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겨웁게 계속 흘러간다. 계속 되던 나의 삶에 어느 날 모든 것이 이상해졌다.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모든 것이 같으나 조금씩 다른 것에 주인공은 오싹해진다. 주인공인 그를 의심이라는 시험에 들게 하는 것들뿐이다. 모든 것이 뒤틀린 것이다. 나는 이것을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며 받은 느낌은 영화 ‘트루먼 쇼’였다. 모든 것이 같고, 모든 것이 세트로 이루어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모든 것에 어느 날 의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그것을 파헤쳐 진짜 세계로 돌아가려는 발버둥. 주인공 또한 크게 다른 느낌을 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단어는 아마 ‘도플 갱어’일 것이다. 인간을 붕어빵 기계에 넣고 신이 찍어낸 자신의 복제품, 그것을 보는 순간 서로 죽고 만다는 그것은 굳이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은 것이다. 그들의 사이를 정의해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어이다.

책을 처음 펼치면 Power On이 나오고 끝에는 Power off가 나온다. 이는 주인공이 지진이 일어나는 토요일에서 월요일까지 3일 동안의 삶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이다. 끝에서 주인공은 지진으로 죽음을 맞이하였을 것이다. 자신의 도플 갱어와 함께. 불나방 같은 삶을 살아간 그들에게 조의를 표한다. 아마 이 책의 압권은 고속터미널역의 9호선을 타러 가는 길의 길고 긴 에스컬레이터였을 것이다. 로봇 만화에서 보여 지는 비밀 기지로 들어가는 길 같은 그곳. 악취가 났던 여자도, 눈물을 흘리던 돼지 같은 장모도, 누나도, 처제도, 냉동인간의 차가움을 풍기던 자신의 부인도, 딸도, 그리고 P교수도 모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음을 그 때서야 알아차린 주인공.

그 마음은 어떠했을지 나는 알 수 없다. 나는 주인공의 느낌에 공감할 수는 있으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더 깊이 이해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나는 이 책에게 ‘이 책을 읽고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라는 상투적인 질문은 책에게 던지지 않기로 하였다. 내가 이해하면 이해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면 못한 대로 지켜볼 요량이다. 책을 읽는 게 서류를 읽는 일이 아니지 않는가? 내가 이 책을 읽고 생산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회사원이 아니지 않는가. 분석하고 배경을 알아내는 건 교과서로 만족하려는 의도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낯익으나 낯설게 느껴진다면, 도플갱어를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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