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서는 약간의 호기심이 일었고, 전체 문장을 봤을 때는 이미

마음이 끌려버렸다. 그리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본문에서 이 문장을 발견했을 때의 감정이란!

작가 소개에서 그의 이름으로 출간된 책의 제목을 살펴본다. 전부 읽지는 않았지만 반수가

넘는 책을 읽었고, 그 책들을 읽게 된 계기가 책 제목 때문이었음을 떠올릴 수 있었다.

굳빠이, 이상은 제목이 독특해서, ‘대책없이 해피엔딩은 원래 해피엔딩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다가 대책없이 해피엔딩을 지향하면 어찌되는지 슬핏 궁금해져서였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그때 외로웠서 읽게 되었을거다. 책제목을 살펴보는데 책의 내용보다 먼저

그 책을 읽게 된 이유가 후다닥 떠올랐고, 그 이유에 책 제목이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번에도 제목에 마음이 움직였고 이 책과 함께 얼마동안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카밀라라는 젊은 여성이 나온다. 한국에서 출생했지만 미국에서 자랐다. 양어머니 앤은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친구같은, 정말 좋은 친구같은 느낌이었다. 어머니라기보다는.

앤이 죽고나서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카밀라는 페덱스 25킬로그램짜리 6개의 상자를

재혼을 앞 둔 양아버지에게서 전달받게 되었다. 그게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그 상자에는 어린 시절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그 어린 시절에는 내가 기억하는 것만이

담겨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만 자리잡고 있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 상자에서 그동안 모르던 것들이 튀어나왔다. 그 중에 하나가 자신을 낳아준 친모에

대한 것이었다. 나를 찾아 편지를 보낸 오빠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그 상자는 카밀라가 작가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박스를 기본으로 해서 한 권의

책을 낼 수 있었고, 그 책은 카밀라가 그녀가 모르는 어린 시절을 찾아가는 데 큰 계기를

만들어 준다. 그리하여 자신이 태어났다는 진남으로 향한다. 그리고 자신의 흔적을 찾기

시작한다. 단서는 별로없다. 하지만 실낱같은 단서로도 찾아낼 수 있는 게 얼마든지 있었다.

그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을 교묘하게 덮어버리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

이 소설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고, 그래서 답답하고 불쌍하기까지 한 캐릭터가 한 분 등장

하시는데, 그 사람이 그 은닉에 가장 열심히다. 카밀라를 위한다는 말을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위해서 였다. 자신의 엉클어진 인생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기 위해. 그러기 위해서

행동한다. 초지일관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는 점만큼은 인상적이었다.

카밀라의 출생의 비밀을 함께 쫓다보면 소문과 비밀 그리고 악의 같은 것들이 드러난다.

인간이 가진 덕목 중에서 참 못난 부분들을 발견할 수 밖에 없는데, 밉고 싫다기 보다는

안됐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그런 상황에 얽매여서 힘들고 괴로운 건 자신이었을텐데,

그런 선택을 해서 일그러진 삶은 평생 그 형태로 모양이 잡힌채 시간이 흘러갔을텐데...

싶기도 했다. 카밀라가 출생의 비밀을 밝혀가는 동안은 줄거리를 따라가기에 바빴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과거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런 과거를 만들어내는데 일조를 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소설을 읽는 동안은 몰랐었는데, 다 읽고나서보니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왜 이리

하나같이 불쌍할까. 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 행동을 했었고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일부분이 있었다는 것 자체에서 안쓰러움이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하지만 안쓰러운건 안쓰러운거고, 불쌍한 건 불쌍한 거지만...싫은 건 역시

싫다는 걸 확인했다. 정말 싫어하는 타입의 사람도 등장하니까.

주인공 카밀라는 여성, 20대 젊은 여성. 작가는 아시다시피 남성. 이럴때면 읽기 전에 항상

겁이 난다. 이건 트라우마같은 거다. 다른 성별에 대한 몰이해와 편견에 너무나 불편해서

읽다가 미처 다 읽지 못하고 접었던 책이 있었다. 이제는 안다. 그 작가는 여성이나 남성을

떠나서 사람에 대해서도 나와 맞지 않는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 소설의 내용은 물론 제목마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쾌감은 또렷해서, 다른 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을 읽기 전에는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된다. 이 책은 마음의 준비를 할 필요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이 트라우마가 얼른 없어져야 할텐데, 그리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이번을 계기로 약간이라도

희석된다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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