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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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떻게 보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스릴러소설이지만 치밀한 구성과 구 소련의 생활상과 그 시대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게 했다. 

한마디로 말해 올해 읽은 추리 또는 스릴러 중 최고라 하겠다.

 

1. Kobayashi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곳은 동네 카페였다. 커피를 마시던 종이컵이 도자기잔이 되고 서서히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데 찻잔 밑에 있는 도자기 상표가 고바야시(Kobayashi)라고 써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모으면 원래의 모습이 되는 것처럼 책의 어느 것 하나 빼 놓을 것 없이 결말을 향해 의미있게 배열되어 있다.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s)> 정도의 강력한 반전은 아니지만 이야기의 짜임새는 그 이상이다.

 

 

 

 

유주얼 서스펙트

감독
브라이언 싱어
출연
스티븐 볼드윈, 가브리엘 번
개봉
1995 미국,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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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화 <베를린>


베를린

감독
류승완
출연
하정우, 한석규, 류승범, 전지현, 이경영
개봉
2012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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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이 개봉되었을 때 이 책과의 표절시비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은 아내를 의심하게 되고 그 아내를 조사해야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일 것이다. 그리고 스탈린식 공격시간인 새벽 4시에 관한 언급도 수차례 나온다. 그리고 가장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동전모양으로 생긴 비밀 주머니이다. 이 책에서와 영화에서 그 용도는 다르긴 하지만 이 부분은 좀 베낀 것 같은 느낌이 짙다. 하지만 이정도의 '표절' 또는 '가져오기'는 그냥 넘어가도 되는 정도가 아닐까? 안정효씨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의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영화에서 최민수가 맡았던 그)이 쓴 시나리오의 내용처럼 영화나 책에 비슷하거나 똑같은 설정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소설<헐리우드~>의 화자가 그 시나리오대로 영화를 계속 진행했던 것처럼 이 정도의 비슷함은 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영화 베를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인 류승범의 "Revenge is a dish best served cold"야말로 스타트렉등의 카피가 아닐까?

 

 

3. 책문


책문

작가
김태완
출판
소나무
발매
2004.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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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문>의 첫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광해군이 과거 급제자에게 물었다. "우리나라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인가?" 임숙영이란 급제자는 "나라의 병은 임금에게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왕은 크게 화를 내었고 합격취소까지 하려고 했지만 다른 대신들의 만류로 그리 되지는 않았다 한다. 

 

유교질서가 가장 핵심되는 가치였던 조선시대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이 잘못 한다고 말하면 '종북'이라 몰아치고 자꾸 분위기를 경색시키는 요즘의 정부가 생각나 많이 씁쓸하다. 코미디 프로를 참 좋아했는데 풍자가 없어진 자리를 성적인 것으로만 채우려 하니 볼만한 코미디가 없어져 더 속상하다. <차일드44>에 보면 "상황 증거에 기반을 둔 처형. 그리고 그렇게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이 반대하는 바로 그 체제를 어쩔 수 없이 모방하게 된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자꾸 종북몰이를 하며 정부에 반대하거나 또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 하다보면 세상에서 가장 폐쇄된 독재국가인 북한을 닮아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또 KGB의 전신인 MGB직원들이 공포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은근히 소문을 퍼뜨리는 장면에서 국정원 댓글사건이 생각나 더 씁쓸해졌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며 영화화 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는데 이미 찍고 있다고 한다.

주인공은 배트맨에서 인상깊은 악역을 맡았던 Tom Hardy가 맡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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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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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미국드라마 <덱스터(Dexter)>와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생각났다. 덱스터가 떠오른 때는 "슬픔은 이해할 수 없지만 유머는 이해한다"라는 부분이었다. 이런 묘사는 사이코패스를 표현할때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것들이고, 우리 영화 <추격자>의 하정우의 연기에서도 잘 나타난다.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참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벤자민 버튼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아무것도 기억 못하고 죽어가는 점에서 였다.

