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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의 전설 - 인간과 사자의 공존을 꿈꾸는 사람들
브렌트 스타펠캄프 지음, 남종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8년 7월
평점 :
한 사자의 죽음으로 세상에 드러난 아프리카의 비극, [세실의 전설]
어린 시절 시튼 동물기와 같은 책을 몇 번이고 읽으며 곰과 늑대의 인간적인(?) 이야기에 열광했던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 본 동물들은 당연하게도 우리의 친구였고 사실이 그랬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훌쩍 어른이 된 지금, 안타깝게도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동물들은 마치 우리 인간보다 하등 동물로 취급함이 당연하다는 듯한 세상의 논리에 익숙해졌다.
2015년 7월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사자 세실이 미국인 의사에 의해 무참히 사냥당한 사실이 밝혀지며 전 세계가 공분했다. ‘트로피 헌팅’이라는, 당시 다소 생소했던 개념도 그 당시 앞 다투어 세실의 비극을 보도하던 매체들로 인해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다. ‘트로피 헌팅’은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오직 인간의 오락을 위해 사자나 코끼리 등과 같은 대형동물을 일정한 금액을 내고 합법적으로 사냥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렇게 짐바브웨를 호령하던 맹수는 인간의 오락으로 허무하게 스러졌다. 그리고 용맹했던 세실의 머리는 포획자의 트로피를 만들기 위해 참수 되었다. 159페이지의 작고 얇은 책은 야생 보전 연구팀의 사자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원이자 사진가인 브렌트 스타펠캄프가 사자 세실의 생애를 추적한 과정을 담고 있다. 글에서 저자는 결코 격동된 어조를 쓰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아프리카의 대자연 속 사자의 무리를 관찰하고, 느낀 점을 서술할 뿐이다. 추천사에 실린 것처럼 자신이 사자에 ‘중독된 것’같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사자에 애정을 가진 저자는 아마 일부러라도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지 않았을까.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마침내 그들만의 온전한 결론에 다다를 수 있도록 말이다. 책을 통해 사자의 생애와 생태를 속속들이 살펴보는 귀한 시간을 보내며 그런 생각도 든다. 구식민지 국가가 가지는 어쩔 수 없는 경제적인 빈곤과, 원주민들이 자연에 갖는 경외심이라는 상반되는 두 개념의 위태로운 공존이, 어쩌면 사람으로 치면 유명인사인 세실의 죽음으로 인해 비로소 세간에 강렬하게 알려지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다시 글 첫머리로 돌아가 몇 자 언급하자면, 문명이 발달했다고 해서 그 문명의 소유자인 인간이 동물 위에 자리한다고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적어도 그들은, 동물들은 우리와 함께 이 지구에서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동료임이 틀림없다. 잊기 쉬우나 잊어서는 안 되는 진실이다.
모든 생명의 삶이 전설이 아닐 수 없겠지만, 세실의 생애는 이 책 제목처럼 그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전설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세실의 비극적인 죽음이 세상에 일으킨 소중한 파장은 그 전설을 오래도록 우리의 기억에 남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