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48-49


"지금이 내 인생에서 최고로 좋은 때 아이가."
엄마는 평생 아무 걱정 없이 책 읽고 음악 듣는 생활을 꿈꿔왔는데, 지금이 바로 그렇다는 거다. 음악이래 봤자 오빠가 쓰던 낡은 오디오로 라디오를 듣는 것이 전부고,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언제나 책을 읽는 분이었으니 노안으로 돋보기를 껴야 하고 눈이 쉽게 피로해지는 지금이 가장 책을 사실은 인생에서 가장 책을 읽기 힘든 때일 텐데도.
그건 아마도 긍정성일 것이다. 설거지할 때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과도 연관이 있을 테지. 나는 엄마가 지나가듯 한 말에 기분이 퍽 좋아졌다. 엄마가 스스로 행복하기 때문에 나도 곁에서 행복한 것이다. 엄마는 평생 내게 공부하라는 말을 한번도 한적이 없다. 시집 안 가냐고 하기보단 "안 외로울 수 있으면 혼자 사는게 낫다" 고 한다. 만약 엄마가 싱글에 불안정한 프리랜서 생활을 하는 나 때문에 걱정을 껴안고 산다면, 나는 엄마를 만날 때마다 불행해졌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무심하지 않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엄마는 언제가 잔소리하지 않기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한 적도 있다. 다만 고민 끝에 ‘상수리 이론‘에 따라 나를 내버려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상수리 이론‘이란 무엇이냐? 그건 내가 친정 엄마의 간섭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 얘기를 했을 때 엄마가 대뜸 한 말에서 비롯한 이론이다.
"니 도토리가 왜 동그란지 아나? 상수리나무 밑에선 상수리나무가 못 자란단다. 그래서 엄마 나무에서 떨어지면 되도록 멀리까지 굴러갈라고 동그랗게 생겠다 카네."
내가 멀찍이 굴러와 자라가는 걸 엄마는 그냥 지켜봐준다. 설거지할 때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지금이 인생에서 최고로 좋은 때라고 말하면서. 나는, 내가 어엿한 상수리나무로 자랐는지는 모르겠으나, 멀찍이 엄마 상수리나무가 기분 좋게 이파리를 떨면서 서 있는 것을 보면 참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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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
김하나.황선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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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0

1인 가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고, 앞으로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실제로 사는 모습은 법이나 제도, 관념보다 빠르게 변한다. 직장 한 군데를 정년까지 다니며 하나의 직업을 평생 고수하던 고용과 노동의 패러다임이 허물어진 것처럼, 아마 혼인이나 혈연으로 연결된 전통적인 가족의 형식에 들어맞지 않는 가구의 모습들이 늘어날 거다. 게다가 기대 수명은 100세를 내다볼 정도로 점점 길어진다. 결혼을 하지 않고 함께 사는 커플뿐 아니라결혼했다가 이혼이나 사별로 혼자 된 중년, 노인의 경우도 많아질테고 나와 동거인처럼 동성 친구끼리 의지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 복지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좀 더 느슨한 형태로 모여 사는 파트너, 마음 맞는 누군가와 같이 생활하는 경우도 서로 보호자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포용하는 쪽이 되어주면 좋겠다.
평생을 약속하며 결혼이라는 단단한 구속으로 서로를 묶는 결정을 내리는 건 물론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생애 주기에서 어떤 시절에 서로를 보살피며 의지가 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충분히 따뜻한 일 아닌가. 개인이 서로에게 기꺼이 그런 복지가 되려 한다면, 법과 제도가 거들어주어야 마땅하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다채로운 가족들이 더 튼튼하고 건강해질 때, 그 집합체인 사회에도 행복의 총합이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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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5

이 싸움의 목적이 뭔지 생각해본다. 나의 가장 잘 드는 무기를 찾아 쥐고 한 번에 숨통이 끊어지게 적의 급소에 꽂는 것인가?
다시는 일어날 수 없도록 흠씬 두들겨 패서 밟아버리는 것인가?
함께 사는 사람, 같이 살아가야 하는 사람과의 싸움은 잊어버리기위한 싸움이다. 삽을 들고 감정의 물길을 판 다음 잘 흘려보내기위한 싸움이다. 제자리로 잘 돌아오기 위한 싸움이다.
사람은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지만 자신의 세계에 누군가를들이기로 결정한 이상은, 서로의 감정과 안녕을 살피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우고, 곧 화해하고 다시 싸운다. 반복해서 용서했다가 또 실망하지만 여전히 큰 기대를 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준다. 그리고 이렇게 이어지는 교전 상태가, 전혀 싸우지 않을 때의 허약한 평화보다 훨씬 건강함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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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서 꼭 가까워지지 않듯,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곁에 두며 같이 살아갈 수 있다. 자신과 다르다 해서 이상하게 바라보거나 평가 내리지 않는 건 공존의 첫 단계다.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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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

한 사람이 진정으로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집 평수나 자동차 브랜드가 아니라 자신의 친구입니다.
그 친구가 얼마나 잘 나가는지, 얼마나 힘이 있는지가 아니라 친구가얼마나 요리를 잘하는지
누구는 또 얼마나 잘 얻어먹는지
얼마나 잠을 잘 자고 얼마나 노래를 잘하며 얼마나 약지 못했는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고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추억을 가졌는지
인생에서 진정으로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그런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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