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에 대하여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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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를 쥐고 호화판의 삶을 살았던 여자 사업가 도미노코지 기미코가 본인의 빌딩에서 추락사하였다. 그녀의 죽음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그녀의 죽음이 타살이라 말하는 자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그녀는 악녀라고. 누군가는 그녀가 숨겨둔 자식이 있다고 하며, 남편은 여럿에 자신이 양어머니 아래서 자랐다고는 하지만 양어머니는 자세한 증거를 내밀며 친어머니라 이야기한다. 그녀의 죽음을 자살이라 말하는 자들은 그녀는 우아한 귀족이었으며 나긋한 성격에 심약한 사람이었다고, 고용주로서 애인으로서 친구로서 최고의 여성이었고 다음날도 약속을 잡았던 그녀가 자살을 했을 리 없다고 말한다.


자기애성 인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자기애성 인격장애 환자는 무한한 성공욕으로 가득 차 있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관심을 끌려고 애쓴다. 지위나 성공을 위하여 대인관계에서의 착취, 공감 결여, 사기성 같은 행동 양식을 보인다. 특히 형제 없이 자란 사람에게 많이 생기며, 연극 등 예술분야, 운동, 학문연구를 하는 전문인들에게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 천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평생 유병률은 1% 정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기애성 인격장애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가끔, 나는 내가 인격에 문제가 있지 않은지 고민하곤 한다. 때로는 내 모서리를 넘어 넘치는 허영심 때문에, 혹은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억지로 누군가에게 끼워 맞추는 모습에서, 더러는 절대 굽히려 들지 않는 모습에서. 그리고 아주 가끔은 내가 소스라칠 정도로 눈 하나 움직이지 않고 거짓말을 해내는 능력? 앞에서 내가 무서워질 때가 있다.

나는 사소한 거짓말을 했을 때 들킨 적이 없다. 살면서 거짓말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어서일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나는 나까지도 속이는 거짓말을 하곤 한다. 갑자기 인격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왠지 모르게 이번 책을 읽으면서 미묘한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이 극단적이라 이런 사족을 붙였다가는 이상한 사람이 돼 버릴지도 모르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한 가지 사실을 책 속에서 확인했다. 결국 모든 타자는 나의 한 쪽 모서리 만을 볼 뿐이며 눈곱만큼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녀에 대해 증언하는 증언자들은 모두 다른 소리를 하고, 모두 다른 평을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인간은 섬이며,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다. 다만 바라보고 아, 저런 면이 있구나 할 뿐.


"사모님이라면 이해해주실 것 같았어요. 배 속의 아이가 꿈틀거릴 때, 저는 정말 기뻤답니다. 한 생명이 깃들었다는 실감이 있었어요. 사모님도 똑같은 경험을 하셨잖아요? 자식을 둔 부모라면 당연하겠지요. 함께 기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P.116>


기미코는 완전히 백장미의 요정이었으니까요. 아들이 둘이나 된다는 게 거짓말 같았어요. 누가 보더라도 처녀 신부였지요. 허리는 잘록하고 눈매가 꿈꾸는 것처럼 순진했습니다. <P.147>

자신이 남편의 아이를 가졌다는 소름 끼치는 이야기를 외도하는 여자의 입에서 전해 들은 여자에게 분명 그 여자는 악녀였을 것이다.

본인의 부티크에서 본인의 가치를 알아봐 준 여성이 완벽하게 자신의 창작욕구까지 채워줄 수 있다면. 그 뒤로 본인의 앞길을 열어줬다면. 그 여성은 분명 삶의 구원자였을 것이다.

일본 소설은 즐기지 않지만 이런 인간의 이면들을 다뤄내는 솜씨는 참으로 놀랍다. 한 여성이 이토록이나 많은 면면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꽤나 오랜 시간 동안이나 치밀하게 끌고 올 수 있었다는 것에 놀랍다. 그리고 가장 소름 끼치는 것은 이렇게나 치밀한 플롯과 세련된 구조의 책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점이다. 최근 출간되는 서적들의 시초인 걸까.


"하야카와 씨, 숫자라는 건 정말 아름다워요. 별을 닮은 것 같지 않나요? 복식 부기로는 어떤 것이든 할 수 있어요. 부기 공부가 이렇게 재밌는 줄은 몰랐어요. 저기 좀 보세요, 저 별이 1이고, 저쪽은 3, 5, 7, 8. 숫자가 점점이 박혀 보석처럼 빛나는 것 같아요."<P.17>


도미노코지 기미코가 사망한 뒤로 이런저런 기사가 나왔잖아. 실제로는 1936년생 이었다, 덴헨초후 저택은 이중 삼중 담보로 잡혀 있었다, 그래서 대출해준 은행들이 서둘러 그 빌딩을 차압하려고 나섰다...... 나도 그런 기사 다 봤어. 근데 그렇다고 악녀랄 것 까지는 없잖아. 그게 왜 악녀야? 나이를 속이는 것쯤이야 우리 업계에서는 상식이야 <P.314>


"요시히코와 요시테루, 왜 두 아이 모두 요시義가 들어가게 지었지?"