 

기억을 잃는 다는 것.... 책을 읽으며 처음 기억을 잃었을 때가 생각났다. 블랙아웃을 최초로 경험했을 때 꽤 오래 그것에 대해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 내가 침대에서 깨어났는지 몰랐을 때의 그 기분이란... 간밤의 일정시간 동안의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 생각에 많이 불안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비슷한 상황이 또 생겨나면 후회와 함께 '그런거지 뭐'하며 괜찮은 척 하지만,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거기다 그런 불안감이 매일 계속되고 그 마저도 점점 더 심해진다면?

 

작가의 말 중에 '이것은 내 소설이다. 내가 써야 한다. 나밖에 쓸 수 없다.'라는 부분이 있었다. 나만 쓸 수 있는 이야기,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 모든 종류의 글을 쓰는 이들의 공통된 꿈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책을 쓰며 무섭고 잔인한 내용이지만 작가는 한편으로는 행복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문화센터에서 시를 배운 주인공의 일기같은 글을 모아놓은 형식을 사용한 책이라 시 같기도 하고, 글 하나가 한두줄로 끝날때도 있어서 하이쿠 같기도 하다. 거기다 치매에 걸린 사람의 글이라 앞뒤가 서로 모순되는 내용들도 많다. 작가는 '소설가는 계속 구속을 받는다'라고 했다. '첫 문장에 그리고 만들어진 주인공에' 구속 받는다라고 했다. 정말 치매환자가 글을 쓴다면 이렇게 쓰지 않을까?

 

<수첩에 옮겨 쓴 글>

죽음은 두렵지 않다. 망각도 막을 수 없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닐 것이다. 지금의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세가 있다한들 그게 어떻게 나일 수 있으랴.

- 언젠가 아버지께서 종교적인 관점에서 '치매에 걸린다면 그 영혼은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말을 하신 적이 있었다. 참... 어려운 문제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는 마음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

- 이런 부분을 읽을 때마다 김영하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취재를 하고 공부를 하고 쓰는 글이겠지만서도... 

 

연쇄살인범도 해결할 수 없는 것: 여중생의 왕따

- 이게 살인자의 유머 일까? 웃음이 나왔다. 읽는 동안 나도 주인공에 동화되었나?

 

세상의 모든 전문가는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말할때까지만 전문가로 본인다.

-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숨이 막힌다.

- 서경식 씨의 '언어라는 감옥에 갇힌 수인'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인용인지 패러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치매의 끔찍함을 짧게 잘 표현한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

 

기억을 모두 잃는다면 더는 인간이랄 수가 없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가상의 접점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악이 아니오. 그냥 기도나 하시오. 악이 당신을 비켜갈 수 있도록"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 덧붙였다.

- 악이 그 스스로에 대해 말한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오싹함에 어깨가 움츠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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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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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무소유>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그렇더라도 나는 이 가을에 몇 권의 책을 읽을 것이다.술술 읽히는 책 말고, 읽다가 자꾸만 덮어지는 그런 책을 골라 읽을 것이다. 좋은 책이란 물론 거침없이 읽히는 책이다.그러나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 정말 이 책에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한다. 

 

황현산 선생 최초의 산문집이라고 하는데 칼럼을 모아 놓은 책이라 대부분 서너 페이지의 짧은 글들이다. 좋은 시집을 읽을 때에 단숨에 읽을 수 없고, 매 행이 또는 매 연이 끝날때마다 멈추게 되는 것처럼, 매번 산문 한편을 읽을 때마다 자꾸 덮게 되고 먼 곳을 쳐다보게 한다. 심지어 어떤 글은 읽고나서 또 다른 한편을 읽으면 그 감정이 희석될까봐 일부러 책을 덮고 다음 날까지 기다린 적도 있었다. 그래서 분량이 많지 않음에도 다 읽는데 꽤 오래 걸렸다.

 

읽는 내내 나는 작가의 깊은 성찰에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감탄했고, 시대를 꿰뚫는 혜안에 고개를 자꾸 끄덕이기도 했다. 가끔은 작가의 안타까움에 공감해 한숨이 쉬어지기도 하고, 또 가끔은 시대를 또는 우리나라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같이 미소를 지어 보기도 했다.

