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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평점 :
우리 일상을 적셔 줄 단비 같은 이야기들, [인생 우화]
‘우화’라는 단어를 들을 때면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접했던 우화인 ‘이솝 우화’를 떠올리게 된다. 조금 더 큰 후에야 그것들이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임을 알았지만, 한창 몰입해 읽던 시절에는 정말이지 동물 친구들의 이야기를 훔쳐 보는듯한 기분으로 읽었던 것을 기억한다. 인간 세상처럼 엄연히 선과 악, 웃음과 슬픔이 존재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그렇기에 재미있었고 조금 묵직한 무게의 ‘교훈’이라는 것을 어린 내게 쥐어주기까지 했다.
어른이 된 지금 다시 한 번 투박하지만 따스한 우화의 감성에 젖어보고 싶을 독자들을 위한 책이 나왔다. 시인이자 번역가인 저자 류시화가 폴란드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들을 모으고, 또 그 이야기를 읽고 영감을 받아 새로 쓴 이야기들을 모아 이 책, [인생 우화]를 탄생시켰다.
352페이지라는 다소 도톰한 분량의 책은 크게 44개의 우화와 함께 ‘헤움 식으로 세상 살아가는 법’을 소개하는 특별한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록은 기발하고 또 유용하다. 개인적인 감상은, ‘이 책의 가장 재기발랄한 문장들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 이야기 하나하나 모두 잔잔한 미소를 띠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부담 없는 깊이로 쓰였지만, 우리를 거쳐 간 모든 우화들이 그랬듯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자신과 내가 사는 이 세상을 조금씩 투영해보는 것은 우화를 읽는 우리 독자의 의무이자 특권으로 해두자.
특히 <완벽한 결혼식에 빠진 것>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아마 많은 독자들이 현대의, 우리 주변의 모습을 떠올릴 것 같다. 이 에피소드에서 등장인물들이 ‘완벽한 결혼식’을 향해 부리는 허영과 씁쓸한 여정을 우화의 문체를 따라 별 생각 없이 쫓아가다가 맞이하게 되는 반전이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비로소 저자가 단언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화는 픽션이 아니라 진실이다”. 그렇다. 우화는 말 그대로 ‘우리 삶에 일어났었고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 일어날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다른 형태의 진실일 뿐이다. 또 저자는 “우화들을 읽게 될 독자들은 저마다의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라고도 말했던가. 아, 나는 여기서 작은 반기를 들어보련다. “아니다. 굳이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좋겠다. 그것이 어쩌면 우화의 매력이기도 할 테니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