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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드로잉 노트 : 사람 그리기 ㅣ 이지 드로잉 노트
김충원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림을 그린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진 게 언제부터였을까?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
건 또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어릴 때는 별다른 부담없이 쓱쓱싹싹 그렸던 그 그림들이
이제는 왜 그런 방식으로 그려지지 않는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문득 그런 것들이 궁금해
졌다. 그리고 왜 지금의 나는 그림을 더 이상 그리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지 드로잉 노트는 그런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언인가 해보라고 권유한다.
일단 연필을 들고, 종이 한 장을 펼치라고 말한다. 그리고나서 무엇인가를 시작해보라 한다.
일단 선긋기부터. 선긋기 정도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건너뛰려고 하다가 실제로
선긋기부터 해보았었다. 하얀 종이 위에 무른 연필로 선을 그려보았다. 어렵지는 않았지만
예상한 것보다는 까다로웠다. 흔들림 없이 선을 긋는다는 건 마치 평행대 위를 걷고 있을
때 느꼈던 긴장감을 상기시켰다. 호흡을 잠시 멈추고 순간적으로 선을 긋는거다. 그걸
반복했었다. 그걸 마치고 나서는 종이 위에 조약돌 바다로 만들었다. 하얀 종이 위를 크고
작은 다양한 모양의 동그라미를 채워넣었다. 그리고 그 조약돌에 표정을 그려넣었다.
눈을 그리고 코를 세우고, 입을 만들었다. 이제 조약돌은 얼굴이 되었다. 하얀 종이를
채우는 얼굴은 꽤 많았고, 그 얼굴들을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신기했다.
내가 그렸는데, 모두 다 내가 그린 것인데 달랐다. 다르지만 비슷한 얼굴들도 보인다.
다른 얼굴이 되도록 눈매, 코, 입모양을 신경썼는데도 그려놓고 보니 닮은 얼굴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각자의 개성을 가진 얼굴을 한바닥 가득히 그려낸다는 게 그다지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이 책이 시키는대로 그림을
그렸다. 선을 따라서 그리기도 했었고, 손을 그려보기도 했었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발견한 작은 소품들을 그려보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러던데, 그림을 이리 그리는 것이라
한다. 매일 한 그림을 30초씩, 30개의 그림을 30일간 계속 그리는 것. 최고의 드로잉 신공
이란다. 이걸 해보고 싶은데, 30일간 계속이 어렵다. 30초씩 30개도 쉽지 않았다.
저걸 할 수 있게되면 그림과도 꽤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림은 친해지기
꽤 어려운 친구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긴 했지만, 그 시기를 넘기고 나면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가 되리라는 건 확신에 가까운 무게감으로 짐작하고 있다.
지금도 이 책에서 시키는 것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어째어째 따라해보기는 했는데,
너무 서둘러서 따라와서인지 아직은 엉망이다. 눈썹과 눈 그리고 코와 입을 그리는 것도
연습이 좀 더 필요할 것 같고, 음영은 아직까지 묘연하기만 하다. 이 남자의 뒷모습을
그려보시오, 이 여자의 앞모습을 그려보시오 파트는 손도 대지 못한 상태다. 좀 더 연습이
필요할 듯 하고, 좀 더 관찰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나서
즐거웠다.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림을 그리는 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어쩌면 정말 중요한 것은 그림을 그리기로 마음 먹은 그 순간 내가 연필을 쥐고 흰
공간에 무언가를 그려넣을 용기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용기는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라, 일단 연필을 손에 쥔 순간 그 연필 끝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거다.
그러니까 일단 연필을 드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며 연필을 잡는게
더 이상 무섭거나 망설여지지 않는다.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절실하게
깨달았지만, 그것을 알게 된 것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다는 게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떤 교육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기쁘다. 이제 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앞으로 해야 할 것은 내 그림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