 

3부로 되어있는데 개인적으로는 1부가 제일 좋고, 3부가 그리고 2부는 좀 아쉬웠다. 적어도 이 책에 실린 선생의 글은 짧을수록 더 좋은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수첩에 옮겨 쓴 글>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 만한 시간이 현재 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 현재가 두텁다는 말은 뭘까? 나의 현재는 어느 정도의 과거까지 포함하고 있을까?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처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철저하게 막아내려 한다. 그러나 죽음을 끌어안지 않은 사람은 없기에, 죽음을 막다보면 결과적으로 삶까지도 막아버린다. 죽음을 견디지 못하는 곳에는 죽음만 남는다.

- 납골당이나 묘지가 들어온다면 동네사람들은 아주 잘 뭉친다. 우리 동네에 들어온다면 나는 과연?

 

대학에 입학한 남학생들이 한두 해를 방황 속에 허송하다가 '복학생 아저씨'가 되고 나서야 공부에 전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군대 생활이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군대 문제가 해결되기 전가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 나도 군대가기 전까지 '허송'했고 군대를 늦게 갔다온 덕에 학점이 별로 안좋다. 나도 그냥 군대가 사람을 만든 줄 알았고, 그냥 쉽게 그런 말을 진리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청춘이라는게 안그래도 정해지지 않은게 많아 근심도 많은 때이다. 갔다오기전까지 한국 남자들에게 커다란 물음표 일수밖에 없는 군대문제에 대한 대단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언제나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는 것은 글쓰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만 글 쓰는 사람이 된다.

- 기억력이 좋다고 자부하는 나이지만 글을 쓰는 것이 게을러지고 있다. 다시 시작하고 다시 기억하자.

Some write to remember, Some write to forget! 

 

외국문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효과는 우리가 마시는 공기처럼 이 삶의 안팎에 퍼져 있으나 그것을 의식한 사람은 적다. 그 효과가 어디서 오는지 아는 사람은 더욱 적다. 불어불문학과에서 무엇을 공부하는지 설명하기가 그만큼 어렵다.

- 요사이엔 국문학과도 없앤다는 말이 나온다. 참... 우리나라에는 경영학도들만 필요한 걸까? 그건 아닐텐데...


지금 어떤 사람들이 학생들의 교과서에서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써서 민주주의에 선을 그으려한다. 자유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말이 이 땅에서 자유를 억압한 적은 없지만,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은 민주주의도 자유도 억압했다. 이를테면 '한국적 민주주의'가 그렇다. 

- 어린 시절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 참 많이 들어봤다. 가끔씩 들려오던 북한의 "우리식~"이란 구호가 본질 보다는 '우리식'에 힘을 주어 북한 통치자의 사정에 맞게 갖다 썼던것 만큼 '한국식'도 그렇게 편리한 도구였던 것 같다. 비교적 최근에는 청와대 대변인이 '한국식 정서'를 참 잘도 이용해 먹었다. 참 유용한 표현일쎄 '한국적', '한국식'....


그러나, 가령 신동엽 시인이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라고 외쳤을 때, 거기에서 허위의 언행과 빈 관념을 배척하고 진실한 실천과 구체적 희망을 끌어안으려는 의지를 읽어내는 한 젊은이가 그 속에 키질을 하는 한 농부의 감정이 어떻게 스며 있으며 이 감정이  저 의지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끝내 감지하지 못한다면 적지않게 섭섭한 일인 것도 사실이다.

- 레미제라블을 읽으며 미리엘 주교에 대해, 워털루 전투와 파리 하수도에 대해 각각 100페이지 내외로 서술한 저자의 의도가 궁금했었다. 그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 빅토르 위고는 자신의 작품이 오랫동안 살아 남을 것이라 생각했고 후세 사람들이 읽을 때 그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라고 이런 긴 잔소리를 덧붙인 것이 아닐까? 응축된 시만 읽었을 때는 다소 오해하고 있었는데 이 해석을 읽고 나서야 시골마당에서 키질을 하는 농부의 주름진 얼굴이 떠오르며 그 농가적 배경이 제대로 읽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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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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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은 본 적이 없다. 시간이 없거나 이 책을 다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글만 읽어도 좋을듯. 강렬하다."<한번 더 읽기를 바라며 쓰는 글>에 대한 나의 메모.