그때 그녀가 당당히 가슴을 내밀며 했던 대답은 정말 잊을 수가 없어요.

"나는 '의'라는 단어도 좋고 그 한자도 정말 좋아."

그녀에게 나는 평생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어요. <P.429>


이런 장르의 책들이 그렇듯 이 책 역시 그녀가 자살했는지 타살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책의 주제가 거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읽었고, 순식간에 그녀의 삶이 소름 끼쳤고, 외로웠으며. 아마 리뷰를 적는 이 순간에도 잊히고 있는 중일 것이다.

역시나 이런 장르의 소설은 소모성이 짙다.

소설에서는 그녀가 죽었기 때문에 화자로 나타날 수 없었지만, 그녀를 증언하는 증언자들 사이에서 그녀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으면 조금은 갈증이 해결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렇게 증언 속에서 그녀를 구성해 나가는 것도 즐거운 독서였지만 이렇게나 다양한 모습을 가진 여성이었다면, 그녀가 한 번쯤은 변론을 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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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홍신 세계문학 9
앙드레 말로 지음, 박종학 옮김 / 홍신문화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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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 나 자신에 대해서, 목구멍에 대해서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일종의 절대적인 긍정이다. 미치광이의 긍정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훨씬 강력한 힘이다. 하지만 남들에게는 나라는 존재는 결국 내가 한 일 만이 전부인 것이다.<P.68>

오랜만에 너무 머리 아픈 책을 읽어서 그런가. 올해 시작하고 읽은 책들은 어쩐지 포기하지 않고 완독한다 했는데, 이번 책은 조금 애를 많이 먹었다. 한 달여를 들고 있었으면서도 사실 아직도 내가 읽은 이 감정이 맞는지 의심이 되는 책. 누군가 그랬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기쁜 이유는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슬픈 이유는 오만가지라고. 이 책은 딱 그런 책이다. 제목에 혹해서 들었다가, 한참을 고생할 수 있다.

책은 중국의 1920-30년대. 혁명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실 중국사를 몰라서,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한 사정을 몰라서 앞부분에서 한참 헤맸다. 번역 탓도 해봤지만 결국은 내가 무지한 탓에 처음 몇 주 동안은 한참 헤매며 책을 봤다. 격변하는 시대에 장제스에, 국민당에 맞서는 코뮤니스트들. 그리고 코뮤니스트는 아니지만 엮여있는 인물들. 각각의 인물들 속에서 결국 인간은 무엇인지를 묻고자 했던 이 소설. 분명한 것은 내가 이 리뷰를 남겨두는 이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이 책을 집을 나와 대화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아직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사상도 정치처럼 왼쪽, 오른쪽을 나눌 수 있다면 어느 방향인지는 알 수없지만 가장 끝 쪽에 서 있을 인물이 바로 첸이다. 첫 장면에서 첸은 무기를 탈취하기 위해 살인을 하는 역할을 지령 받았다. 그는, 아마 그 때부터 첫 단추가 잘못 껴졌음을 알았다. 그의 운명은 그때 정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신념은 사상을 위해 사람을 죽였던 그 시점부터 사상은 피를 먹고 자라며, 그것을 알 수 있는자는 많지 않기 때문에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자기만이라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첸은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면, 그 정열이 남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법이다...'하고 말한 지조르의 말이 생각났다. 별안간 첸은 깨달았다. 촨도 깨닫기 시작했다. (...)

"종교가 아니야. 인생의 이미지."(...)"...자기를 완전히 파악하는 거란 말이야"<P.221>

그는 결국 그의 신념에 따라, 광적인 믿음으로 장제스가 타고있다고 믿었던 차로 돌진했고, 그의 죽음은 그로써는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그 차 안에 누가 타고있느냐는 중요치 않았다. 그는 그의 신념을 지켰던 것이다. 물론, 그가 테러했던 차에 장제스는 없었다. 밀란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가 생각나는 첸의 말로였다. 그는 그의 신념을 지켰다. 그것은 인간의 조건이었을까?


대학교에서 다름을 외치다 뒷방으로 쫓겨난 교수의 아들. 프랑스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기요는 인류애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공산당의 엘리트로서 작전을 기획하고 진두지휘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의 아버지 지조르의 사상을 이어받은 그는 전선의 최전방에 서 있었으나, 그것은 인간의 조건이 될 수 있을까?

죽음을 각오할 수 없는 인생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혼자만이 죽는 것이 아닐 때, 사람은 쉽게 죽을 수 있는 법이다. 이와 같이 동지의 떨리는 말소리로 가득 찬 죽음, 많은 사람들이 마침내 순교자로 발견하게 될 패배자의 집합, 황금전설을 만들 이 피비린내 나는 전설! 이미 죽음에 직면하고 있는 그가 어떻게 생명을 바친 인간의 중얼거림을 듣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중얼거림은 죽어가는 자들에게는 인간의 씩씩한 마음이야말로 영혼의 세계 못지않은 은신처라고 부르짖는 것 같았다. <P.365>

