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낭만이 번지는 곳 베네치아 ㅣ In the Blue 6
백승선 지음 / 쉼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번짐 시리즈 그 여섯 번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번짐 시리즈를 좋아했다. 그 책들은
잔잔하고 고요한데,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마음 속에 불을 지른다. 꽁꽁 감춰두었던
방랑과 여행자의 본능에 불을 붙인다. 이번 휴가에는 다녀오자, 이번 휴가에는 다녀오자
싶어진다. 꼭 거기가 아니라도 좋았다. 나만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곳이라면
버스를 타든, 기차를 타든, 배를 타든 좋았다. 물론 비행기를 타고 더 멀리 갈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대체로 가까운 곳에 다녀왔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차를 타고 나갔다가
하루만에 돌아오던지, 하루를 묶던지 그랬었다. 그렇게 소란스럽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수식어로 이루어진 번짐 시리즈는 항상 마음을 둥실둥실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이번에는 베네치아다. 낭만이 번진단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 어떤
이야기로 마음을 설레게 할지, 또 어디로 가고 싶어지게 만들지 기대했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고 싶어지지 않았다. 아직 휴가도 다녀오지
않았는데. 너무 더워서일까, 올 여름 유난히 더웠는데 거기에 지쳐버린 것일까.
그래서 어딘가로 떠날 의욕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아니면 이 책에서 그전과 같은
느낌을 찾아내지 못했던 걸까. 번짐 시리즈에서 좋아했던 이야기는 대체로 소박한
기억들이었다. 이를테면 벨기에를 다룬 책에서 플라다스의 개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다.
빵조각을 스프에 띄워먹는 것에 대한 묘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데, 그 향수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플란다스 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애니메이션은
그때도 슬펐고, 지금 봐도 슬프지 않을까. 그 책에서 그 이야기가 있었다. 네로가
꿈이 좌절되고 죽었던 그 곳에서 울었다는. 그 부분을 읽으며 마음이 짠했었다.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 있었고, 거기에 공감했었기에 이 책은 언제나 나에게 여행은
무척 좋은 것이라고 말해주는 무언가였다. 그랬었는데 이번 책은 나에게 별다른
말을 해주지 않는다. 여전히 사진을 예뻤고, 베네치아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야 비로서 번짐 시리즈의 어떤 부분을 좋아했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부분이 이 책에는 또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단순한 오해일지도 모르겠으나, 이 여행지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나 찬탄 같은 것도
이전보다는 덜 느껴진다. 그래서 이전 책과 비교하게 된다. 이전에는 참 좋았었는데.
어쩌면 변한 건 나일지도 모른다. 번짐 시리즈가 변한 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내가
달라진 것일지도. 그래서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크기의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건 아주 개인적인, 개인적인 아쉬움이었다. 그냥 기대치가 높았던
것일지도, 단순히 내 감성이 더위를 먹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사진은 무척 멋졌다. 페이지를 넘기며 보았던 베네치아의 풍경은 그야말로 화사했다.
우리 동네 건물색을 보며 사진 속 그 건물의 색감을 떠올려본다. 아...그러기 싫은데
비교되려고 했었다. 물의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건, 저렇게 통일되지 않은 화사한 색으로
물들어 있는 건물들이 있는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는 무척 궁금해
졌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베네치아는 꼭 가보고 싶어졌다.
여행지에서 무언가를 사가지고 오지는 않는 주의이지만, 대체로 먹어 없어질 수 있는
걸로 하자고 정해두었지만...저기에 가면 유리 공예품이랑 레이스는 꼭 사와야지
싶어졌다.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니까, 사라져버리지 않는데 힘을 보태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