 

작가 김연수는 생각의 깊이가 남달라 가슴을 크게 울리는 작가는 아니지만 재치있는 산문을 잘 쓰는 사람인 것 같다. 소설<원더보이>를 읽을 때에는 세세한 70,80년대 풍경 묘사에 "그땐 그랬었지"하는 생각을 하게 했는데 이 글은 주로 현재를 사는 우리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다시봐도 제목을 참 잘 지은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기라고 말한다. 전쟁을 겪은 세대가 아직 살아있고 아직도 휴전상태인 우리나라에선 특히 더 이기라고 가르치며, 이기는 것의 미덕을 심하게 강조하는 것 같다. 하지만 모두가 이기면 지는 사람은 없나? 가끔은 win-win이라 하기도 하고 상생이란 말을 쓰기도 하지만 마음속 바탕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이런 말들은 좀 그렇다. 윈윈이라고 해도 협상이나 계약이 끝났을 때 집에와서 아쉬움이나 속은 것 같은 기분에 이불속에서 발길질을 해대는 누군가는 분명 있지 않을까? 작가는 그냥 지지않은 것으로 끝나면 어떨까 하고 제안하고 있다. 승패가 명확해지는 축구 같은 운동보다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작가의 건강하고 멋진 결론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각박한 세태라는 말을 한다. 이런 세상에서 이기는 것은 너무 힘들고, 적당히 져주는 것이 자존심 상한다면 지지않는 선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정리해 보는 것은 또 어떨까?

 

수첩에 적은 내용은 아니지만 카페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커피값에 따라 구성원이 달라지고 결국에는 매상도 달라진다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커피값이 비싸면 예쁘게 잘 차려입은 '언니'들이 주로 오게되고 그 언니들을 따라 젊은 남자들이 들어온단다. 그러나 3천원 이하로 팔면 노스페이스 등의 검정 등산 자켓을 입은 '아저씨'들이 오기 시작하고 그들이 큰 소리로 전화통화라도 하기 시작하면 그 이후로는 언니들이 안오기 시작해 결국 매상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당시 카페에서 그 부분을 읽고 있었고 때마침 나도 문제의 그 '교복' 점퍼를 걸치고 있어서 웃기기도 했고 '커서'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도 해봤다.

 

<수첩에 옮겨쓴 글>


결국 최고의 삶이란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는 삶이라는 뜻이다. - 중략- 여름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달리기란 뜨거운 햇살과 서늘한 그늘을 번갈아 가며 지나가는 달리기다. 30도가 넘는 낮에 달린 일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두 달만 지나도 이제 그런 달리기를 하긴 어려워질 텐데. 최고의 달리기를 하는 건 정말이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렇다면 최고의 삶도 마찬가지다.

- 내 아버지가 말씀하신 '이야기거리가 많은 인생'과도 닮은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많이 도전해 보고 노력하는 것이 멋진 인생이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할만한 인생이야기라 하셨다. 

 

나는 모든 화가와 작가는 보편적인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쓴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나에 대해서 그리고섰던 것이다. 적어도 내가 보거나 읽은 대가들의 작품은 예외없이 나를, 나 자신의 삶을 다루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처럼 개인적이고 사적인 감동이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 아무도 모르는 또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니고... '있음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소설이라 했던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기억에 남아 세월이 흐른 후에도 다시 새로운 판으로 찍혀 나오는 책들 그런 것이 고전일 것이다. 고전 작품들은 그래서 대단히 사적인 것들인 것이다.