반란죄로 붙들린 기요는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한다. 사실 이 책을 읽고 이해가 안 돼서 몇가지 서평을 찾아보았다. 나는 그 장면을 읽으면서 기요가 선택한 자살의 길은 자의적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유명한 서평들은 강요된 죽음(자신의 신념이 다른 신념에게 져서 죽임을 당하게 되는 상황)이 아닌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자살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카토프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죽을 수 있는 기회를 조금 더 불안해하는 동료들을 위해 포기하고 신념을 지키지 못한 자가 되는 것인가? 참 어려운 부분이다. 대략적인 감정선만 알 수 있을뿐. 아직 독서력이 얕은지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기요가 매력적인 이유는 마지막 장면뿐이 아니다. 그의 독일인 아내 메이와의 담화를 통해 그의 인간적인 면들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끊임없이 고뇌했다. 인간의 조건이 자신을 이해하는데 있다면 그는 가장 완벽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기요는 가던 발길을 돌려 성급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봉황실은 비어 있었다. 아버지는 외출하고 없었다. 메이는 여전히 거실에 있었다. 그는 문을 열기 전에 걸음을 멈추었다. 죽음을 나누는 친근감에 압도된 그는 이 마음과 마음의 융합 앞에서 육체 따위가 흥분하는 것이 그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가를 깨달았다. 이제 그는 사랑하는 자를 죽음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사랑의 완전한 형식임을, 그 이상의 것이 있을 수 없는 형식임을 알았던 것이다. <P. 244>


책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그리고 가장 인간다웠던 인물은 에밀리크였다. 그는 공산당원이지만 소시민적인 모습을 가진 자였다. 큰 뜻보다는 그의 가족들이 눈에 밟히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에멜리크에게는 아내가 있었다.(...)그는 그녀에게 친절했다. 차차 두려움에서 벗어난 그녀는 그가 아플 때 간호도 해주고, 대신 일도 해주며 그의 무기력한 증오의 발작에도 잘 견디었다. 그녀는 마치 학대받은 눈먼 개와 같은 애정으로 그에게 매달려 있었다. '당신도 나와 같이 학대받은 눈먼 개가 아닌가?'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러다가 아이도 생겼다. 그런데그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었던가? 간신히 먹여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P.216>

그는 가족들에게 해가될까봐 동료를 본인의 집에 숨겨주지 못했다. 그는 사상과 현실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했지만, 마침내 사상은 그의 가족들을 짓밟았다. 아내를 죽였으며 심지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까지 죽였다. 그는 그가 믿었던 사상이 모든것을 허물어 버리는 것을 목격했다. 마침내 잃을 것이 없어졌던 그가 그의 신념을 향해 참전했을 때, 아뿔사. 그는 기관총을 다룰 줄 모르는 사내였다.

혹시 인간의 조건이 신념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라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모든 것을 잃어야 하는게 아닐까. 에밀리크가 가족들을 잃었듯이. 그리고, 마침내 신념을 향했을때 그는 방법론을 알지 못하는 무능한 인간이었다. 신념도 현실도 지키지 못한 에밀리크. 어쩌면 나랑 아주 많이 닮은 인물이 아닐까.


책에선 나를 닮은 고독한 인물이 하나 더 있다. 직업적 혁명가로 소개되어있는 카토프. 그는 '마을청소'로 불린 공산당원 학살에서 마을의 남자들이 모두 죽어나갈 때 살아남았다. 그는 끊임없는 고독 속에서 사상을 위해 살았다. 의학을 전공한 인텔리이지만 그는 끊임없는 고독 속에서 안식을 찾지 못했다. 상하이 폭동 후 잡혀들어왔던 그는 주머니에 가지고있던 청산가리를 기차 연료로 죽을 본인의 운명에 질린 동료에게 나눠주고 그 운명에 직면한다. 카토프야 말로 본인의 운명에 그리고 본인의 신념에 가장 끝까지 닿아 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불에 타 죽는 것과 죽어서 불에 타는 것. 그 순서가 그리 중요치 않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의 리뷰를 괜히 읽어본 것 같다. 타인의 리뷰에서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있기에... 그러나 지금의 나는 카토프야 말로 신념에 끝까지 가 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읽고 난 나에게 묻고싶다. 지금의 나는 온전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이 책에서 등장하는 작가를 찾아보자면 아마도 지조르영감이 아닐까 싶다. 기요의 아버지인 프랑스인 교수. 그는 혁명의 정면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정신적 지주로서 각자에게 필요한 역할을 다하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그의 사상을 물려받은 아들은 공산당의 인텔리였으며, 비록 비뚤어진 방향으로 가긴 했지만, 첸의 대부 역시 그였다. 소설의 말미에 어떻게든 기요를 살려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조르는 기요의 사상을 생각했다. 인간이 이해타산을 초월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던지는 모든 사상은 이 조건의 바탕을 막연하나마 인간의 존엄 위에 놓고, 그 올바름을 증명하려 하고 있다. 이를테면 옛날의 노예에게는 그리스도교가, 시민에게는 국가가, 그리고 노동자계급에게는 코뮤니즘이 그것이다. <P.273>

"신은 소유할 수 있지요." 하고 노인은 다 알겠다는 듯이 미소를 띠면서 계속했다. :하지만 정복하는 힘은 갖고 있지 않아요. 신의 이상은 자기 힘을 나중에 다시 찾을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인간의 꿈은 자기의 인격을 잃지 않고 신이 되는 것입니다......."<P.275>

인간의 조건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라고 쉽게 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조르영감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자신의 인격을 잃지 않고 신이 되는 꿈을 꾸지만,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며 인간이 가지고있는 특유의 정복욕에 의해 기꺼이 목숨을 사르는 어리석음을 가졌을 뿐이다.


