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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정원 - NT Novel
가노 아라타 지음, 유경주 옮김, 신카이 마코토 원작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도쿄의 여름, 비 그리고 너와 나, [언어의 정원]
고등학교 1학년생 타카오는 두 달 전, 고등학교를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비 오는 날을 그리 싫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독 비구름이 잦은 6월의 도쿄를 맞이할 즈음부터 소년은 그런 생각을 바꾸었다. 그리고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침, 공원에서 소년은 한 여자와 조우한다. 이윽고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는 그녀를 기억하게 되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왠지 모르게 방해하는 듯한 여자가 처음엔 썩 달갑지 않았던 타카오였지만, 그런 그의 눈앞에서 내리던 비는 혹시 알았을까. 여자가 타카오의 마음에 비처럼 스며들고 있었다는 것을.
여자가 읊은 단가를, 정확히는 책에 한국어로 번역된 단가를 조용히 읊조려 본다. 여름 동안 비는 하늘에서 수직 낙하하고 둘의 시간은 수평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사람은 혼자서 나아갈 수 없다는 말도 들었고 어쨌든 인생은 혼자라는, 정반대의 말도 들었다. 어느 쪽도 공감한다. 하지만 하나의 인연이 만드는 교차점은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닌 듯한 삶의 발걸음에 작은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둘의 감정이 사랑과 우정 또는 그사이, 혹은 그 이상 어딘가 일지는 읽는 사람마다 정의의 폭이 다를 것이다. 미래를 고민하는 사춘기 소년으로, 또 그리 화목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외딴 섬 같은 가족 구성원으로 습기 찬 열여섯의 여름비가 마냥 답답했을 소년은 우연한 빗소리와 함께 여자를 만났고 그 만남은 결국 소년에게도, 여자에게도 예기치 않은 아주 특별한 시간들을 선사한다.
나는 이 책을 처음 끝까지 읽은 뒤, 몇 분간 여운에 젖은 다음 곧바로 다시 첫 페이지를 펼쳐 들었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그렇듯, 이 이야기도 끝의 끝에 가서야 독자들에게 내보이는 비밀이 있다. 나는 그 비밀을 받아들고 다시 한번 주인공들의 시간을 반추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비가 오는 날은 집 주변 공원에 앉아 마치 그들이 된 것인 양 하염없이 앉아있어 보고도 싶다. 그들의 정원을 가득 채운 언어처럼, 비처럼, 여름은 아니지만 나의 겨울도 그렇게 답답함을 좀 덜어내고 싶은 바람에서다.
동명 애니메이션은 2013년 개봉되어 감독의 전작들처럼 어김없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무수한 호평에는 감독 특유의 장기인 아름다운 배경 연출과 OST가 한몫했으리라. 하지만 책은 애니메이션이 채 담지 못한 작품의 또 다른 시간들을 그린다. 주름 같은 감수성에 촉촉하게 젖어들 비 냄새도, 달고 푸른 냄새도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