 

달리기에도 질문이 있다면, 그건 "달리고 싶어서 달린건 언제가 마지막인가?"가 될 듯하다. ...... 전자를 '달리기'라고, 후자를 '후달리기'라고 하자. ...... 만약 나의 달리기가 후달리기 같은 것이었다면, 나는 아마 정신분열에 시달렸을 것이다. ...... 당연히,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후달리기로는 사흘이상 달리기 어렵다. 채찍질을 사흘동안 당한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므로 달리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후달리지 않는 것도 참으로 중요하다.

- 요즘 말로 잘 풀어낸 것 같다. '후달리기'라니...20년쯤 지난 후에 스무살 쯤된 젊은이들에게도 이 단어의 뜻이 쉽게 이해될 지는 잘 모르겠다. 속어라는 것이 시절이 바뀌며 많이들 사라지지만 또 '정규'언어에 편입되기도 하며 가끔씩은 여러 세대를 거쳐 살아남기도 하니까. 하여간 요즘 21세기 초반에는 참 잘 고른 표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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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쉬었다가 - 따뜻한 남자 손봉호 교수의 훈훈한 잔소리
손봉호 지음 / 홍성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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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 교수를 처음 방송에서 보았을 때는 '꼬장꼬장하게 생기신 노인 분이 말씀 참 잘하시네' 정도로 생각했다.70이 훌쩍넘은 나이에도 정확한 발음으로 다소 진보적인 태도로 사회를 바라보시는 것이 꽤 신선했다.이 책을 읽어보니 그 분의 '대쪽 같은' 품성은 유학을 공부하신 저자의 아버지의 영향이 큰 듯하다.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옳음과 그름 보다는 이익과 불이익에 근거하여 판단을 내리는 이 시대에 이런 분이 있다는 것이 참 좋다.


이 책은 정말 '쉬었다'가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게 잘 구성되어 있다.처음에는 비교적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글들을 배치하고 뒤로 갈수록 진지한 내용들이 많다.한가지 구성 및 편집에서 아쉬운 점은 글이 쓰여진 연대가 없다는 것이다.아무래도 수필은 그 당시의 주요사건이나 세태와 관련이 많을 수 밖에 없는데 쓰여진 연대가 나오면 더 많이 공감할 수 있지 않았을까?


글을 읽고 난 후 손교수님에 대해서는 두 가지 마음이다. 어떤 부분은 '존경'스럽고 어떤 부분은 '부럽다' 저자에 따르면 '부럽다'는 것은 내가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존경한다'는 '나는 그렇게 될 수 없으니 당신 만이라도'의 의미라고 한다. 정말 그런거 같다.


<수첩에 옮겨 쓴 글>


윗 사람에게 아부하고, 부정직한 방법으로 출세하는 사람은 칼 들고 돈 빼앗는 사람과 오십보 백보다. 그렇게 해서 성공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부러워 하는 사람은 강도를 부러워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 참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본 지가 오래되었다. 그래서 신선했다.


우리 집 벽시계는 모든 부분이 제 할 일을 다하기 때문에 건강하고 진실하게 보여, 그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모조품의 시간보다 더 정확한 것 같다.

- 저자의 집에 있는 태엽감는 추시계에 관한 대목이다. 애초에 오리지널은 모든 부분에 의미가 있고 필요가 있어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모조품은 겉모습만 흉내내기 때문에 의미없이 존재하는 부분이 생겨난다. 시계같은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절차나 관례라고 부르는 것들에도 이런게 많이 있다. 허례허식이라고 부르는 그런 것도 원래의 취지보다는 전통이라는 말로 무조건 따르다 보니 생겨난 것들은 아닌지...


내가 지금 그 친구만큼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있는지 자신이 없다. 그러나 그런 배려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며 멋진 것인가는 잘 안다. 그런 배려를 받아 보았기 때문이다.

- 그 친구도 대단하지만 손교수도 확실히 훌륭한 사람이다. 대부분 큰 배려를 받으면 그 순간에는 감사하다가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쉽게 잊어버리거나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레미제라블의 장 발장도 훌륭한 사람인 것이다. 어린이용 장발장에서는 훌륭한 신부의 관용만 강조하지만 그런 배려나 관용을 받고도 회심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며 살아야지.