사람은 언젠간 죽는다. 책에서는 더욱 다양한 죽음이 있다. 결과가 어쨌든 소멸될 인간들은 각각의 생각에 잠긴다. 인간의 조건. 어떻게 죽을것인가?

지조로 영감이 했던 말들 중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럼, 왜 목소리가 바뀌었지?"

"바뀌긴 뭐가 바귀어요, 당신 목소리 그대론데. 자기 목소리라도 알아듣기 힘든 법이에요, 처음 들으면 말이죠."루가 대꾸했다.

"축음기 탓인 게로군!"

"그건 틀림없이 방법 문제야. 우린 다른사람의 목소리는 귀로 듣지만..."

"그럼 자기 목소리는요?"

"목구멍으로 듣는거지. 왜냐하면 귀를 막아도 들리거든. 아편도 또한 귀로는 들을 수 없는 하나의 세계지..." <P.55>

나의 목소리는 목구멍으로만 들을 수 있다. 두 귀를 막고 노래를 불러보면 아마 아주 잘 들릴것이다. 물론 그런 물리적인 대답을 지조르 영감이 원한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언젠가 다시 이 책을 읽고 리뷰를 돌아보며 이불을 찰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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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빨강
편혜영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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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소란한 책이다. 최근 우리나라 소설들을 줄곧 읽으면서 과연 내가 사랑할 작가는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보는 중이다. 아직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소설책을 읽다 보면 가끔, '이유 없이' 읽어야 하는 책들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감정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하고 살지만 그래도 이유 없는, 논리가 없는 책들을 피부로 당겨 읽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와 빨강은 참 좋지 못한 책이었다. 선후관계를 잘 알지 못할 책. 그리고 줄거리 자체도 친절하지 않은 책이다.

그럼에도 재와 빨강은 어디선가 많이 읽어본 듯한 느낌이 든다. 쥐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쥐들의 세계에 대한 묘사와 인간세계에 대한 비유가 카뮈의 페스트를 닮아있다. '오늘 어머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카뮈의 이방인과도 닮은 듯하고, 쥐가 터지는 장면에 대한 묘사는 카프카의 변신을 닮았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지나간 생애가 너무나 사소하고 볼품없어서, 그런 인생에 회한이 느껴져서는 아니었다. 사소하고도 사소한 일로 채워진 현실의 시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쩌면 영영 멀어지게 될 지도 몰랐다. 그의 불행은 이처럼 사소하고 미세한 생활의 결을 다시 매만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이 그를 짓눌렀다. <P.168>

책의 뒤편에는 장황한 해설이 담겨있다. 어쩌면 그 해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더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단 이 책에 대한 나의 첫 기록은, 참으로 어수선한 책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싶다.

 

쥐를 잡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실패의 역사라고 해도 좋다. 쥐를 잡기 위해 더 자극이 강한 독성물질을 사용하려 하다가는 쥐약을 살포할 때마다 무시무시한 방독면을 쓰고 두꺼운 방역복을 입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일이 게속되면 결국 쥐를 잡으려다가 사람을 잡는 일이 생기고 만다.<2부 P.111>

<재와 빨강>은 소설의 주인공인 그가 전염병이 창궐한 C국으로 파견근무를 가게 되면서부터 시작한다. 문제는 전염병에서부터도 오지만 그는 C국의 언어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그의 파견근무는 확정된 일정이 아니었다는 곳에도 있다. 책은 1,2,3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와 그리고 쥐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다룬다. 모든 이야기들은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왜"라는 물음은 어떤 책에서나 그렇겠지만 유독 이 책에서 더 의미가 없다. 그동안 나의 독서는 '어떤 책의 줄거리는 이래 이건 이런 것을 의미해' 라는 도식 속에서 안정을 찾았기 때문에 더 힘든 책이었다.

C국으로 파견근무를 오기 전 그는 전처와 이혼을 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결국 전처를 죽인것은 그라는 것이 밝혀지지만 그는 기억하지 못한 채 C국에서의 망명생활을 시작했다. 책은 친절하지 않다. 갑자기 그는 쫓기고, 노숙자가 되었다가, 쥐를 잡는 사람이 되었다가. 마침내는 나름 번듯한 회사의 사원이었다가. 아무튼 흐름의 연결을 일부러 끊어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줄거리가 매끄럽지 않은 것 만은 사실이다.


