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소도시 여행 - 예술가들이 사랑한 마을을 걷다
박정은 글 사진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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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돌이 지난 아이를 데리고 떠난 취재여행이었다는 걸 이 책 본문만을 읽고서는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스치듯이

마주쳤던 아이를 동반한 부모들은 나들이나 외식에서도 몹시 분주해 보였다. 게다가 그

아이가 자유롭게 걷거나 뛸 수 있지만 아직까지 안전에 대한 의식이 확립된 정도가 아니라면,

이제 막 장난에 재미가 들렸거나 집안에서처럼 자유롭게 굴기를 바란다면 더욱 힘들어

보였다. 마구잡이로 떼를 쓰고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 그 아이를 난처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부모도 있었고, 일단 따끔하게 혼내는 부모도 본 적이 있었고, 그냥 그 아이를 집 밖에서도

집 안처럼 방치하는 부모도 있었다. 다양한 부모들을 그동안 보아왔지만, 대체로는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 여행이라...! 게다가 외국이다. 스페인 소도시 여행을 떠난거다.

힘들지 않았을까? 게다가 갓 돌이 지난 아이는 업거나 안아서 이동하는 경우도 있었을텐데.

책에서 얼핏 운전면허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차도 없어 아이를 데리고 스페인 작은

도시를 다닌다...! 최근에는 잘 본 적 없지만 아이 둘을 데리고 버스를 타는 젊은 엄마는

항상 대단해 보였다. 한 아이는 업고, 또 다른 한 아이는 손을 꼭 잡아서 자리에 챙겨앉히고

그게 힘들어 보이는데 척척 해내는 걸 보면 원더우먼은 결코 비현실적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버스 타기 보다 훨씬 난이도 높아보이는 여행을 아이와 함께...!

더 대단한 건 그런 고단함이 이 책 속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거다. 그게 멋졌던 것 같다.

프로구나, 프로 여행 작가구나...라는 감동이 밀려왔다고 해야하나.

작은 아이들은 언제든 아프기도 쉽고, 또 그만큼 쉽게 낫지만 분명 아이 때문에 놀라고

당황스러운 에피소드가 있었을텐데. 혼자서 하는 여행이 아닌만큼 더 고단했을텐데 그런

부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여행의 피로감 같은 게 싹 빠져있다고 봐도 좋을 듯 하다.

어쨌든 아이가 동반했다는 내용 자체를 책 속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 그러고보니

그게 궁금하기는 하다. 시에스타로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그곳 사람들의

배려로 그 휴식 시간에 박물관을 관람했던 것 같은데...그 당시에는 그냥 거기 사람들이

그렇게 좋은 사람들인 줄로 알았다. 지금 문득 든 생각인데 어쩌면 아이가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면서 아이와 여행하면서 생겼던 에피소드같은 걸 들어봐도

좋을 것 같았다. 제법 큰 아이들과 다닌 여행이 아니라, 작은 아이를 업고 안고 용맹하게

여행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여행을 좋아하는 젊은 부모들에게 큰 도움이 될 듯 하니까.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나서 책을 탁 덮었을 때 나는 이 책에서 천재들을 참 많이 만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가우디, 달리, 벨라스케스, 세르반테스...론다에서 스쳐지나간 릴케와

헤밍웨이...그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스페인 곳곳은 무척 아름다웠다. 사진이나 문장만으로도

알 것만 같다. 그 작은 도시들이 갖고 있는 매력을...실제로 보면 얼마나 멋질까.

가우디의 건축물을 직접 본다면, 달리가 직접 고친 흔적이 남아있다는 그의 집 안에 살짝

들려본다면, 알람브라 궁전을 거닐어 본다면, 플라멩고 공연을 직접 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 그것을 본 이후와 이전의 삶은 다른 모습이 되겠지?

그래서 이 책을 무척 설레이면서 보았다. 그리고 언젠가 사두었던 스페인어책을 다시 꺼냈다.

인사말만 배우다가 끝이 나버린 나의 쓸쓸한 스페인어,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기초만

익히고나서 학원도 등록해야지. 내 인생을 바꿔놓을지도 모를 작은 도시를 찾아내기 위해.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사망일이 같다는 건 이 책을 읽기 전에 알고 있었다. 423.

유네스코가 지정한 기념일이기도 하고, 세인트 조지의 날이라고 스페인에서 기념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게다가 나는 그 날을 기념하고 있다. 꽃은 생략하지만 책은 곧잘 선물했고,

때때로 그 날을 핑계삼아 스스로에게 엄청난 책을 선물하곤 했다. 그랬는데 그걸 몰랐다.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그들의 사망날짜가 실제로는 다르다는 것. 세르반테스는 그레고리

력으로, 셰익스피어는 율리우스력으로 423. 실제로는 갭이 좀 있다. ...내년부터는

세인트 조지의 날이 되면 이 책이 떠오를 것 같다.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의 차이도.

그런데 정말 그 직원분 어떻게 되셨을까? 잘리진 않았을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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