젊은 사람의 생각이란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발전하기 때문에 내가 가르친 것은 그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사다리로 사용되었을 뿐 그것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을리가 없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지붕에 올라간 뒤에 사다리는 밀어버리라"고.

- 졸업한 학생들이 찾아오면 요즘은 잘 못하는 낯 간지러운 질문을 했던 적이 있었다. "넌 내가 했던 말 중 어떤게 기억나냐?" 대부분의 경우 별로 명확한 대답을 못하고 하더라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뱉었던 말들 또는 보여준 행동들이 그들을 좋은 쪽으로 인도하는 사다리의 한 부분이 되었기를...'


호텔 수위들이 수상적게 바라보고, 기사들이 차를 대령하는 사이로 유유히 걸어 나와도 별로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차만 타는 사람들이 헬스클럽에서는 비지땀을 흘리면서 자전거 헛바퀴를 돌리고, 시간을 내어 등산 가방을 메고 산에 오르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일하라는 주신 시간과 힘을 엉뚱한데 낭비한다고 놀려주고 싶다.

- 요즈음,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누가 남의 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리고 남을 의식한다는 그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남의 눈 때문에 분수에 맞지 않는 지출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 비참하다. 저자의 당당함은 절약을 강조하는 선비님의 이야기가 아니고 지구온난화를 걱정하는 소신있고 지각있는 미래파의 생각이라 하겠다. 운전을 가급적이면 하지 않는 나도 미래파!ㅋㅋㅋ


피해자 동의 없이 용서하는 것은 월권이다. 자신의 원수를 용서하는 것은 고상하지만, 다른 사람의 원수를 용서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 교수님은 사형제도에 대해 이 이야기를 했으나 난 '광주청문회'가 생각났다. 그 때 내가 보기에 가장 어이없던 것은 한 국회의원의 질문이었다.

"그들을 용서하시죠?" 나름 피해자들 편에서서 이야기하던 중이었으나 가족을 잃거나 본인이 장애를 입은 사람들에게 아직 가해자들이 뉘우치지도 않았는데 용서라니... 


민족은 피가 아니라 역사, 언어, 행동방식, 가치관 등 문화가 결정한다. (중략) 예를 들어 한국말로 생각하고 한가위를 자신의 명절로 느끼는 사람은 인종과 관계없이 모두 한민족이다. 짐승은 생물학적 법칙에 의해 결정되나 사람은 문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 우리나라가 단일민족임을 명기하지 않기로 했다던가 논란 중이던가 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나도 우리나라에 대해 불만도 있고 아쉬운 점도 많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이 참 감사하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이루어 낸 것도 자랑스럽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 잘 살게 되었다고 노골적으로 동양권 사람들을 무시하며, 여전히 서구 사람들에 대해 비굴하게 구는 모습들은 너무 답답하다. 예전의 '명예백인'이라 불리우며 그 칭호를 즐겼던 일본의 모습이 떠올라서 더 싫어진다.


독자를 존중하는 글은 독자에게 어떤 종류의 것이라도 이익을 끼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그러므로 글을 쓰는 사람은 모든 정성을 다 바쳐 글을 써야 하고, 독자들에게 가장 큰 유익을 주려고 애를 써야 한다. 독자에게 아무 유익도 줄 수 없는 글은 쓰지 말아야 할 뿐더러 발표는 더욱 하지 말아야 한다. 글이 잉크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자의 시간을 낭비케 하는 것은 큰 죄가 아닐 수 없다.

- <읽혀야 글이다>편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곳에 글을 쓰며 조회수에 신경이 쓰인다. 비슷한 글을 짧게 써서 페이스북에 올리면 하루만에 '좋아요'가 수십씩 올라가는 반면 이곳에 쓰면 조회수가 하루만에 두자리 숫자가 된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소수라도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있으면 교사가 수업을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이 곳을 찾는 '소중한 그들'을 위해서 오늘도 좋은 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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