전처의 죽음에 대한 실감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전처 때문에 온몸에 통증을 느낀 후라야,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이 쌓여 체기를 느끼면서도 전처가 없어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어 혀가 굳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때라야 실감 할 수 있을 거였다. 그러니 이 슬픔은 전처의 죽음 때문이 아니었다. <P.97>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이미지는 선명하다. 재와 빨강. 대비되는 색상의 책 제목에서 그리고 분위기에서 어렵지 않게 추리해 낼 수 있는 이미지.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이 재와 빨강이라는 제목이 여실히 드러난, 쓰레기 소각장의 장면이다. 그가 공원의 부랑자를 쓰레기 소각장에 던져 버렸던 날, 아마 그는 그 역시도 그렇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는 C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전염병에 대한 의심을 받았고, 고립되었다. 책의 주된 주제의 한갈래가 쥐라면 한 갈래는 고독일 것이다. 그는 여러 종류의 고독을 씹는다. 아내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 생기는 고독과 C국에서의 고립감. 부랑자의 삶에서 만나게 되는 두려울 정도의 고독함과, 다시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고독감까지.


쓰레기장이 가장 아름다울때는 쓰레기가 타고있을 때다(...)불꽃은 처음에는 조금 흐리다가 점차 색이 선명해지고 이윽고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것이 타들어가면서 나는 연기이다.<P.117>

그는 온몸에 힘을 주어 모든 구멍을 한껏 벌렸다. 침이 흐르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대기 중에 떠도는 소독약과 소각장에서 흘러오는 검은 연기를 들여마셨다. 연기가 맵고 검었지만 여느날보다 심한 것은 아니었다. 내장이 쏟아질 듯 지독한 기침이 터져나왔다. 기침 때문에 눈물이 났다. 쓰레기는 다른 날보다 오래 탔다. 잔불은 오랫동안 남아 밤을 밝혔고 영혼처럼 가벼운 재가 밤새도록 공원을 떠돌아 다녔다. <P.151>

세상의 모든 것은 이면과 내면이 존재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이게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재와 빨강은 쥐를 생각나게 한다. 회색의 겉껍질 안에 가지고 있는 쥐의 내장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끊임없이 쥐에게 집착한다. 그리고 상황은 계속 극한으로 몰고 간다. 소설의 주인공 그는 부인을 죽였고, 쥐들을 죽였고, 공원의 부랑자를 죽였으며 방역을 하다가 마주친 여인을 죽였다. 익숙한 죽음과 익숙한 견딤. 책은 비현실적인 것들을 엮어서 회색도시를 건설했다.


무엇보다 다시는 쥐를 잡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죽은 쥐를 치우려고 일어서는 그를 피해 동료들이 뒤로 물러섰다. 그들이 자신을 쥐 보듯 하는 것은 다 쥐 때문이었다. 내장까지 터진 징그러빅 짝이 없는 쥐를 들고 쓰레기통으로 가면서 그는 다시 한번 쥐를 잡았다가는 스스로를 사람이 아니라 쥐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1부 P.32>

C국에 전염병은 쥐가 원인이 되지는 않았다. 단지 사람들의 불안 때문에 쥐는 당연히 이곳에서 저곳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타나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방역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쥐는 단지 인간에게 해롭기 때문에 죽임을 당해도 되는 건가? 갑자기 책이 소름 끼치게 된 부분은 쥐가 사람으로 읽히기 시작한 시점부터이다. 그가 스스로를 사람이 아니라 쥐라고 생각하겠다는 말을 비웃듯 2부에서 그는 쥐를 죽이고 쥐와 생활하며 3부에서는 직업까지도 방역원이 된다. 쥐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는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


도시는 외형적으로 건물과 집과 다리와 각기 다른 상점으로 이루어진 지상의 공간이지만, 실제로는 수십개의 관과 여러개의 층을 가진 지하공간이다. 지상이 인간의 세계라면, 지하는 쥐의 세계이다. 도시 전체를 관통하는 하수도 밑에는 전선이 매설된 관이 있다. 쥐는 그런 관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다. 도시의 심층구조와 쥐의 분포도는 그래서 비슷하다. 도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개의 층을 가지고 있고 쥐는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수십만 마리가 존재한다. <P.114>

작가의 문장은 왠지 모를 심해어 같다. 나에게 특별히 해를 끼치는 것도아닌데 어딘가 모르게 오싹한 그 특유의 문장 방식 때문에 줄거리가 매끄럽지 않은데도 불평불만이 없었다. 도시의 이면은 아주 깨끗할지라도, 내면에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쥐는 쥐의 세계를 가지고 있지만 사람의 눈에는 다 띄지 않는다. 아마 쥐의 입장에서도 사람의 세계는 내 세계가 아니니 눈에 띌 필요가 없겠지.

그는 어쩌면 그의 고독을 견뎌내는 방법 '파괴'에서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경계심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쥐를 한 번에 때려잡을 때는 생소한 쾌감에 젖었다. 그는 햇볕에 농익은 석류가 속을 내버리듯 쥐가 더러운 회색 가죽 바깥으로 붉은 내장을 툭 터뜨리는 걸 똑똑히 바라보았고 피와 엉겨붙은 털이 바닥에 얼룩으로 남고 누군가 지나가면서 밟는 걸 지켜보았다. <P.176>

평범한 괴로움과 평범한 외로움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괴로움과 특별한 외로움 역시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책을 읽는 내내 쥐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한 대가로/스스로를 고스란히 내놓아야 하며,/인생에 대한 대가로 인생을 바쳐야 한다.'<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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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에서의 오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최정수 옮김 / 부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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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은 어떤 것일까?

