!’소리 밖에 나오질 않게 만드는 것, 그리고 무언가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주는 것 말이다. 그래서 일본 문학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독자이다. 그래서 작가의 고충을 이해도, 상상도 힘들다. 게다가 담백한 글의 고충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나서 생각한다. 이 책 정말 담백하다고, 작가가 고생많이 했다고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거지만 추리소설이 담백하긴 힘들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추리소설이 살이 붙기 딱 좋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추리소설은 담백하다. 담백한 맛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게 이 작가의 마력이라 해야 하나? 아님 필력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일본인이 쓰는 글의 문체가 대부분 이런 거 보면 그들 특유의 문학성인가? 어쨌든 사람을 참으로 쑥쑥 잘도 끌어당긴다. 사람은 죽어서 저승으로 가버려 현 시대에는 없다. 하지만 글은 남아있다. 저승에서 자기가 쓴 글이 이렇게 다시 빛을 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저승에서 ‘저게 뭐야?!’라고 욕할까? 아니, 상상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의 성격 자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상상은, 예상은 현실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리라.
사람에 대한 폭로가 대세인 이 시대에 사는 나로서는 그의 성격을 폭로하고 싶어도 실제로 만나봤어야 폭로할 게 아니겠는가. 그 사람을 폭로해 봤자 진짜 나에게 득이 되는 것도 없으니 그냥 패스하자.
담백한 추리소설 작가, 그가 오래 살아 글을 쓰고 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것보다 더 많은 단편과 세상을 더 반영한 글을 내놓지 않았을까? 그러면 나는 그의 글을, 그의 반응을 보며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오래도록 누릴 수 있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