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전체적으로, 미국드라마 <덱스터(Dexter)>와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생각났다. 덱스터가 떠오른 때는 "슬픔은 이해할 수 없지만 유머는 이해한다"라는 부분이었다. 이런 묘사는 사이코패스를 표현할때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것들이고, 우리 영화 <추격자>의 하정우의 연기에서도 잘 나타난다.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참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벤자민 버튼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아무것도 기억 못하고 죽어가는 점에서 였다.

 

기억을 잃는 다는 것.... 책을 읽으며 처음 기억을 잃었을 때가 생각났다. 블랙아웃을 최초로 경험했을 때 꽤 오래 그것에 대해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 내가 침대에서 깨어났는지 몰랐을 때의 그 기분이란... 간밤의 일정시간 동안의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 생각에 많이 불안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비슷한 상황이 또 생겨나면 후회와 함께 '그런거지 뭐'하며 괜찮은 척 하지만,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거기다 그런 불안감이 매일 계속되고 그 마저도 점점 더 심해진다면?

 

작가의 말 중에 '이것은 내 소설이다. 내가 써야 한다. 나밖에 쓸 수 없다.'라는 부분이 있었다. 나만 쓸 수 있는 이야기,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 모든 종류의 글을 쓰는 이들의 공통된 꿈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책을 쓰며 무섭고 잔인한 내용이지만 작가는 한편으로는 행복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문화센터에서 시를 배운 주인공의 일기같은 글을 모아놓은 형식을 사용한 책이라 시 같기도 하고, 글 하나가 한두줄로 끝날때도 있어서 하이쿠 같기도 하다. 거기다 치매에 걸린 사람의 글이라 앞뒤가 서로 모순되는 내용들도 많다. 작가는 '소설가는 계속 구속을 받는다'라고 했다. '첫 문장에 그리고 만들어진 주인공에' 구속 받는다라고 했다. 정말 치매환자가 글을 쓴다면 이렇게 쓰지 않을까?

 

<수첩에 옮겨 쓴 글>

죽음은 두렵지 않다. 망각도 막을 수 없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닐 것이다. 지금의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내세가 있다한들 그게 어떻게 나일 수 있으랴.

- 언젠가 아버지께서 종교적인 관점에서 '치매에 걸린다면 그 영혼은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말을 하신 적이 있었다. 참... 어려운 문제다.

 

아무도 읽지 않는 시를 쓰는 마음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르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

- 이런 부분을 읽을 때마다 김영하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취재를 하고 공부를 하고 쓰는 글이겠지만서도... 

 

연쇄살인범도 해결할 수 없는 것: 여중생의 왕따

- 이게 살인자의 유머 일까? 웃음이 나왔다. 읽는 동안 나도 주인공에 동화되었나?

 

세상의 모든 전문가는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말할때까지만 전문가로 본인다.

-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혀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숨이 막힌다.

- 서경식 씨의 '언어라는 감옥에 갇힌 수인'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인용인지 패러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치매의 끔찍함을 짧게 잘 표현한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

 

기억을 모두 잃는다면 더는 인간이랄 수가 없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가상의 접점일 뿐,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악이 아니오. 그냥 기도나 하시오. 악이 당신을 비켜갈 수 있도록"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 덧붙였다.

- 악이 그 스스로에 대해 말한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오싹함에 어깨가 움츠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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