가끔 책을 읽다 보면, 연관되어있는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게 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있다. 정리는 느리지만 나름 꾸준히 철학스터디를 하고 있는데, <사랑>에 관한 챕터를 읽던 도중 도서관에서 우연히 얇은 책을 들었다. 사실 작가가 구면이어서 집어 들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 사르트르의 연인으로 더 잘 알고 있지만 사실 그녀의 책은 한 권도 접해보지 않았다. 모쪼록 읽게 된 책을 덮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래서 사랑은 어떤 것일까 였다.

책은 아주 얇고 심플하다. 인생의 가을 녘 서로가 몇 번째 일지는 모르지만 여튼 첫번째 사랑은 아닌 앙드레, 니콜부부가 앙드레의 딸인 마샤와 모스크바 여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아주 사소한 오해로 다투게 된다. 소설은 늙어감과 사랑함 그리고 외로움과 사회주의. 그 어딘가를 헤맨다.

표면만 보자면 노부부의 알콩달콩한 여행이야기이다. 다소 다투기도 했지만 그 다툼의 원인은 서로의 자식에 대한 질투심에서 비롯되었다. 온전하게 부부끼리 있는 시간을 원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촉발된 다툼은 사실 말을 꺼내놓음으로써 종료된다. 그러나 그 일련의 과정이 '읽을만'하려면 역시나 매력적인 몇 가지 요소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녀는 아직도 앙드레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남자인 친구들과 수다를 떨 때, 자신이 여자임을 느꼈다. 그런데 앙드레가 너무나 잘생긴 낯모르는 청년을 데리고 왔다. 청년은 별생각 없이 예의 바른 태도로 그녀와 악수했고, 그 순간 뭔가가 뒤집혔다. 그녀에게 청년은 젊고 매력적인 수컷이었디만, 청년에게 그녀는 여든 살 늙은이 만큼이나 무성의 존재였다.<P.70>

무성의 존재가 된다는 것. 더 이상 '젊은'사람에게 여성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좌절감을 느끼게 되는 니콜.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동년배의 남자들 사이에서는 여자였다. '여성성'이라는 것이 발휘되는 그룹이 존재함에도 다른 그룹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겨버리는 질투와 좌절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 것일까.

세대차이. 아주 얇은 책 한 권에서 발견한 세대의 차이는 간극이 분명하다. 이성간의 감정이 배제된 무성의 관계가 되어버리는 세대. 그 세대는 여성성 혹은 남성성 만큼이나 지성 역시도 서로 통하지 않는다. 교사였던 니콜과 교수 앙드레. 그들은 '젊다'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젊은이들은 가공의 영원을 앞에 두고 일거에 길 끝으로 건너뛴다. 하지만 나중에는 역사의 특별 지출이라 불리는 것을 추월할 힘이 없어지고, 사람들은 그들이 끔찍하게 자랐다고 평가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에 의존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럴 생각이 없었다. <P.97>

니콜은 분명 이름 모를 청년에게 무성의 존재임에서 나이 듦을 느꼈고 좌절했다. 그러나 앙드레는 젊은이의 행동에 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했고, 더 이상 자신은 통하지 않는 뒷방 노인네라 느꼈다. 늙어감은 단절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육체적인 사랑이 불가능 함을 느꼈을 때. 그리고 세대가 단절됨을 느꼈을 때. 혹은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질투감을 느낄 때. 비교가 되었을 때. 나를 둘러싼 온 세계가 나의 늙어감을 외칠 때.

어린 시절의 추억은 왜 그토록 감동적일까? 시간이 끝없이 확장되기 때문이겠지. 저녁 시간이 멀리 사라져갔고, 그녀 앞엔 영원의 시간이 펼쳐져 있었다. <P.130>

나의 앞에 있는 시간이 내가 지나온 시간보다 짧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되는 순간 나는 늙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게 되었다. 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 처럼 늙어감을 아름다운 것이라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늙어감은 숨기게 되는 모순점이 생길 때. 앙드레는 젊은이들의 지식에는 빈 공기층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자신의 딸에게 러시아어를 배울 수 있으며 모스크바는 자신보다 훨씬 어린 사람들이 '일하고 있음'을. 자신은 '한가함'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통속적인 표현이지만 노인의 지혜와 청년의 추진력이 조화로운 세계. 그런 세계에서 살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긴 세월과 이상에 대해 말해줄 사람도 필요하고, 눈앞에 닥친 일들을 처리해줄 사람도 필요하다. 러시아어를 모르면서 러시아 뉴스를 들을 수 없듯이.

"넌 사유재산을 증대시키면서 사회주의를 제대로 건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저는 인간이 사회주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단기적으로 개인의 이익에 관심을 가져야 돼요." 마샤가 말했다. <P.62>

앙드레와 니콜은 모스크바에서 오해로 인하여 단절되었고,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몇시간을 통해서 그들의 사랑이 끝났음을 직감하게 되지만 그보다 더 느리게 흘러간 시간 속에서 아직 그들은 사랑하고 있음을. 그게 참 다행임을 느끼게 된다. 사랑은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일까?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을 진정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두 사람중 한 사람이 먼저 끝내버릴 수 있는 관계.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앙드레는 니콜이 아님을, 니콜은 앙드레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번은 없을 거야."

아마도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결코 서로에게서 멀어져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 앙드레는 질문할 것이고, 니콜은 대답할 것이다. <마지막>

한병철은 <에로스의 종말>에서 에로스의 조건으로 타자의 비 대칭성과 외재성을 내세운다. 사랑은 한 방향을 바라보는 것도, 하나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나의 밖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타자를 만나게 될 때 비로소 사랑은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잔인하게도 같은 시간에 끝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공을 들여야 하는 작업인 것이다.

아주 어리석은 실수로 억지 부리는 상대가 아주 밉지 않은 것은 그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론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예술의 영역 어딘가인 것이다.

 

책에서, 앞으로 써먹고 싶은 문장을 찾았다.

Q. 여행을 왜 다니나요

그를 흥분시키고 겁먹게 하는 모험, 발견이라는 모험이 바야흐로 시작되고 있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대단한 인물이 되는 것에 관심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라는 존재의 진실과 그 자신의 진실이 그에게 속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진실은 지구 전체에 막연하게 흩뿌려져 있었다. 그 진실을 알려면 시대와 장소들을 꼼꼼히 살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역사와 여행을 좋아했다. <P.21>

Q. 책은 왜 읽나요

이것이 문학의 이점이야, 니콜은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안에는 타고난 표현들이 잠재되어 있다. 이미지들은 퇴색하고, 왜곡되고, 소멸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목구멍에서 낡은 표현들을 그것이 쓰였던 용법 그대로 찾아냈다.<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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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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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십 년이나 더 된 이야기지만, 갓 사회로 첫 발을 디딜 때의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 당시의 최저시급도 주지 않는 작은 편의점에서 주인 대신 사람을 맞으며 용돈을 벌어서 화장품을 샀을 때가 생각이 난다. 다행히도 대학은 장학금으로 다닐 수 있어서 다른 친구들보다는 낫다고 위로하면서. 그렇게 기다렸던 이십 대.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 점원으로서 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점장에게 배울 수 있지만 사람대 사람으로서 사회에서 섞여 들어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어디서도 가르쳐주질 않는다. 자연스럽게 무리 안에서 습득해야 하는 지식이었던 걸까? 어쩌면 나는 너무 평범하기에 이 책의 주인공 후루쿠라 게이코가 낯설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바틀비를 알고 있어서 영 낯선 인물도 아니었다. 현대판 바틀비. 그녀는 지금 일본의 한 편의점에서 18년째 일하고 있다.


 

 

"편의점에 계속 있으려면 '점원'이 될 수밖에 없어요. 그건 간단한 일이에요. 제복을 입고 매뉴얼대로 행동하면 돼요. 세상이 석기시대라 해도 마찬가지예요. 보통 사람이라는 거 죽을 쓰고 그 매뉴얼대로 행동하면 무리에서 쫓겨나지도 않고, 방해자로 취급당하지도 않아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 속에 있는 '보통인간'이라는 가공의 생물을 연기하는 거예요. 저 편의점에서 모두 '점원'이라는 가공의 생물을 연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P.112>

그녀는 매 순간이 이상하다. 우는 사람을 조용히 시키는 가장 큰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는 것을 잊어버릴 만큼의 큰 충격을 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들 그녀를 이상하게 생각한다. 다른 방법은 가르쳐주지도 않았으면서. 가르쳐주면 매뉴얼대로 행동할 수 있는데 모진 세상은 그녀에게 정상을 강요하긴 하지만 어떻게 정상이 될 수 있는지는 가르쳐주질 않는다.

다만 편의점에서는 이 정상적인 세계에서 그녀도 정상적인 부품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해준다. 친절하게도 가게 직원이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매뉴얼을 알려준다.

나는 뒷방 사무실에서 보여준 견본 비디오나 트레이너가 보여주는 시범을 흉내 내는데 선수였다. 그전까지 나에게 "이것이 평범한 표정이고 목소리는 이런 식으로 내는 것"이라고 가르쳐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22>

>> 정상적인 삶은 무엇인가.


편의점은 그녀에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정상적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나를 이루는 세계의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말투를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그녀는 편의점 직원 중 가장 정상적인 사람을 골라 끊임없이 관찰하고 비워져 있는 나를 채운다.

이즈미씨가 전에 일했던 가게에서 친하게 지냈다는 주부가 일을 도우러 왔을 때는 옷차림이 이즈미씨와 너무 비슷해서 착각할 뻔했을 정도다. 내 말투도 누군가에게 전염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전염하면서 인간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P.36>

그녀의 그런 노력들은 참 안쓰럽다. 그리고 작가가 편의점을 정상적인 삶의 무대로 정한 것이 참 영리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편의점은 항상 같은 물건들이 들어차있는 듯하다. 온갖 물건들이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작은 공간에서,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다. 물건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몇 시에 교대를 하는지 모든 것들이 정해져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사람도 물건도 매번 새로운 것들로 바뀐다. 트랜드에 따라서 각자의 사정에 따라서 새롭지 않은 것들이 새로운 것들로 바뀌어가며 편의점 속 세상을 정상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참 단순한 사회의 논리이지만 그녀를 둘러싼 세상은 그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무한대로 넓은 세상에서 그녀는 그녀가 안정적으로 정상이 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찾은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비정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곳. 우는 사람에 대한 대처법이 정해져있는 그곳에서 그녀는 편의점의 부품으로 18년을 고장도 없이 살았다.

밖에서 사람이 들어오는 차임벨 소리가 교회 종소리로 들린다. 문을 열면 빛의 상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언제나 계속 돌아가는, 확고하게 정상적 세계. 나는 빛으로 가득 찬 이 상자 속 세계를 믿고 있다. <P.41>

그녀는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로 매 순간 새롭게 채워진다. 나이가 들면서 늙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녀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가족들도 그녀의 친구들도 비정상적인 그녀를 탓하고, 그녀는 비정상적인 인간이 된다. 마흔 줄이 가까워지는데 단 한 번도 사회생활을 할 생각도 결혼을 할 생각도 없이 그저 편의점에 부품이었던 그녀를, 사람들은 점점 이상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된다.

가족이 왜 그렇게 나를 고쳐주려고 하는지, 겨우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P.98>


>> 바틀비의 저항

필경사 바틀비와 이 책이 닮았다고 생각한 것은 이쯤에서였다. 바틀비는 필경사일을 하기만 원했다. 다른것들은 필요가 없었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저 필경일외의 일은 하지 않기를 원했을 뿐인데, "가만히 있을 권리"를 주지 않는 사회. 편의점인간의 후루쿠라씨는 현대판 바틀비가 아닐까.

하지만 바틀비가 오로지 자신의 세계안에 있길 바란 인물이라면 적어도 후루쿠라는 조금은 '사회와 친해져보고자 한' 바틀비가 아닐까 싶다. 그녀는 선사시대에 사냥할 능력이 없어 무리에서 도태된 남자. 시라하씨를 만난다. 그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나이많은 남성으로 사회부적응자이다. 그 역시도 사회에서는 쓸모없는 부품이었다. 그는 후루쿠라의 집에서 취식하면서 겉으로나마 사회에 적응한 모습으로 보이길 원하는 그녀를 잠시나마 채워준 인물이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인척 함으로써 그 나이 먹도록 결혼 생각이 없었다는 것에 대한 방어막이 되어준 남자. 그녀에게 시라하씨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회는 그리고 시라하씨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상황에 떠밀려 편의점을 그만두게 된다. 결혼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일종의 결혼퇴사를 하게 된 것이다.

18년 동안 그만두는 사람을 몇 명이나 보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빈틈은 메워져버린다. 내가 없어진 자리도 눈 깜짝할 사이에 충원되고, 편의점은 내일부터 전과 똑같이 굴러갈 것이다. <P.168>


일을 할 생각이 없는 시라하는 그녀가 다른 일을 하길 원한다. 좀 더 전문직을 갖길 원한다. 이토록이나 사회적응자처럼 보일 수 있도록 해주는 그를 위해 그녀가 할 일은 새로운 전문직으로의 취직이었던 것일까?


"몸속에 편의점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와서 멈추질 않아요. 나는 이 목소리를 듣기 위해 태어났어요."<P.188>

어쩌면 작가는 그저 현대사회의 괴팍함을 말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는 책을 몇 페이지 넘긴 순간부터 그녀는 또 다른 바틀비라는 것에 꽂혀서 책을 읽었다. 도대체 사회는 왜 바틀비가 죽는 것을 내버려두지 못하는 것일까. 단순히 교체가 가능한 부품을 왜 그렇게 정성 들여 내 쫓아 버리는 것일까.

정상적인 것은 대체 어떤 것이란 말인가.

왜 사람들은 잉여인간에 대하여, 잉여에 대해서 그토록 강박적으로 부정적인 관념을 갖게 되었단 말인가.

그리고, 그녀는 왜 편의점의 부품이길 원했던 것일까. 생각해 볼 것들이 많은 책이었다. 사실 신간을 읽기 꺼려하는 나에게 이런 책들은 신선한 울림을 준다. 고전속에서 현대를 찾는 것과는 또 다른 생동성이다.


성과주체는 노동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착취하는 외적인 지배 기구에서 자유롭다. 그는 자기 자신의 주인이자 주권자이다. 그는 자기 외에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 점에서 성과주체는 복종적 주체와 구별된다. 그러나 지배 기구의 소멸은 자유로 이어지지 않는다. 소멸의 결과는 자유와 강제가 일치하는 상태이다. 그리하여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더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자기관계적 상태에는 어떤 역설적 자유, 자체 내에 존재하는 강제구조로 인해 폭력으로 돌변하는 자유를 낳는다.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인 것이다. <한병철_피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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